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감리교 신도회의 규칙

감리교 신도회의 규칙: 

“선을 행하라, 악을 피하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




19세기 초 감리교 캠프 모임(Camp Meeting). Image from http://global.britannica.com/EBchecked/topic/378415/Methodism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91)가 이끌었던 초기 감리교 부흥 운동의 동인(動因)으로 ‘전격적 회심을 강조하는 열광적인 부흥 집회’를 꼽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초기 감리교 운동의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웨슬리가 옥외 설교(“field preaching”; 교회 건물이 없는 곳에서 열리는 대중 집회)를 중시했던 것은 사실이다. 공장 지역과 탄광 지대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던 당시 상황에서, 옥외 설교는 지역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웨슬리는 이렇게 대중 집회를 통하여 회심한 사람들을 신도회(Methodist societies)라는 공동체에 가입시켜 영적으로 돌보고 신앙적으로 훈련하도록 하는 일을 옥외 설교 이상으로 중시하였다. 그렇게 돌보지 않으면 모처럼 신앙적으로 각성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린다는 것이 거듭 드러났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웨슬리가 이렇게 대중 집회와 공동체 운동을 결함시킨 것이 초기 감리교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었으며, 신도회는 감리교 영성 형성의 중요한 장(場)이었다고 평가한다.[각주:1]


     웨슬리는 늘어나는 신도회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이들을 지역 단위로 묶어 연합신도회를 만들고, 1743년 5월 1일에는 이들을 위한 통일된 규칙을 발표하였다. “연합 신도회의 성격, 형태 그리고 규칙”(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이하 “신도회의 규칙”)이 바로 그것이다.[각주:2] 오늘날 한국 교회에 소그룹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대중적인 집회와 함께 훈련·규칙·공동체를 중시한 웨슬리의 통찰이 담긴 “신도회의 규칙”을 살펴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속회(Class)에 참여하라


“신도회의 규칙”은 신도회의 목적에 관해서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이 모임은 규칙적으로 모여서 함께 경건의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사귐으로서, 함께 기도하며, 함께 권고의 말씀을 받으며, 사랑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지켜주어 (to watch over), 서로의 구원을 함께 이루어 가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즉, 신도회는 친밀하고 온정적인 신도들 간의 유대를 경험하는 곳이었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회원들은 서로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는 “상호 권면”(mutual accountability)을 실천했다. 이를 위해, 웨슬리는 모든 신도회원들이 12명 단위(지도자 1인과 11명의 회원)로 된 속회라는 소그룹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였다. 나아가, 보다 높은 수준의 신앙 훈련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밴드(Band)라는 소그룹을 별도로 두었다.


신도회는 또한 규율을 정하고 함께 훈련하는 공동체였다. “신도회의 규칙”은, 회원들은 


“첫째로, 악을 피함으로”(By doing no harm)

“둘째, 선을 행함으로”(By doing good)

“셋째, 모든 성회에 참여함으로”(By attending all the ordinances of God)


자신들의 “구원을 향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확증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큰 원칙들로 각 원칙 아래에는 구체적인 실천 덕목들을 두어 회원이 삶의 지침으로 삼도록 하였다. 

 


모든 악을 피하라


첫 번째 원칙은 신도회원이 된 사람은 “모든 종류의 악을 피하는(avoiding evil in every kind)”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신도회의 규칙”은, 이 원칙과 관련해서, 회원들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피해야 하는 항목들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출20:7)

평일에 하는 일들,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주일에 함으로써, 주일을 더럽히는 것.

술에 취하는 일, 독한 술을 팔거나 사는 일,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일

싸움, 언쟁, 소란을 피우는 일, 신자들 간의 법적 다툼(고전6:6), 악을 악으로 갚는 일(벧전 3:9), 욕을 욕으로 갚는 일, 물건을 사고팔 때 많은 말을 하는 것(지나치게 흥정을 하거나, 값을 깎는 행위를 말함)

밀수품을 판매하거나 매입하는 행위

고리의 이자를 취하는 행위

무자비한 말이나, 무익한 대화, 특히 관리나 목사들에 대한 험담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는 행위(마7:1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아닌 것, 예를 들면, 금이나 다른 귀금속을 몸에 걸치는 일,  값비싼 옷을 입는 것.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사용될 수 없는 오락

하나님을 아는 일과 사랑하는 일에 적절치 않은 노래를 부르거나, 그런 책을 읽는 행위

세속적인 것에 쉽게 타협하는 행동이나 방종(self-indlugence)

땅에 보물을 쌓는 일.

갚을 수 없는 액수의 돈을 빌리는 일 혹은 갚을 수 없는 외상을 지는 행위.


웨슬리는 이와 같이, 십계명, 산상 수훈 등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경건 생활의 덕목들을 회원들의 신앙 실천의 기본으로 삼도록 하였다. 또한, 회원들이 사회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사는 데 지침이 되는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보인다.   



