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참고 서로 위로하고 (토마스 아 켐피스)

한 줄 묵상 2016.05.09 15:41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나 그 어떤 약점을 감내하는 일에 있어서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대 또한, 다른 사람들이 참아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도 자신을 원하는 바대로 만들어 나갈 수 없는 마당에,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대의 의사를 추종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지음, 구영철 옮김, 《그리스도를 본받아》(가이드포스트, 2009), 제1권, 제16장.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고, 비록 '부부의 날'이나 '형제자매의 날'은 없지만, 오월은 가족들이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는 때입니다. 그런데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서로의 약점과 약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가정 갈등은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또는 형제 자매가 서로를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하거나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불만과 분노가 차지하게 됩니다. 가족이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상처와 스트레스를 주고 받는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사실 서로에 대해서 참아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잘 안 될 뿐이지요. 이런 점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조언은 우리가 귀담아 들을 만합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가령 성격이 급한 남편과 우유부단한 성격의 아내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의 성급함을, 남편은 아내의 우유뷰단함을 서로 참아 주어야 합니다. 


또한, 토마스는 우리는 자신도 자신의 뜻에 원하는 바대로 완전히 바꿀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억지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르침과 권면을 일절 금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부모가 자녀의 나쁜 습관을 바로 잡기 위해 훈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부모가 자신의 나쁜 습관을 성찰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본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자녀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가 없습니다. 


요약하면 토마스의 조언의 핵심은 '자기 성찰'에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약점이 많은 존재인지, 잘 변하지 않는 존재인지를 마음에 새긴다면 상대방의 약점과 변하지 않음을 인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점이 많고 고집 센 자신과 함께 살아주는 배우자에 대한, 또는 아껴주고 인내해 주는 부모와 자녀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불평과 분노를 이기게 될것입니다. 토마스는 이것이 곧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 '서로 짐을 지는 것'(갈6:2)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타인의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서로 배워야 한다고 명하셨습니다. 

잘못이 없거나 짐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 

오히려 우리는 서로 참고 서로 위로하는 동시에 돕고 가르치고 권면해야 합니다.


 / 권혁일



posted by 바람연필

모욕을 참는 힘 (아빌라의 테레사)

한 줄 묵상 2015.05.25 21:00

이런 성과[모욕을 참을 결심과 모욕을 모욕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랑을 얻는 것]를 거두지 못하고 굳세게 참는 힘을 기도로써 얻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악마가 선사하는 착각인 것으로, 우리는 그에게 넘어가서 스스로 가장 존경을 받아야할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완덕의 길》에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모욕을 참기 힘든 데 있습니다. "나에게 먼저 알리지 않았다. 나만 배제당했다. 내가 모욕당했다. 나를 무시했다. 나는 존재감이 없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모욕당한다는 느낌입니다. 모욕당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주어집니다. 굳세게 모욕을 참아넘길 수 있는 힘이 기도로 주어진다는 것은 큰 위로입니다. 그런데 그냥 굳세게 참는 게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일치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됩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아들이 받아낸 모욕에 비하면 내가 당하는 것은 어떤 것도 모욕으로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그 사랑 안에 머무는 힘을 잃어버리면 내가 존경받을 구석이 있는 사람인 양 생각됩니다. 내가 가진 직분, 내가 가진 사역의 역할, 내가 가진 나이와 경륜이 나의 존경의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예수의 데레사는 그것이 은혜의 선물이 아닌 사단의 유혹임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허겁지겁 기도해가며 지내고 있는 요즘, 가끔씩 주변사람에게 날이 선 목소리가 되어가는 것을 자각하는 요즘, 굳세게 참는 힘을 얻을 때까지 한 자락의 기도라도 마음을 다해 올려드려야겠습니다. / 진정한 열망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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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고통에서 건져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 사랑을 위해 결연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 로렌스 형제 (1605-1691) 지음, 오현미 옮김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좋은 씨앗, 2006), 114.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하겠지만 난 군대 생활이 좋았다. 무질서 하던 대학 새내기 생활을 뒤로하고, 규칙적인 삶과 규칙적인 식사 속에서 난 내 몸이 처음으로 건강해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몇 주간은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눈동자 하나라도 흔들리면 바로 장교들이나 고참들의 소리와 물리적인 압박이 가해져 왔다. 훈련소에서 처음 행군 나가서 몇 주만에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던 바깥 세상의 가게며 마을이며, 집들을 보았을 때, 난 처음 탈영을 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참아서였는지 용기가 없어서였는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격 훈련에 앞서 군기를 잡기 위해서 심한 얼차려를 받았다. 속된 말로 구르고 또 굴렀다. 군복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머리며 코는 흙먼지로 뒤범벅이 되었다. 육체의 한계라는 말이 오래간만에 생각나는 날이었다.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땀투성이, 먼지 투성이가 된 훈련병들을 향해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소대장이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 말이 내 군생활을 건강하게 했던 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 하루 즐기며 견디었고, 제대할 때에는 난 정말 건강해져 있었다. 


