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바이블칼리지_기독교 고전문학과 영성 5

기타/영성 동네 소식 2019.11.05 19:50

[영성동네소식] 


두란노바이블칼리지 '기독교 고전문학과 영성' 세미나 다섯 번째입니다. 오는 11월 7일부터 6주간 매주 목요일 오후에 진행됩니다. 산책길 연구원들이 강사로 섬깁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포스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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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영성아카데미 겨울 피정

기타/영성 동네 소식 2019.11.05 19:46

영성동네소식


한일영성아카데미 겨울 피정이 열립니다. 한일장신대학교 백상훈 교수(영성학)께서 인도합니다. 고요와 침묵 속에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아래의 포스터를 참조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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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나눔 시즌 6-3 : 아씨시 성 프란시스코의 영성

기타/영성 동네 소식 2019.11.05 19:38

영성나눔 시즌 6-3

아씨시 성 프란시스코의 영성


‘산책길’과 '레 미제라블'이 함께하는 '영성나눔' 시즌 6의 세 번째 강좌가 다음과 같이 열립니다. 산책길 유재경 연구원이 강사로 섬깁니다. 자세한 내용은 레미제라블 블로그(https://lesmiserablesitaewon.blog.me/221684995349)를 참조해 주세요.

    • 강사 : 유재경 목사(산책길 연구원, 대덕교회 담임목사)
    • 일시 : 2019. 11. 7.(목) 저녁 7:30
    • 장소 : 레 미제라블 (서울 용산 녹사평대로 26길 24. 3층)


posted by 바람연필

가을의 기도, 가을의 독서

가을의 기도, 가을의 독서

 

기도의 계절

가을은 기도의 계절입니다. 물론 1년 365일, 사시사철이 모두 기도의 날이지만 특히 가을이 되면, 두 손을 경건하게 모으고 고요히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은 아마도 언젠가 교과서나 엽서에서 읽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시구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 김현승, 〈가을의 기도〉 1연.

그렇다면 왜 하필 가을일까요? 이 시에서 말하는 가을은 산이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드는 단풍철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서서히 빛을 잃어 가는 나뭇잎이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다 덧없이 떨어지는 늦가을입니다. 이때를 시인은 침묵 속에 기다리다가, 낙엽이 떨어지면 드디어 언어로 기도하고자 합니다.

낙엽이 떨어지면 썩고 흙이 되었다가 다음해에 다시 새 순으로 돋아나는 자연의 법칙을 시인이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겨울의 문턱에 들서는 늦가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인생도 언젠가는 한 장의 낙엽처럼 쓸쓸히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직감하고, 기억하게 합니다. 참된 기도란 바로 이러한 인생의 유한함과 고독함이 머릿속과 가슴속에서 동시에 전율처럼 울릴 때 절대자 앞에서 “겸허한 모국어”로 발화됩니다.

 

기도의 언어

김현승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태어나 말을 배웠습니다. 그가 어머니의 품속에서 처음 듣고, 처음 한 말은 조선어였지만, 그가 자라 글을 배우던 시기의 국어(國語)는 일본어였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말인 1937년부터는 관공서와 학교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1940년부터는 신문과 잡지 등 한글로 된 인쇄물들이 거의 다 강제 폐간당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에게 있어서 “모국어”란 갓난아이와 같은 그의 가장 순수한 존재와 결합된 원초적인 언어, 그리고 자신의 정서와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진실한 언어였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남에게 보이기 위해 아름답게 꾸며낸 말이 아닌, 또는 형식에 맞춘 공적인 말도 아닌, 그리고 외부로부터 강제로 부여된 말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가장 진실하고 본능적인 언어인 “모국어”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의 언어는 자신의 유한성을 깨달은 사람이 발화하는 “겸허한 모국어”입니다.

그런데 시인에 의하면, 이 “겸허한 모국어”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언어입니다. 외국어를 습득하듯 자신의 지혜와 노력으로 배우고 연습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시어를 다듬듯 조탁하여 만든 언어도 아닙니다. 기도의 대상이자, 기도를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언어입니다. 이 진정한 기도의 언어를 얻기 위해 시인이 하는 일은 낙엽이 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의 말들을 섣불리 쏟아 내거나 중언부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겸허하고 진실한 기도의 말을 주실 때까지 침묵 속에 고요히 기다립니다.