선을 행하라


     두 번째 원칙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을 다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모든 종류의 선을, 모든 사람들에게 행하라.”는 원칙이다(갈6:10). 이를 위한 세부 규정들은 이웃 사랑과 선교적 삶에 관련된 지침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웃의 몸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대로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든 사람과 옥에 갇힌 사람을 찾아가 도와주어라.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바르게 인도하고 권면하라. “우리의 마음이 죄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전에는 우리가 어떤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열광주의자들의 사악한 가르침을 철저히 배격하라.


여기서 열광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 이채롭게 보인다. 하지만 이는 웨슬리가 평생 목회 활동 내내 열광주의자들의 주장을 경계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웨슬리가 그들의 주장들 중에도 가장 우려한 것은, 그들이 개인의 내적 주관적 변화의 체험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웃 사랑과 선교적 삶에 관계된 신앙 덕목들의 중요성을 경시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주장들은 내적 경건과 외적 경건의 조화,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조화를 깨뜨리고, 올바른 신앙적 성숙을 저해한다는 점을 웨슬리는 간파한 것이다. 그는 이런 점을 “신도회의 규칙”에 반영함으로써, 신도회원들이 열광주의자들의 지나친 주장들을 분별하고 균형 잡힌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고자 하였다.  


또한 이 두 번째 범주에는 공동체 생활에 관련된 아래와 같은 지침들도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가족들과 믿음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갈6:10). 그들을 고용하고, 그들의 물건을 사주고, 그들의 사업을 도우라…. 


마지막으로 여기에는 회원들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제자직에 부합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지침들을 포함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절약하여 복음이 비난받지 않게 하라. 

인내로써 앞을 향하여 달려 나가고,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을 당하고, 세상에서의 모욕과 비난을 감수하라.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때, 사람들이 온갖 거짓말과 악한 말을 하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


     세 번째 원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려고 그분께서 친히 제정하신 모든 규례들(all the ordinances of God)에 참여함으로 “구원을 향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입증하라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공적 예배에 참석하라. 

성경 말씀을 받는 모임, 즉 말씀을 읽거나 강해하는 모임에 참여하라.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라. 

가족 기도와 개인 기도를 지켜라. 

성경을 탐구하는 일에 참여하라. 

금식과 절식을 지켜라.


이러한 신앙생활의 근본적 실천 덕목들을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했던 데에는 앞에서 언급한 것 과 같은 열광주의에 대한 경계가 들어 있다. 열광주의자들의 사적·주관적 체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신앙 실천들—예를 들면, 공적 예배, 성례전, 말씀 선포, 성경 묵상 등과 같이 공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마저 경시하는 경향을 띄었다. 웨슬리는 이러한 그릇된 가르침을 경계하면서, 올바른 신앙 성장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신앙 실천들의 토대 위에서, 그리고 신앙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여기서 분명히 하였다. 


     또한, 세 번째 원칙에는 신자들의 영적 성숙과 이웃 사랑의 실천과 같이, 첫째와 둘째 원칙에 속한 신앙 실천들이 인간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은혜와 성령의 능력에 응답하는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확증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에 더하여, 웨슬리는 감리교인들이 영국 국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거기서 베풀어지는 성찬에 반드시 참여해야 함을 의무로 규정함으로서, 감리교 신도회가 영국 국교회에 속한 하나의 단체(evangelical order)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감리교의 개혁 운동이 분파주의나 분리주의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신도회의 규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신도회의 규칙”은 모든 신도회원들이 이 규칙을 철저히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만일 우리 가운데 누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또는 습관적으로 위반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경고하여 알려줄 것이고 권면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들 가운데 더 이상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감리교 신도회원들이 규칙에 동의하게 하고 이것을 지키도록 서로 권고를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자들의 모임을 영적으로 건전하게 유지하고, 그들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을 돕는 일에는 온정적이면서도 적절한 규율을 유지하는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웨슬리는 목회 경험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회심의 체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열망이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확신하였다. 그는 회심을 단지 ‘죄 사함을 확증하는 순간’으로만 보지 않고 거듭남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회심을 성령의 인도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의 새로운 탄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듭난 사람들이 올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지와 격려와 영적 지도가 오가는 공동체가 필수적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도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공동체였다. 웨슬리는 “혼과 몸이 사람을 만든다면, 성령과 훈련은 기독교인을 만든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대중 집회를 통해 회심한 사람들이 올바른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을 돕기 위해, 성서에 바탕을 둔 규율을 가지고 서로 권면하는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신도회의 규칙”이 내적 경건과 외적 경건의 조화를 강조하였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웨슬리는 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의 신앙이 올바르고 조화롭게 성장하는 일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직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악을 피하라, 선을 행하라, 모든 성회에 참석하라”는 규율을 가지고 공동체 속에서 훈련하게 함으로써, 신자들의 개인적 경건의 추구가 공동체의 상호 돌봄과 지도 속에서 행해지게 하였고, 또한 신앙인으로서 사회의 성결에 책임을 다하는 것을 훈련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화를 강조한 감리교 부흥 운동이 근대 영국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깊이 되새겨볼 점이다. 


