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
1. 어느 어두운 밤에 사랑에 불타 열망하며 좋아라, 순전한 은혜여 아무도 모르게 나왔다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2.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옷을 바꿔입고, 비밀계단을 오른다 캄캄한 속에 꼭꼭 숨어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3. 행복한 밤에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은밀한 곳 빛도 없이 길잡이도 없이 나도 아무것도 보지 못 했다 내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빛밖엔 4. 그 빛이 나를 정오의 빛보다 더욱 확실히 인도한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그분께서 날 기다리시는 그곳으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5. 아, 나를 인도하는 밤이여 새벽보다 더 사랑스러운 밤이여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자를 한몸으로 묶어주는 밤이여 사랑하는 이는 사랑받는 자를 변화시키고 6. 내 가슴의 꽃밭 오직 그분만을 지켜온 그곳 거기서 당신이 잠드셨을 때 나는 당신을 어루만지고 잣나무의 바람이 부채가 되고 7. 작은 탑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나는 그분의 머리채를 만져드릴 때 부드러운 당신의 손으로 내 목에 상처를 내시니 나의 모든 감각은 끊어졌다 8. 망각 속에 나 자신을 남겨두고 사랑하는 그분께 내 얼굴 기대이니 모든 것이 멈추고, 나도 사라진다 백합화 떨기 속에 내 시름 버려두고 돌아선다 십자가의 성 요한 지음 권혁일 옮김 | 왼편의 작품은 16세기 스페인에 살았던 신비가 십자가의 성 요한(John of the Cross, Juan de la Cruze, 1542. 6. 24.- 1591. 12. 14.)의 "어둔 밤(The Dark Night)"라는 시이다. 이것은 연인과의 사랑을 노래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그의 하나님 체험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요한은 그의 수도원 개혁에 반감을 품고 있던 이들에 의해 납치 되어 어두운 감방에서 약 아홉달 동안 갇혀 지냈는데, 이 때 그가 경험한 고통과 은혜를 "어둔 밤"과 "영적 찬송 (Spiritual Canticle)"이라는 시에 담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둔 밤'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모든 영적, 육적 욕망으로부터 정화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과의 연합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둔 밤을 주시고,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안의 다른 욕망들이 어두워지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더욱 불타게 하신다. 우리의 삶이 어두워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고 삶의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품으며 기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바람연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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