침묵은 순수하고 진실한 기도의 언어가 탄생하는 자궁입니다. 물론 침묵 가운데 기도할 때 실은 그 침묵 속에서 많은 말과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침묵기도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 잡념 또는 분심(分心)과 싸우다가 지쳐서 침묵기도는 나와 맞지 않는다며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분심이 일어나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 중에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은 어지러운 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기도 중에 다른 생각들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생각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생각들과 연결된 감정이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의 원인이 파악이 되면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흘려보낸(letting go) 뒤 다시 앞서 샛길로 빠진 지점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마음은 정화되고 침묵 속에서 솟아나는 순수한 기도의 언어로 서서히 채워집니다. 그리고 기도가 매우 깊은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 기도의 말이 다름 아닌 말씀(logos)이신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즉, 주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현존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침묵을 훈련하는 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나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마틴 레어드의 『침묵수업』(한국 샬렘)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가을의 독서와 기도

가을은 또한 독서의 계절입니다. 이 말은 너무나 식상한 말이지만, 사람들이 갈수록 종이책 대신 티브이나 유투브 같은 영상물만 보거나 스마트 폰으로 짧은 글들만 읽는 오늘날에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매우 절박한 호소가 되었습니다. 빠르게 전환되는 화려한 영상을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것과는 달리, 독서에는 보다 능동적인 참여가 요구됩니다. 글이 말하는 바를 파악하는 이해력과 글자들이 묘사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상상력은 물론, 말해지지 않은 행간의 의미까지도 탐구하는 추리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책은, 종이와 글자로 이루어진 텍스트의 세계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 들여 경험하게 합니다.

가을에 읽을 만한 좋은 책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기도의 좋은 자료입니다. 지난 상반기 ‘기도대각성’운동의 일환으로 우리 교회에서 펴낸 〈말씀의 샘에서 솟아나는 기도〉의 기획의도가 바로 독자가 말씀을 읽고, 그 독서 경험에서 솟아나는 기도를 드리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그 책을 아직 다 활용하지 못하신 분들은 이번 가을에 못다 한 부분을 읽고, 기도를 실천해 나가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이미 묵상지를 통해서 말씀으로 드리는 기도를 맛보신 분들에게는 헨리 나우웬의 《영성 수업》(두란노)이라는 책을 권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영성 지도》(Spiritual Direction)인데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비워 두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쓰고, 기도하는 훈련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마음속에서, 책 속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과 하나님과 이웃을 보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그룹으로 함께 읽고, 나누고, 훈련하면 더욱 좋습니다. 또한 영락수련원에서는 이번 가을에 ‘거룩한 독서 수련’ 2차(9월 26-28일)와 3차(11월 21-23일)가 예정되어 있으니, 오셔서 말씀으로 기도하며 주님과의 깊은 사귐을 누리시길 초대합니다.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의 배경은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이지만, 지금부터 침묵 가운데 그때를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겸허한 모국어”를, 진실한 기도의 말을, 무엇보다 말씀이신 주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을까요? / 바람연필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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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가을 포이메네스 사모 영성수련

기타/영성 동네 소식 2019.09.30 10:47

[영성 동네 소식]

목회자 사모님들을 위한 포이메네스 영성수련이 이번 가을에도 열립니다. 영적 회복과 하나님의 깊은 은총을 갈망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포스터를 참조하세요.

'포이메네스 영성수련'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영락수련원 웹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retreatcenter.youngnak.net/formation/intro)

  • 장   소 : 2019년 10월 28일(월) - 30일(수)
  • 어디서 : 영락수련원(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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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나눔 시즌 6-2 : "All shall be well " :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의 <사랑의 계시>

기타/영성 동네 소식 2019.09.30 10:15

'산책길'과 '레 미제라블'이 함께 섬기는 영성나눔의 시즌6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는 말은 단순히 긍정적 사고 방식에서 나온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 내린 희망에 대해 좀 더 알기 원하시는 분들을 초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포스터와 레 미제라블 블로그(http://blog.naver.com/lesmiserablesitaewon/221652658060)를 참조하세요.