18세기 영국의 상황과 오늘의 한국 교회 상황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회심한 사람들의 신앙 성장을 돕고자, 공동체를 만들어 개인적 경건과 사회의 성결을 훈련하도록 한 웨슬리의 통찰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글쓴이 : 남기정.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연구원, 새열매연합감리교회 목사, GTU 기독교 영성학 Ph.D Candidate.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5월 호에 실린 다섯 번째 글입니다.


  1. T. 런연, 《새로운 창조》, 김고광 역 (1999), 4장; 김진두, 《웨슬리의 실천신학》 개정판 (2004), 5장; Richard P. Heitzenrater, Wesley and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1995), Ch. 3; David Lowes Watston, “Methodist Spirituality,” in Protestant Spiritual Traditions, ed. Frank C. Senn (1986). [본문으로]
  2. John Wesley, “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1743),” in The Methodist Societies: History, Nature, and Design, The Bicentennial Edition of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IX (1989), 67-75; 김진두, 《웨슬리의 실천신학》, 159-6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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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신앙의 결합 (존 웨슬리)

한 줄 묵상 2014.11.01 03:02

열광과 편견이 이성(理性)의 이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면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성과 신앙을 결합시킴으로서, 이러한 시류에 최선을 다해서 대항하는 것이다.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91), “조셉 벤슨(Joseph Benson)에게 보낸 편지,” 1770.

 

지금 우리 앞에는 지난 두 세기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일이 큰 숙제처럼 놓여 있다. 지난 두 세기는 흔히 이성의 시대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이 시대는 인간의 광기, 편견, 충동, 탐욕 등이 그 어느 때보다 적나라하게 분출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서 인류는 이전엔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규모의 폭력, 학살, 전쟁들을 겪었고, 분열, 차별, 억압 속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런 일들을 떠올리고 보니, “열광과 편견이 이성의 이름으로 행세하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웨슬리의 말은, 비록 그가 18세기 말에 한 것이지만, 마치 19 세기와 20세기에 대한 진단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이성의 바른 위치와 올바른 역할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웨슬리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웨슬리의 주장이 이 복잡한 문제에 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 속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값진 그 무엇이 있어 보인다. 그는 이성은 우리가 판단하고, 이해하고, 논리적 사유를 전개하게 하는 우리 영혼의 중요한 기능으로 보았다. 또한 그는 이 이성은 신앙과 잘 결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성과 신앙의 조화 속에서 신앙도 이성도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욕망, 감정, 충동 등을 점검하고 정화하는 것은 신앙 생활의 중요한 덕목이다. 이러한 자기 정화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그 원래의 질서를 회복하게 되고, 여기서 이성은 감정과 욕망과 충동의 지배를 벗어나서 오히려 그런 것들을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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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거룩하게 (존 웨슬리)

한 줄 묵상 2014.03.28 03:36

참된 신앙, 즉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바른 마음은 거룩할 뿐 아니라 행복하다.  

- 존 웨슬리, 설교 no. 7, ‘The Way to the Kingdom’ (1749)


나는 지금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거룩할까? 행복하지도 거룩하지도 않다면, 나는 이미 삶의 바른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내가 행복을 위해 하는 일이 거룩함을 외면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행복은 가짜일것이다. 내가 거룩해지려는 노력이 행복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거룩함은 참된 것이 아닐 것이다

/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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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신앙인 (존 웨슬리)

한 줄 묵상 2013.10.30 09:00

“[감리교인들]이 영적 독서에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들이 은혜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만이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를 깊이 아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91), “A Letter to George Holder” (8 Nov. 1790) in Telford ed., Letters, 8: 247.

 

웨슬리는 감리교인들이 열심히 독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감리교인은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알려주는 책들을꾸준히 읽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한다(General Rules of 1743). 그는 설교자들에게 이러한 독서는 더욱 더 필수적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감리교 설교자들에게 젊은 대학생들처럼열심히 독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이 추천하는 책들을 하루에 7시간씩 읽게 하였다(The Minutes of 1746 and 47).

웨슬리는 개인과 공동체의 영적 성숙에 고전 읽기가 필수적임을 잘 인식하고, 그것의 실천을 끊임없이 강조한 신앙 지도자였다. 그는 민중들의 신앙 고전 독서 실천을 뒷바침하기 위해 다양한 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수많은 고전들을 편집하고 출판, 배포하는 일에 많은 힘을 썼다.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편집, 출판한 이가 바로 존 웨슬리였다고 한다(The Cambridge Companion to John Wesley, 145). 이는 그가 영적 독서를 진작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영적 고전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한 열심을 신앙 고전 읽기로까지 확대한다면, 한국 교회는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 자신도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성서의 역할를 중시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성서 중심의 신앙에다가 신앙고전 읽기를 더하는 것이 사람들의 영적 성장에 더 없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고전 읽기는 우리가 성서의 세계를 보다 깊고 폭넓게 이해하는 데에 바탕과 길잡이가 될 것이며(성서 해석의 가장 중요한 길잡이는 교회의 전통이다!), 또한 고전 읽기는 성서적 신앙이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에도 힘과 지혜를 줄 것이다. 왜냐면 고전이란, 성경을 품고 살았던 신앙 선현들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과 고전 읽기의 상호 작용이 우리의 신앙 실천을 바른 성장으로 이끌 것이다. /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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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귀함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7.28 12:27