그런지가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신앙의 여정은 언뜻 보면 지루하고 더딘 여정 같지만, 어찌 보면 군대보다 더 힘들고 더 농도 깊은 고통의 시간일 때가 있다.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알고 그 속에서 말씀을 붙잡고,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군인보다 더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여전히 느끼는 내 모습은 될 수 있는 대로 고통을 피하고 싶고, 두려움에 맞서기를 꺼리는 그런 소심한 나다. 군대에서는 군기가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 여전히 피하지 말고 감당해야 한다. 그 분을 사랑한다면 기꺼이 맞서야 한다. 그래서 또 무릎 꿇고 그 분 앞에 엎드린다. 


"주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 소리벼리 정승구


posted by 소리벼리

용서와 인내의 찬양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한 줄 묵상 2014.06.11 11:30

내 주님, 당신 사랑 까닭에 용서하며

병약함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이들을 통하여 찬미 받으시옵소서.

평화 안에서 이를 견디는 이들은 복되오니

지극히 높으신 이여, 당신께 왕관을 받으리로소이다.

- “태양 형제의 노래(피조물의 노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글》 , 프란치스코 출판사



프란치스코는 <피조물의 노래>에서 태양 형제, 달 자매, 바람 형제, 물 자매, 불 형제, 땅 자매 등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알아차리고 노래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찬양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키는데, 그 사람들은 용서하는 사람이고 인내하는 사람들이다. 삶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하나님께 찬양이 되는 삶으로 프란치스코는 용서와 인내를 주목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찬양은 용서하는 삶이다. 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찬양은 평화 안에서 고난을 견디어 내는 삶이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찬양이란 단순히 노래부르는 행위가 아니다. 삶이 곧 찬양이다. 그러므로 용서하는 삶과 인내하는 삶이 없는 찬양은 감정적인 위로 경험의 추구일 뿐이다


그러나 용서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는 얼마나 쉽게 형제자매의 작은 말 하나에 작은 행동 하나에 상처받았다고 화를 내고 있었던가? 또 인내하기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는 얼마나 쉽게 몸의 작은 고통에 그리고 삶의 작은 시련에 짜증을 내고 안절부절 했던가? 용서와 인내에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겨워 그 발자취를 따르는 길뿐이라고 프란치스코는 가르쳐 준다. 예수님을 지긋이 바라보아야 용서하는 마음이 올라오고, 인내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오늘도 예수님 때문에 용서할 수 있기를, 예수님 때문에 인내할 수 있기를! / 이강학




posted by 아우의 마음

삶의 파고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한 줄 묵상 2013.08.23 05:27

분별력과 선견지명이 있는 부모는 그들의 사랑하는 아이를 인생의 큰 파고에 내어 놓을 때, 그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방주에다가 안전하게 둔다(출 2:3). 각양각색의 나무판들로 짜여진 그 방주는 서로 다른 다양한 교육을 뜻하는데, 이것은 삶이란 파도 위를 떠다니게끔 붙들어 준다.   


-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395) , 《모세의 생애》, 2권 7.


온실의 화초는 사계절이 없다. 

제한되고 짜여진 환경을 맛볼 뿐이다.

겉으로 매끈해 보일지 모르지만, 

막상 손에 쥐어 보면 줄기가 허약하고 향내가 빈약하다.


산전수전, 

야생화를 보라.

