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태초에 아름다이 있었다



태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얼마 전 한 사진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교회에 새로 등록한 한 청년을 심방하였는데, 그는 전문 사진작가였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모던한 분위기의 스튜디오에 걸려 있는 사진들을 둘러보다가, 그 중 한 흑백 사진에 시선이 사로잡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어떤 젊은 여성의 인물사진이었는데, 왼쪽 위에서 대각선으로 내려오는 빛이 환히 웃고 있는 그녀의 오른뺨을 비추고 있었고, 반대쪽으로 넘긴 긴 머리칼은 어둠 속에 있었지만 고개를 흔들면 곧 찰랑거릴 것만 같은 힘과 윤기가 느껴졌다. 참 아름다웠다. 지금 다시 그 사진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면, 예쁜 아가씨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사진을 채우고 있는 빛과 어두움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사진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피사체, 곧 젊고 예쁜 여성 때문이라기보다도 그 피사체를 비추는 빛 때문이었다.

흔히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다.’라고 말한다. 사진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포토그래프photograph는 빛을 뜻하는 포토photo와 그림을 뜻하는 그래프graph의 합성어다. 그 중 포토photo라는 접사는 빛을 뜻하는 그리스어 포스φς(phōs)에서 온 것인데,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도 수십 차례 등장한다. 빛이 없으면 아름다운 사진이 존재할 수가 없다. 아니, 빛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어둠 속에서도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물리적인 시공간을 차지하고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 존재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그 존재가 보는 이의 마음에 부딪혀 올 때 일어나는 반응 또는 인식인데, 어둠 속에서는 사물의 심상image이 우리 마음에 아예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유학 시절 대학 캠퍼스 안으로 난 길을 지나가다가 붉게 빛나는 단풍잎에 마음이 뺏겨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적이 있다. ‘, 여기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나무가 있었네!’ 사실 그 전날에도 같은 길을 지난 간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그 나무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때가 제법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키의 단풍나무와 애기 손바닥 같은 잎사귀들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아마도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나의 시야에도 살짝 들어왔다가 나갔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 아름다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낮의 빛 속에서 그 나뭇잎들은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 나의 시선과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 나무를 찍었는데, 그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아 다음날 다시 큰 카메라DSLR를 들고 비슷한 시간대에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을 담듯 정성껏 사진을 찍어, 액정 화면LCD으로 확대해서 확인하다가 나는 또 다른 놀라움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카메라에 담긴 빛 때문이었다. 단풍잎이 아름답게 보였던 이유는 단순히 한낮의 빛 속에 그 형체와 색깔이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빛이 붉은 잎사귀들을 투과하며 신비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이글을 한 영성센터에서 쓰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영성지도자 전문과정 집중훈련이 두 주간 열리는데, 여기에 몇 해째 강사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란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서 내려오는 영성 훈련으로서,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자라도록 다른 그리스도인이 돕는 것을 말한다. 이때 돕는 사람을 전통적으로 영성지도자spiritual director라 하는데, 오늘날에는 권위적인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영혼의 친구soul friend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상담은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영성지도는 문제의 유무에 상관없이 한 사람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사귐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건강관리에 비유하면 질병을 다루기 위한 치료나 수술이 아니라, 사람이 더욱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건강증진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영성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인데, 참여자들은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영성지도에 대한 지식과 기술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가 변화되는 것을 경험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신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그 존재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신적인 빛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여러 영성지도자들은 영성지도를 할 때 종종 초를 켜 둔다. 그것은 주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에서다. 소리 없이 일렁이며 타오르는 촛불은 때론 우리가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할 때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빛이신 주님을 상징한다18:20, 8:12. 그리고 영성지도 대화에 참여하실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화를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어두운 내면을 비추어 주셔서 평소 스스로는 알지 못하던 깊은 생각과 감정까지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영성지도란 이러한 하나님의 빛에 자신과 상대방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영성지도자는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사람, 곧 피지도자directee를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내면을 하나님의 빛으로 채운다. 이렇게 영성지도자가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서 형제, 또는 자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환대의 공간을 제공하게 되면, 피지도자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하나님의 빛이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밝히시는 것을 경험한다. 나는 영성지도 시간에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마치 햇살을 투과시키며 밝게 빛나는 나뭇잎처럼 어떤 이는 연초록빛으로, 어떤 이는 울긋불긋한 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본다. 그렇다. 빛 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은 원래 아름다운 존재다.

이번 여름 영성지도자 훈련에서도 많은 이들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본다. 영성지도자로서 성장하는 것, 무엇보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빛 속에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의도하신 각각의 고유한 아름다움에 점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참된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알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열등감과 교만은 일출 직후의 어둠처럼 무기력하게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참된 존재가 아니라 허상虛像, 곧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점점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될 때, 이 땅에도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시고, 그 빛 아래서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셨다. 정말 아름다웠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바람연필 권혁일

이글은 〈소망말씀나눔〉 2018년 8월호에 게재된 에세이입니다.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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