당신의 고귀함과 존엄함을 깨달아 아십시오. 그리스도의 동생이요,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왕의 친구요, 천상(天上) 신랑의 배필인 당신은 참으로 영화로운 존재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이렇게 존귀한 것임을 절감하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은 하나님의 권능과 신비를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야 당신은 진실로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만이 그대가 영락(零落)의 존재임을 깨우쳐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십자가를 지나 영화롭게 되시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오르셨듯이, 십자가의 고난과 겸비를 그분과 함께 겪고, 그리스도의 몸에 합류하게 되고, 나아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John Wesley, ed. An Extract from the Homilies of Macarius, no. 15.1, (first printed in 1750).

 

자신의 본분이 고귀한 것임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현실이 그에 비하면 얼마나 누추한 것인지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애석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냥 주저 앉아 있지는 않을 것다. 자신의 잠재력을 또한 깨달았으므로, 그 영락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귀함을  다시금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그 영혼에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밭에 감추어져 있던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같다 (13:44). 그들은 세상의 통념과 사상으로 짜여진 가치 체계와는 다른그것을 넘어서는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진행시키려고 한다. 바로 이런 사람이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들에게 그 길이 바로 자신의 존귀함을 다시 발휘하게 되는 경지로 가는 길이다. 자신의 영혼의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찬송을 부르며 길을 간다 (458).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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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비추는 등불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6.28 14:12
  • 우리가 닮아야 할 그리스도처럼, 우리의 인성과 성령의 신성이 만나야 세상의 빛이 될 수가 있다는 배움을 얻습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3.06.28 14:40 신고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의의 열매라는 기름으로 자기 속을 채우고 있는 등잔과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 속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불꽃에 의해 점화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타오르고 있는 불꽃입니다. 주님 안에는 그분의 본성으로 자리잡고 계신 신성(神性)이 그분의 인성(人性)의 가슴에서 성령의 불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Macarius of Egypt 지음. John Wesley 편집. An Extract from the Homilies of Macarius, no. 18.2, (first printed in 1750).


마카리우스는 그리스도인의 고귀함은 그 외양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있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더럽고 썪은 것들으로 가득한 회칠한 무덤 같은 존재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비록 겉은 남루한 헝겁이지만 그 속에는 가득히 진주를 가진 자루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18.3).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면의 가치들이 하나님의 불에 의해 점화되어 타오르면서 빛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해서 이 세상을 비추는 구원의 등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러한 등잔이 되어야 한다. 자신은 투명하게 가다듬고, 자기 속엔 그리스도의 말씀과 모범을 따르려는 내면의 열매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열매만으로는 세상에 아무런 유익을 끼칠 수가 없다. 그것들 위에 하나님의 신성의 불이 내리기를 갈망해야 한다. 갈멜 산에서의 엘리야처럼 말이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열망의 불, 모든 것을 정화하고 승화시키는 성화의 불이 우리 속에 불붙고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어두움 속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뒤따라 이 지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나와 우리 교회의 현실을 보면 주님께서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12:49)라고 말씀하시며 탄식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그 앞에 나는 면목이 없다. /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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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옷 (마카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5.28 15:41

겨울이 지나면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능력에 힘입어 자기 내부로부터 밖으로 잎을 내고, 꽃을 내고, 열매 맺어 그것들로 옷입는다. …… 마찬가지로 부활의 날에 신자들이 덧입는 옷은 의의 태양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성령의 영광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 영광은 신자들이 전부터 자기들 속에, 즉 그들의 영혼 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다. 신자들이 현재의 삶에서 자기 영혼 속에 가지고 있는 그것이 부활의 날에 영혼으로부터 밖으로 나와서 그들의 가려주는 옷이 된다.

 John Wesley, ed. An Extract from the Homilies of Macarius, no. 4.8, (first printed in 1750),

 

그러므로 부활의 날, 우리가 새로이 입을 때, 우리를 영광스럽게 할 영광의 옷은 바로, 지금 현재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삶을 본받아 모든 덕을 부지런히 실천하는 일이다 (4.9).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가짐과 언행과 실천이 곧 부활의 날 우리들이 입을 옷이다 (4.1). / 새결새김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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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기도하기 (존 웨슬리)

한 줄 묵상 2013.03.01 05:30

이것은 그가 쉬지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의 마음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주여, 내 입은 소리 없어도 당신께 향하여 있으며, 내 침묵은 당신께 말하나이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께 들어올려져 있다.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결코 방해하지 못하며, 중단시키지는 더욱 못 한다. 홀로 있거나 누구와 함께 있을 때, 한가한 때나 일할 때나 대화할 때, 그의 마음은 늘 주님과 함께 있다. 자리에 눕든지 일어나든지 그의 모든 생각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 그의 영혼의 사랑하는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어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고있으므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그리스도인의 완전』

(이후정 옮김,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16.