  • 강사 : 이종태 박사 (산책길 연구원, 서울여대 대학교회)
  • 일시 : 2019년 10월 10일(목) 저녁 7시 30분
  • 장소 : 레 미제라블 (서울 용산 녹사평대로 26길 24.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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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동네 소식] 영성나눔 시즌 6

기타/영성 동네 소식 2019.08.17 18:33

산책길과 레미제라블이 함께 하는 '영성나눔' 여섯 번째 시즌이 시작됩니다. 일단 일정을 먼저 알려드리고,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소개하겠습니다.

| 시간 : 2019년 9~12월, 첫 주 목요일 저녁 7시30분
| 장소 : 레미제라블 (서울 용산 녹사평대로 26길 24. 3층)

     ​시즌 6-1 : 9월 5일 (목) 오후 7:30, 이경희 박사 
     시즌 6-2 : 10월 10일 (목) 오후 7:30, 이종태 목사 
     시즌 6-3 : 11월 7일 (목) 오후 7:30, 유재경 목사 
     시즌 6-4 : 12월 5일 (목) 오후7:30, 이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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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리우스와 조랑말(토머스 머튼)

토머스 머튼의 시를 한 편 우리말로 옮겨서 공유합니다. 마카리우스(Macarius of Egypt)는 4C의 사막 교부입니다. 이 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사막에서의 고독과 기도는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어 자신과 하나님과 형제 자매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맑은 눈'을 가지게 한다는 것 한 가지만 이야기하면 충분할 듯합니다. 혹시 인용하실 분은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카리우스와 조랑말

 

 

사막의 언저리에 위치한

어떤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들의 생각에는) 그녀는

마법에 걸려

조랑말로 변해버렸다.

 

그들은 먼저 그녀를 질책했다.

“왜 너는 이렇게 말로 변해야 했느냐?”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에게 고삐를 채워

뜨거운 황무지로 데리고 갔는데

거기는 마카리우스라 불리는

성인이 수도실에서

살고 있는 곳이었다.

“아버지” 그들은 말했다.

“여기 있는 이 젊은 암말은

저희의 딸입니다, 또는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수들이, 사악한 사람들이,

마법사들이, 이 아이를

지금 당신이 보시는 짐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기도해 주셔서

이 아이를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바꾸어 주십시오.”

 

“저의 기도는” 마카리우스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눈에는 암말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 여러분들은 이 착한 아이를

짐승이라 부릅니까?"

 

그러나 그는 그녀를 부모들과 함께

자신의 수도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께 말씀드리며

그 소녀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가 어떠한 사랑으로 그의 손을

그녀의 머리에 얹는지를 그들이 보았을 때에

그들은 즉시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결코 짐승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바뀐 적이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소녀였다.

 

“그대들의 원수들은

(마카리우스가 말했다)

여러분 자신의 눈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비뚤어진 생각이

(은자는 말했다)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을

새나 짐승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여러분 자신의 나쁜 의도가

(맑은 눈을 가진 이가 말했다)

세상을 유령들로 가득 채웁니다.”

 

 

토머스 머튼 지음, 권혁일 옮김

『분노의 계절의 상징들』에서

 


Macarius and the Pony

 

 

People in a village

At the desert's edge

Had a daughter

Who was changed (they thought)

By magic arts

Into a pony.

 

At first they berated her

“Why do you have to be a horse?”

She could think of no reply.

 

So they led her out with a halter

Into the hot waste land

Where there was a saint

Called Macarius

Living in a cell.

 

“Father” they said

“This young mare here

Is, or was, our daughter.

Enemies, wicked men,

Magicians, have made her

The animal you see.

Now by your prayers to God

Change her back

Into the girl she used to be.”

 

“My prayers” said Macarius,

“Will change nothing,

For I see no mare.

Why do you call this good child

An animal?”

 

But he led her into his cell

With her parents:

There he spoke to God

Anointing the girl with oil;

And when they saw with what love

He placed his hand upon her head

They realized, at once.

She was no animal.

She had never changed.

She had been a girl from the beginning.

 

“Your own eyes

(said Macarius)

Are your enemies.

Your own crooked thoughts

(said the anchorite)

Change people around you

Into birds and animals.

Your own ill-will

(said the clear-eyed one)

Peoples the world with specters.”

 

By Thomas Merton(1915-1968)

from Emblems of a Season of Fury

New Directions, 1963.

