침묵 기도, 일상 중에 녹여 내기 (1) : 기도와 항해

기타/영성 관련글 2014.10.10 07:19

이 글은 높은뜻 정의교회 '기도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침묵기도를 일상 속에 뿌리내리는 데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세 번에 걸쳐서 게재합니다. (1) 기도와 항해, (2) 매일의 기도, (3) 삶을 하나로 묶기/ 주선영



침묵 기도, 일상 중에 녹여 내기

(1) 기도와 항해


, 항해

    우리 삶은 한 척의 배가 이쪽 항구에서 떠나 저쪽 항구로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배는 목적지가 있습니다. 도착해서 닻을 내려야할 항구가 있고, 그 항구를 향해 방향을 조정하면서 망망대해를 가로지릅니다. 우리 인생, 삶이라는 이 배의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목적지, 하나님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us)는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고백록》, 1장 1절)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배가 도착해야 할 궁극적 항구는 하나님그분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이 배는 지금, ‘하나님을 향하고있습니다. , ‘하나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매사에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은 여러 가지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중 기독교영성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하나님과의 일치입니다. 기도 체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과의 일치는 내적 고요와 침묵 속에서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어떤 감정이나 심리 현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지’, 혹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의지, 하고 싶은 것이 같아졌다는 것이며, 더 이상 ‘~해야만 한다는 당위의 차원을 훌쩍 뛰어 넘는 것입니다. 기독교 영성에서 하나님의 의지의 일치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인간 안에 불타오르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의 상징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바 되었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외형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세상, 온 우주 만물에 대한, 예수님의 경험 체계, 사고-생각 체계, 감각 체계, 삶의 방식과 하나 되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을 마음에 담으면서,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삶이라는 배를 잠시 떠올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배의 목적지를 설명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구체적으로 적합하게 다가오는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추구하기’, ‘하나님과의 일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등 어떤 것이 마음에 담기는 지요?


항해의 분위기

    그러면 이 배의 이름과 그 규모는 어떠할까요? 이것은 이 배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우리 삶의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를 잘 보여주는 성경구절은 예수님의 세례 체험에 나타납니다. 그 내용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11)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모두를 이러한 자기-정체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사랑에 가득 찬 기쁨이 하늘에서부터 끊임없이 부어지고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 가장 깊숙한 마음에서 항구히 흔들림 없이 완전히 고착되어 있는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심지어 믿음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가득한 기쁨을 받고 있는 자녀라는 사실은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의지입니다.

    비록 이 배가 그렇게 엄청난 규모로 지어졌다고 하더라도, 때때로 흔들릴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흔들어 대는 여러 환경적 요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고요? 바다를 항해하고 있으니까요.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흔들리는 것이 우리 존재의 전부이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부분입니다. 항해의 더 큰 국면은 이 배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사랑의 빛을 받으면서 자기 항로를 따라 의연하게 운항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이 배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16)

   따라서 우리는 삶이 흔들릴 때, 이 배의 궁극적 정체성을 거듭하여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께 청하면서,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집중하면, 마음이 바로 하늘이고, 그 하늘사이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기-정체성을 일깨우는 소리는 우리 삶 안에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각성시킵니다.


항해, 선택인가?

    망망대해를 운항하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느껴지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아예 처음부터 이쪽 항구에서 닻이 올라간 것 자체가 불편하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선택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알건 모르건,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우리의 배는 이미 이쪽 항구를 떠나 저쪽 항구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운명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항로에 자연스럽게 몸을, 마음을, 삶을 맡기는 것이 최선입니다. 배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닻을 자발적으로 걷어 올려 운항준비만 하면 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해 넓고 관대한 마음을 가지면서, 본인의 갈망을 확인합니다. ‘하나님 추구하기’, ‘하나님과의 일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등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와닿는 구절 하나를 단순한 기도로 하나님께 간절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자기 삶의 방향, 즉 목적지에 맞게 배의 항로를 확인하는 작업을 아침에 눈뜨자 마자, 이부자리에 앉아서 합니다. 5분, 10분 정도, 그렇게 조용히 마음의 방향을 잡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하나님과 하나 되기 원한다.”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청합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갈망합니다.”


- 다음 번에는 "매일의 기도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posted by 해'맑은우리

삶의 파고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8.23 05:27

분별력과 선견지명이 있는 부모는 그들의 사랑하는 아이를 인생의 큰 파고에 내어 놓을 때, 그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방주에다가 안전하게 둔다(출 2:3). 각양각색의 나무판들로 짜여진 그 방주는 서로 다른 다양한 교육을 뜻하는데, 이것은 삶이란 파도 위를 떠다니게끔 붙들어 준다.   


-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395) , 《모세의 생애》, 2권 7.


온실의 화초는 사계절이 없다. 

제한되고 짜여진 환경을 맛볼 뿐이다.

겉으로 매끈해 보일지 모르지만, 

막상 손에 쥐어 보면 줄기가 허약하고 향내가 빈약하다.


산전수전, 

야생화를 보라.

비바람을 견딘 인고가 묻어있다. 

각양각색 벌과 나비들을 환대했던 온화함, 넉넉함이 스며있다. 

줄기는 단단하고 코를 쏘는 향내가 몸을 둘렀다.


가시를 세워 다가오는 삶이란 거친 파도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줄 신앙은 무엇으로 엮여질까? 


기쁨, 슬픔, 걱정, 희망, 안전, 외로움

다양한 얼굴로 다가오는 삶의 조각들을

마음을 열어 환영해 보자.

내가 싫고 힘들어 하는 것들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 달라고 소리칠 일 아니다.

대신 양식으로 삼아보자.


이제 이틀 후면

19년간 함께 있었던 큰 딸이 기숙사로 떠나간다.

처음 집을 떠나 생소한 환경을 잘 견뎌낼까?


이 아이가 삶의 파고를 즐길만한

교육이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도록 두 손을 모은다. 


/ 임택동

posted by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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