 

이 글은 웨슬리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설명하면서 감리교인의 성격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인용한 것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웨슬리는 감리교인을 쉬지 않고 기도하는 신앙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기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언제나 침묵의 언어로 주님 향해 아뢰는 것이며, 마음을 세상적인 일에서 거두어 들여서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며, 영혼의 눈을 주님께만 고정하는 것이며,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으로만 채우기 위해 그분을 쉼없이 떠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 불이 붙으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는 상태에 있게 되고, 그 기도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그 어떤 것에도 방해 받거나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기도 속에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 거기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하여 웨슬리는 이와 같은 쉬지 않고 기도하기는 우리가 소리내어 드리는 청원 기도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말한다. 신자들이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뢴후에 범사에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아무것도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않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렇게 쉬지 않고 기도하기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의 완전』, 16). 즉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와 청원의 기도가 신실한 것이 되려면 그 기도가 쉬지 않고 드리는 침묵의 기도에 의해 뒷바침 되어야 한다. 이렇듯 기도란 말로 하는 기도와 침묵 기도가 있는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다.”[각주:1] 침묵기도와 (청원과 간구를 포함해서) ‘말로하는 기도이 두 기도 실천은 서로 이어지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쉬지않고 드리는 침묵 기도말로 하는 기도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늘 보고 깨달으며, 그분의 주시는 바, 즉 은혜에 대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응답하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새결새김

 

  1. “신앙의 요약: 교리 문답,” 『공도문』 영한대조 한국어판, (미국성공회, 1986), 699. [본문으로]
posted by 새결새김

존 웨슬리의 영적 독서를 위한 조언 (모음)

한 줄 묵상 2013.02.25 14:46

웹진 <산책길> 2, no. 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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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존 웨슬리의 "영적 독서를 위한 조언"은 그가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간추려 요약본으로 출간하면서 그 책에 쓴 서문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웨슬리가 말하는 영적 독서는 '영성 고전 독서', 곧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신앙의 선현들의 글을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의 글은 "영적 독서를 위한 조언"이라는 제목으로 <한 줄 묵상>에 다섯 번에 걸쳐 연재 되었던 글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웨슬리의 조언을 아래의 해설/묵상글과 함께 읽는다면 오늘날 우리의 영성 고전 독서에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첫째매일 일정 시간에 영적 독서를 하겠다고 스스로에게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언하고이것을 지키십시오…….


둘째, 순수한 의도로, 그대의 영혼의 양식을 얻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이 독서에 임하겠다는 다짐으로 이 독서를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읽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대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분의 소원을 알아 보고, 그것의 실행을 결단하고, 나아가 그것을 이루기까지 그대를 이끌어 주시기를 비는 간절한 기도로 이 독서를 준비하십시오.


셋째, … 반드시 여유있게, 신중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가며 읽어야 합니다. 읽는 중간 중간 잠시 멈추어 하나님의 은혜가 그대에게 비추는 깨달음의 빛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이를 위해, 때때로 읽은 것을 되돌아 보고, 그것을 짧은 문구로 만들어 반복적으로 되새기십시오……. 그대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문장들, 특히 그대의 영적 성향과 실천에 요긴한 구절들은 반복해서 여러 번 읽는 것이 유익합니다.


넷째그대가 읽은 것에 상응하는 감흥을 일깨우도록 하십시오그저 지식만 더할 뿐 감동도 열정도 없는 독서는 무익합니다읽으면서 행간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을 더하십시오그분의 빛 뿐아니라 그분의 열정을 구하십시오.


마지막으로항상 주님께 드리는 화살기도로 영적 독서를 마무리하십시오. 그리하여 …… 그대의 마음 밭에 뿌려진 좋은 씨들이 주님의 복을 받아자라고 열매 맺고나아가 그 열매가 영원한 삶을 낳게 하십시오.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Part of the “Preface” to his Abridgment of Thomas à Kempis’ Treatise of The Imitation of Christ (1735)



 

<첫째 조언에 대한 해설과 묵상>


존 웨슬리는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많은 글을 쓰는 한편많은 영성 고전들을 편집하고 출판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긴 고전 중 하나이다그는 이 책을 자기 시대 상황에 맞게 창의적으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이 책의 서문에서 웨슬리는 영적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다섯 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그리고 나서 비단 이 책뿐 아니라 모든 영성 고전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읽어 달라고 신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위에 소개된 인용문은 그 다섯 가지 중 첫번 째 조언의 첫 문장이다웨슬리는 영적 삶에서 질서(orders)와 규칙(rules)를 중시한다 (그래서 얻게된 별명이 Methodist이다!). 그에 따르면 영적 완성(entire sanctification)까지 이르는 생활즉 구원의 여정(the order of salvation)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영적 규칙(rules)를 따르는 것이 효과적이다이와 관련해서 어거스틴도 습관의 폭력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향해 굳어진 우리의 욕망감정기억들은 그릇된 문화와 습관을 만들어 냈고그것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지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의 폭력을 청산하고 구원의 질서를 따라새로운 삶의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성화의 길이라고 웨슬리는 보았다. 주위 사람에게 자신의 결심을 알리는 것은 그러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공동체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성령의 도움심과 신앙 공동체의 도움에 자신을 개방하고그들과 함께 성서와 신앙 선현들의 영적 고전 읽는 일은 그릇된 습관의 폭력을 이겨내기 위한 실천 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일 것이다.




