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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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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화의 입맞춤 (길선주) 그리고 오늘 이후로는 "의는 평화와 입을 맞춘다." 하는 말을 기억하고, 정의의 기초 위에 서서 싸움할 자가 될 것 같으면 정의의 무대에서 평화의 막이 열리도록 "위로부터 손을 펴서 지배하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도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마음에 평화가 오지 않는 법입니다. 가정 안에 싸움이 있을지라도 의로운 자가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그 가정에 참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오늘과 같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곳이든지 불의한 까닭입니다. 이후 세계 역시 정의와 인도에 의하여 행하지 않으면 참말 평화는 오지 않을 줄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는 것이지만 아무쪼록 여러분은 시편 85편 10절에 "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는 이 말로써 하나님 앞에서 기..
이웃 사랑, 고독의 진통제 (아빌라의 테레사) 이 경우 무엇보다 해로운 것은 고독입니다. ……… 그렇다고 그 당사자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을 어떻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영혼의 고통과 압박감이기 때문에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제일 좋은 방법이 있다면 - 고통을 없앨 방도는 모르므로, 그걸 없애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있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하는 일, 그것도 드러나는 일에 힘쓰는 것과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희망을 거는 사람을 저버리실 리가 만무합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6궁방, 1장. 13절. 고독은 어떤 약으로도 ..
영적 성장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정한 영적 성장은은혜가 주는 위안을 누릴 때가 아니라, 그런 은혜의 부재를 겸손과 자기초월과 인내로써 견디어낼 때 일어난다. 그러므로,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생활이나 다른 경건생활이 시들어지지 않게 하라.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ook 4, ch. 7. 하나님의 임재와 터치를 느끼는 것은 실로 달콤한 경험이다. 기도 중에, 말씀묵상 중에, 예배 중에 그런 경험을 갖게 될 때 흔히 우리는 '은혜 받았다'고 말하곤 한다. 서구 영성사의 전통적 표현으로 말하면, (영성적) '위안'(consolation)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경험이 깊었던 영성가들은 한결같이, 그런 영성적 "위안"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 영성..
인간의 고귀함 (마카리우스) 당신의 고귀함과 존엄함을 깨달아 아십시오. 그리스도의 동생이요,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왕의 친구요, 천상(天上) 신랑의 배필인 당신은 참으로 영화로운 존재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이렇게 존귀한 것임을 절감하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은 하나님의 권능과 신비를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야 당신은 진실로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만이 그대가 영락(零落)의 존재임을 깨우쳐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십자가를 지나 영화롭게 되시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오르셨듯이, 십자가의 고난과 겸비를 그분과 함께 겪고, 그리스도의 몸에 합류하게 되고, 나아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John Wesley, ed. An Extract from the Ho..
말과 글이 아닌 참여하고 체험하는 신앙 (밀란의 암브로스) 그(신랑)는 신부의 기도와 유혹, 즉 설교자의 유방을 밀쳐버리지 않는다. 그는 인자하게 신부를 집 안으로 인도한다. 마지막으로, 종종 멀리 떠나 신부가 찾아다니게 하거나 신부로부터 입맞춰달라는 부탁을 받곧 했던 신랑은, 신부의 감정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본다 (아 2:9). (이렇게 해서) 신랑은 완전히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신부를 불러 자기에게 오게 하여 서로 즐겁게 대화하며 뜨거운 사랑의 번제를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시편 118편 주해). 밀란의 암브로시우스(Ambrosius of Milan, c. 340~397), Expositio Psalmi CXVIII, M. Petschenig 편집, CSEL 62. 5 (Vie..
뾰족집이 교회란 말입니까? (조지 폭스) 오람에 있는 뾰족집(a steeple-house)에 갔을 때에, 얼마 있자 한 신앙고백자가 와서는 내 가슴을 밀치면서 교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쯧쯧 가엾은 사람같으니라고! 뾰족집이 교회란 말이요? 교회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를 주고 사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5. One Man May Shake the Country for Ten Miles (1651-52)년의 글 중에서 한 목사님의 설교집에 있는 '지금의 교회는 하나님의 무덤'이라는 표현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울컥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교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능력도 권세도..
사막의 열매 3 : 바쁜 여가, 조용한 활동(컬른의 브루노) 실제로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이곳[사막]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만큼 그곳에 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덕의 씨앗들을 부지런히 재배하고 낙원의 열매들을 기쁨으로 먹으면서 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눈(eye)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눈은 신성하신 신랑을 명료하게 바라 봄으로써 그로 하여금 사랑으로 상처입게 한 그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맑아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쁜 여가를 보낼 수 있으며, 조용한 활동 속에서 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투의 고생스러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운동 선수들에게는 간절히 기다리던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 보상은 세상이 무시하는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컬른(쾰른)의 브루..
믿음의 눈 (노리치의 줄리안) 그리고 나서 나는 (마음의 눈으로) 한 순간 하나님을 보게 되었는데, 그 비전에서 나는 그분께서 만물 안에 계신 것을 보았다......만사는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죄는 없다......(따라서) 죄란 그저 없는 일이다(sin is no deed).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2 – c.1420),《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11. '계시' 중에 줄리안은 '순간'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I saw God in a point"). 줄리안이 보니, 모든 것에 하나님이 계셨고("He is in all things"),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다("there is no doer but He"). '궁극적 실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