 

Macarius of Egypt (300-391)

 

 

 

posted by 바람연필

영성은 하나님 체험, 사랑의 체험입니다

기타/영성 관련글 2019.05.27 08:14

영성은 하나님 체험,

사랑의 체험입니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곧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 가지 사실이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비슷하게 오늘날 한국에서 ‘영성(靈性)’이라는 말도 상황이나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영성을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로 정의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령 영(靈)’과 ‘성품 성(性)’ 두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 영성은 지성(知性)이나 감성(感性)과 더불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기능(faculty)의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영성을 ‘사상’이나 ‘정신’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마르틴 루터의 영성’이라는 글을 읽어보면, 실제로는 그 내용은 마르틴 루터의 사상, 신념 등에 관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영성학의 분야에서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단어는 이현령비현령 같은 용어가 아니라 특정한 개념을 가진 단어입니다. 물론, 학자들마다 ‘영성’을 정의하는 표현은 다양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영어로 “lived experience of reality”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말로는 ‘실재(實在)에 대한 생생한 체험’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으므로,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생생한 체험(lived experience)’이란 독일어 ‘Erlebnis’를 번역한 말로서 다이빙 선수가 물속에 풍덩 빠졌다가 나오는 것처럼 짧지만, 그 체험 속에 들어가는 사람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하고 생생한 체험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리얼리티(reality)’, 곧 ‘실재’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하는 객관적 대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산들바람이 불어와 자신의 뺨에 부딪히는 것을 느낀다면, 이때 그가 인식(경험)하는 대상은 산들바람입니다. 또는 갓난아기가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때 인식의 대상은 갓난아기지요.

 

그런데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존재를 변화시키는 생생한 체험(lived experience)을 일으키는 대상은 일반적인 사물이나 현상이라기보다는 궁극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이 궁극적인 실재(the ultimate reality)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하나님 체험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현존(presence)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과 같은 강력하고 생생한 체험이 영성학에서 말하는 기독교 영성입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영성과 다른 종교 영성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원래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특수한 용어인데, 오늘날에는 일반명사가 되어서 다른 종교에서의 비일상적 체험을 뜻하기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영성’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spirituality’는 어원을 추적해보면 라틴어 ‘spiritualitas’에서 온 말로서,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바울 사도가 사용한 ‘영(pneuma)’ 또는 ‘영적(pneunatikos)’이라는 표현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영성은 ‘영(spirit)’이 그 핵심에 있습니다.

 

이때 ‘영’은 먼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Holy Spirit)을 지칭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엡1:17 참조). 좀 더 정확하게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곧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을 체험하는 것입니다(요14:16-17). 그래서 영성은 성령을 빼면 이른바 “앙꼬[팥소] 없는 찐빵”이 되고 맙니다.

 

또한 영성에서의 ‘영’은 인간의 ‘영’과도 관련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영으로서의 인간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8:16)라고 했는데, 아버지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이 만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지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게 되지요.

 

요약하면, 영성, 곧 하나님 체험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인식할 때 일어납니다. 이러한 하나님 인식은 나 자신의 외부에 있는 객관적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며, 또한 내가 성령 안에 있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 말씀을 읽을 때, 기도할 때, 찬양할 때는 물론이고 우리가 자연 속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바라보고 느낄 때, 그리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이와 같은 신비한 하나님 체험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하나님 체험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체험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0-12).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서 수평적으로 동료 인간들과 서로 사랑하면, 수직적으로도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복음서에 기록으로 남긴 요한 사도도 그의 편지에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데, 이것을 인식하고 깨닫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라고 말합니다(요일3:24).

 

이런 점에서 영성 생활(spiritual life)이란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 또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삶은 다름 아닌 서로 사랑하는 삶이며,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영성의 정수(精髓)입니다. / 바람연필 권혁일

 

영락교회 「만남」 545 (2019년 6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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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레네 영성지도자 전문과정 모집

기타/영성 동네 소식 2019.05.18 07:04

에이레네 영성상담센터에서 영성지도자 전문과정 입학생을 모집합니다. 에이레네는 영성지도자로 훈련받을 수 있는 기관입니다. 산책길 이강학 대표가 강사로 시작부터 참여해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포스터와 에이레네 웹사이트(https://cafe.naver.com/eirenecenter)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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