<둘째 조언에 대한 해설과 묵상>

 

순수한 의도는 문자적으로는 의도의 순수성(The purity of intention)”이라고 옮길 수 있.  이말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일을 행하고자 할 때그 의도와 열망이 언제나 하나님만을 향한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가리키는 말이다웨슬리 영성에서 의도의 순수성은 한 신자의 영적 수행이 완전 성화를 향하고 있는가를 분별하는 가장 중요한 판별 기준이다웨슬리는 우리의 노력이 온전히 하나님께만 바쳐지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된다면, 이는 결국 사실상 사탄을 위하는 것이 되고 만다고 말한다.


영적 독서 뿐 아니라 모든 영적 실천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반드시 나의 일부만이 아니라 나의 온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수행하려는 열망은 언제나 하나님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하고그것을 이루려는 모든 시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소원을 이루겠다는 의도에서만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수행은 아무 유익이 없는 일이되고 말 것이다. 




<셋째 조언에 대한 해설과 묵상>

읽은 것을 되돌아 보고(recollect) : 신앙 생활에서 기억(recollect)은 매우 중요하다. 어거스틴이 상기시켜주는 바처럼 우리의 기억은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은 기억에서 시작'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사(史)와 나의 삶의 역사가 만나서, 내 삶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 일은 내 기억을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로 채워가는 데서 가능하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그리스도를 본받아》

짧은 문구로 만들어 반복적으로 : 이 서술은 베네딕트회에서 정리된 성서적 기도 방법인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의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 렉시오는 말씀을 읽고(Lectio), 그것으로 기도하고(Oratio), 그것을 숙고하고(Meditatio), 컨템플레이트(Contemplatio)하는 네 단계를 매일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기도 실천이다. 이 실천은 하나님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일을 실현한 기도의 실례이다. 여기서 컨템플레이션(Contemplatio, 관상)은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내가 말씀과 하나가 되고 그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읽은 말씀 중 마음에 가장 와닿는 구절을 끊임없이 신중하게 반복하는 일은 이러한 컨템플레이션에 이르는 데에 도움 되는 중요한 실천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웨슬리의 영적 독서 방법도 이와 같은 일을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장 감동되는 한 구절을 호흡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우리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은사에 나의 의식(awareness)을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즉 짧은 구절의 반복은 내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넷째 조언에 대한 해설과 묵상>

우리의 읽기가 지식만을 얻기 위한 독서(reading for information)에 머물지 않고이를 넘어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독서(reading for transformation)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영적 독서의 핵심이다이러한 변혁을 위한 독서를 하기위해서는 우리의 이성뿐 아니라 감성과 의지까지 함께 모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마음은 이성감성(열정), 욕망(의지)으로 이루어져 있다그러므로 우리의 이성과 열정과 의지을 참여시켜온 마음으로 하는 영적 독서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1],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우리의 행동을 가져온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감정과 욕망과 생각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행동의 변화가 지속되면 새로운 습관(habit)이 된다그리고 습관의 변화는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그러므로 변혁적 책읽기는 거룩한 말씀이 우리의 몸을 입는 일이다[2].




<다섯째 조언에 대한 해설과 묵상>

화살 기도(ejaculation)란 아버지예수님하나님, 저를 도와 주소서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주님께 영광!하나님 찬미받으소서! 와 같은 짧은 경구로 간결하지만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영적 독서를 마무리하면서신자는 하나님과의 일치를 유지하는 컨템플레이션(contemplation)의 상태에 머물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따라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와 그리스도와 동역하는 사도직을 수행하는 해 나간다.

 

이상 다섯 가지로 정리된 '웨슬리의 영적 독서에 관한 조언'은 성서 읽기와 영성 고전 읽기에 적용하면 영성훈련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기독교 역사의 거의 모든 시대에서 영적 독서는 중요한 기도 실천 중의 하나였다이 기도[영적 독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리고하나님의 뜻과 열망을 깨달아 그것을 받드는 삶을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실천이다웨슬리의 영적 독서에 관한 가르침은이런 기도 실천을 심화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리리 확신한다


 / 번역, 해설  새결새김

posted by 바람연필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 비밀댓글입니다

    2013.01.31 11:04
  • 교보문고 중고장터에 한 권 나와 있기는 한데, 역자와 출판사가 다른 책이네요.

    http://used.kyobobook.co.kr/product/viewBookDetail.ink?cmdtBrcd=7216616206771&orderClick=LKA&Kc=

    이후정 교수님의 번역으로 읽으시려면 (1) 인터넷 중고서점들을 뒤져보시거나, (2) 가까운 대학도서관, 공공도서관 중에서 이책을 소장하고 있는 곳을 찾아서 빌려 읽으시거나 아니면 (3) 감신대학교 출판부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 보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

    BlogIcon 바람연필 2013.02.01 11:34 신고
2013년 1월의 추천고전



 웨슬리  《그리스도인의 완전》

이후정 옮김서울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144 .