비바람을 견딘 인고가 묻어있다. 

각양각색 벌과 나비들을 환대했던 온화함, 넉넉함이 스며있다. 

줄기는 단단하고 코를 쏘는 향내가 몸을 둘렀다.


가시를 세워 다가오는 삶이란 거친 파도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줄 신앙은 무엇으로 엮여질까? 


기쁨, 슬픔, 걱정, 희망, 안전, 외로움

다양한 얼굴로 다가오는 삶의 조각들을

마음을 열어 환영해 보자.

내가 싫고 힘들어 하는 것들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 달라고 소리칠 일 아니다.

대신 양식으로 삼아보자.


이제 이틀 후면

19년간 함께 있었던 큰 딸이 기숙사로 떠나간다.

처음 집을 떠나 생소한 환경을 잘 견뎌낼까?


이 아이가 삶의 파고를 즐길만한

교육이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도록 두 손을 모은다. 


/ 임택동

posted by 산처럼

이웃 사랑, 고독의 진통제 (아빌라의 테레사)

한 줄 묵상 2013.08.10 17:13
이 경우 무엇보다 해로운 것은 고독입니다. ……… 그렇다고 그 당사자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을 어떻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영혼의 고통과 압박감이기 때문에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제일 좋은 방법이 있다면 - 고통을 없앨 방도는 모르므로, 그걸 없애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있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하는 일, 그것도 드러나는 일에 힘쓰는 것과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희망을 거는 사람을 저버리실 리가 만무합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6궁방, 1장. 13절.


고독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되기 어려운 병과 같다. 외부에 있는 타자가 제시해 주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마음의 상태이기에, 더더욱 고독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빌라의 테레사는 고독이 하나님께서 보다 큰 은혜를 주시려 할 때 허락하시는 마음의 시련이라고 밝힌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연합으로 도달하기 이전 깊은 정화의 과정에서 영혼이 경험하는 하나의 시련이다. 그것의 중요한 특징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니 잠깐의 외로움이나 기도가 잘 안되는 그런 것과는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테레사는 이 고독의 고통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 시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어서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참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독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의 얕은 지식과는 상반된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고독의 약이라니! 외부에 있는 사랑이 고독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사랑이 고독의 고통을 경감시켜준다. 오늘도 이 역설적인 진리가 내 안에 좀 더 깊이 스며들길 소망한다. 테레사의 말대로 이웃 사랑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행동이기 때문에…….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posted by 작은소리찾기

약한 병사의 고백 (주기철)

한 줄 묵상 2012.09.08 01:25
  • 목사가 되었어도 언제나 작은 문제 앞에 연약함을 느낍니다. . 영원히, 영원히 난 문제 앞에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연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앞에 내 연약함을 내어 드리고 그 분께 나의 삶에 들어오시도록 간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말씀에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BlogIcon 소리벼리 2012.09.08 07:56 신고

나같이 연약한 약졸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어 내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하는 것 뿐입니다……주님을 위해서 오는 고난을 내가 지금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주기철 (1897-1944), <오종목의 나의 기원>.

 



나이를 조금씩 더 먹을수록 삶이 이전보다 더욱 힘들다고 느껴진다. 그것은 내게 닥쳐오는 어려운 일들이 짧은 시간에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주기철 목사님은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고문이라도 한두 번에 끝난다면 이길 수 있지만, 한 달, 두 달, 일 년, 십 년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난은 견디기가 어렵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분은 결국에는 장기간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순교의 꽃을 피웠다.

 

주기철 목사님께서 오랜 기간의 고난을 이겨내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분은 먼저 자신이 강철 같은 투사가 아니라 연약한 약졸임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래서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그 고난을 이겨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또한 그분은 지금 고난을 피하고 평안과 즐거움을 누린다면 나중에 주님의 얼굴을 뵐 낯이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비단 일제치하 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의 책제목처럼 우리의 영적 여정은 한 방향으로 가는 오랜 순종”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의 길이다. 그 길을 걸어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님을 뵐 면목이 생긴다. 그길을 끝까지 걸어 갈 수 있는 이는 주님만을 의지하는 약한 병사이다. / 바람연필

posted by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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