 


1726년에 …내 마음, 즉 내 온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비록 내가 인생 전체를 그분께 드린다고 해도 내게 아무런 유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의도의 단순성(simplicity of intention)과 정감의 순수성(purity of affection),” 즉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의도와, 우리의 모든 감정을 지배하는 하나의 열망은 영혼의 두 날개이며, 이들 없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께로 날아오를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3, p.8).

 

성탄과 주현절이 있는 이 절기는 우리에게 오신 주님과 더불어 새로이 영적 여정을 시작하기에 좋은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절기에, 한 평생을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한 열망으로 살았던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글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 그분의 글을 통해 신앙 생활의 갱신과 진보를 갈망하시는 분들이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책을 쓰게 된 이유


이 책의 원 제목은 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평이한 해설)입니다. 이 책은 웨슬리에 의해서 1767경에 초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웨슬리는 그 당시까지의 자신의 영적 여정과 초기 감리교의 성장에 맞추어, 그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 여러 해에 걸쳐 인도되어 온 단계들을 평이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있으며, 그가 "한 시기 한 시기에 무엇을 생각했으며 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 1, p.7).

 

웨슬리는 1730년 중반부터 영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많은 사람들의 신앙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던, 감리교 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였습니다. 이 운동은 시작부터 일관되게 성화와 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의 파급력이 커져가는면서 웨슬리의 완전 사상에 대해 비판하거나 비난하고 또 그 사상을 오해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논란들을 거치면서 웨슬리는 완전 사상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 반드시 강조되어야할 가르침이라는 점을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760년대 중반에 이르러,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이래 20년 넘게 수많은 사람들과의 논쟁의 논쟁을 거치면서 가다듬어온 자신의 완전 교리를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이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성서적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지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동료 감리교인들을 위해서 간결하지만 신중한 필치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모든 신자들의 삶의 목표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이 무엇인지를 간략한 몇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웨슬리 자신의 요약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완전은 삶 전체를 하나님게 바치는 의도의 순수성이다. 그것은 온 마음을 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한 소원과 한 의도만이 우리의 기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재산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또 다른 견지에서 보면,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던 마음 전체로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행하신 대로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온갖 더러움, 모든 내적 외적 불결함에서 깨끗해지는 마음의 할례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 그것을 창조하신 분을 완전히 닮는 형상으로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견지에서 보면,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27, p.135).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한 성화의 실천과 이의 전파를, 기독교 신앙생활의 요체요 하나님께서 웨슬리와 감리교인들에게 맡기신 지상至上 과제” (Grand Depositum)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의 완전 사상은 기독교 영성 전통에서 줄곧 궁극적인 가치로 높이는 하나님과의 연합의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에게 제안할 행복도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그 영혼을 지으신 분과 연합하는 것이요, ‘성부와 성자로 더불어 사귐이 있는 것이며, ‘주와 합하여 한 영이 되는것입니다. 여러분이 끝까지 추구할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즉 시간과 영원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이 일로 향하는 한에서 갈망하십시오 (§6, p.10).

 

웨슬리가 제시하는 완전/연합은 자기을 비움을 통해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주여, 당신께서 주신 것을 당신께 돌려드리기 위해 제가 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아낌없이 포기하고 나 자신의 무(nothingness)로 돌아갑니다. 마치 공허하고 어두운 공기가 태양의 빛으로 충만해질 수 있듯이, 당신에 의하여 그리고 당신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공허함 외에 무엇이 천지간에 당신 앞에 가장 완전한 피조물이겠습니까? …… , 이와 같이 당신의 은혜와 선행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되돌려드릴 수도 있는 기능을 저에게도 주십시오! (§25, p. 130-31)

 

이 기도문이 담고 있는 중요한 한 가지 통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은혜 (imputation)와 우리의 응답의 순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다가가게 된다(impartation)는 점입니다. 인간의 선행(善行)은 바로 은혜에 대한 이러한 응답입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구원에 있어서 선행보다 은혜의 역할을 극히 중시하는 개신교 전통의 사람들에게 큰 시사점이 있습니다. 웨슬리는 오직 믿음으로혹은 오직 은혜로만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고집하는 사람들(유신론자唯神論者, Solifidians)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강물이 모두 바다 속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의인들의 몸과 영혼과 선행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거기서 그의 영원한 안식 속에 살게 됩니다” (§25, p.121).

 

선행은 이를테면 그 자체가 하나님 안에 잃어지기 전에는 마지막 완전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은 선행에게는 일종의 죽음으로서, 우리의 육체의 죽음과 흡사하다. 즉 육체는 자신에게 충만해질 우리의 영혼, 혹은 하나님의 영광 속에 자신을 잃기 전까지는 그 최고의 생명 즉 불멸의 생명을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선행이 이 영적 죽음으로 잃는 것은 그 선행에 들어 있던 지상적인 필멸의 요소뿐이다 (§25, p.130).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온전한 사랑의 실천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웨슬리는 성화와 완전을 일차적으로 교리로 보다는 기독교적 삶의 주제로보았던 것입니다 (“머릿말,” p.3). 그래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완전을 한마디로 말해야 한다면, “완전한 사랑, 순결한 사랑, 거룩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습니다. 최선을 다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야 말로 기독교적 삶의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이 완전하고 거룩한 사랑의 중요성을 우리가 인정한다고 해도 이것을 이 세상의 삶에서 어떻게 하면 성취할 수 있느냐는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점을 신중하게 검토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랑의 원천이시며, 인간의 사랑은 그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 그리고 올바른 응답을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전제하고, 각자의 삶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것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신중하게 실천적, 경험적, 윤리적 차원을 포괄하여 아주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성도의 인격과 성품, 기질과 이의 변화 등에 관한 실천적 제안과 충고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웨슬리는 이러한 것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문답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러한 가르침들이 감리교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각종 모임들 (신도회, 속회, 밴드, 연회 등)에서 신자들의 영적 지도를 위해 사용되었던 정황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런 문답들을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의 영성 생활에도 도움이 될만한 제안들이 많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대인에게 가지는 의미: 이성과 경험의 시대에 완전의 삶을 검증함

 

웨슬리가 살았던 18 세기 영국은 오늘날 한국의 상황과 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 혁명 이후 산업화로 인해 사회구조가 급변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문화 사상적으로도 과학적 사고와 이성적 추론, 경험과 실증 등을 통해 전통적 가치들을 재평가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의 신앙 실천 전통들 중에는 18세기 영국의 신앙운동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인지, 웨슬리의 글을 읽다보면, 마치 그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 행태를 보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현실에 와닿은 웨슬리의 제안 한가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웨슬리가 당시의 열광주의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저 교만의 딸, 열광주의를 경계하라. , 그것을 극도로 멀리하라. 과열된 상상을 결코 용납하지 말라. 아무 일이나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으로 속단하지 말라. , 음성, 인상, 환상, 계시 등을 쉽사리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상정하지 말라.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도 있고, 본성으로부터 올 수도 있으며, 마귀에게서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영들을 다 믿지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라.’ 모든 것은 기록된 말씀으로 시험해 보고 모두 그 말씀 앞에 굴복하게 하라. 당신이 만일 조금이라도 성경에서 떠난다면, 실로 혹은 어느 본문에 관해 그 문맥에 비추어 문자 그대로의 명백한 뜻에서 떠난다면, 당신은 언제나 열광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理性)이나 지식 또는 학문을 멸시하거나 경홀이 여겨도 마찬기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탁원한 선물로서 가장 고귀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다. (§25, p.110).

 

웨슬리는 여기서 하나님 체험을 추구함에 있어서 주관적 느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의 위험성에 대해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하는 중요한 하나의 수단(means)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이 옳바로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웨슬리가 지적하듯이 우리의 감각과 욕망과 감정이 자기 부정을 통한 정화purification를 거쳐야 합니다. 또한 자기 경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것에 성서는 언제나 중요한 표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웨슬리가 문자 그대로읽어야 한다는 것은 문자주의적 해석이나 축자영감설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는 성경의 어느 부분을 해석할 때에는 반드시 그 부분이 속한 성경의 넓은 문맥과, 역사적 정황을 감안해서, 신학적 성과와 교회의 전통의 토대 위에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완전 성화의 삶에 중요한 여러 주제들을 웨슬리는 소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만, 율법무용론(율법주의), 유신론(唯信論, Solifidianism), 분열 (이들은 경계의 대상들이다), 그리고 의도의 순수성, 환대, 복종과 자기포기, 경청, 인내, 끊임 없는 기도, 실천, 깨어있음, 선행 (이상은 수련의 덕목들이다)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5, pp. 86-121).

 


신앙 생활의 새로운 활력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새롭운  활력을 얻는 일은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 모습이 무엇이지를 확인하고, 그것이 얼마나 좋고 기쁘고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이런 자각은 우리 속에서는 그것을 이루고 싶은 열망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일은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이 신앙 생활을 일신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은 우리 신앙 생활의 궁극적 목표인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무엇이며, 얼마나 거룩하고 좋은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으며, 우리가 우리가 어떻게 다가가게 되는지를 소개해 주고있기 때문입니다. / 새결새김



그리스도인의 완전

저자
존 웨슬리 지음
출판사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 2006-11-1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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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결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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