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그리우스의 기도와 묵상

에바그리우스의 기도와 묵상

에바그리우스 지음 | KIATS | 2011

 



기도에 대한 다양한 고전 작품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순하면서도 깊은 교훈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는 이집트의 수도자 에바그리우스(Evagrius of Pontus: 345-399)의 기도에 대한 글을 꼽을 수 있다. 이 글은 원래 에바그리우스가 스승인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우스(Macarius of Alexandria)에게 보낸 편지인데 153개의 짧은 글귀들을 모은 것이다. 그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91. 당신이 기도의 훈련을 연마하고 있다면 악마의 돌연한 습격에 대비하고 그 채찍에 확고부동하게 견뎌라. 실로 그것을 들짐승처럼 당신에게 나타나 당신의 온 몸을 학대할 것이다.

 

악마들을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기도를 훈련하거나 기도에 열심을 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막으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도자는 악마의 공격이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여, 실제로 악마가 공격을 해온다고 할지라도 당황하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이겨내고, 더욱 기도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키아츠에서 출판한 에바그리우스의 기도와 묵상은 작고 가벼운 소책자이지만, 에바그리우스의 기도에 대한 글들 외에도 영성 생활에 대한 묵상들과 권면들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하며 수도자적인 마음과 자세로 영성 생활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좋은 안내서다. / 바람연필 권혁일


《말씀의 샘에서 솟아나는 기도》(영락교회)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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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우스의 생애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

아타나시우스 지음, 전경미 옮김 | KIATS | 2019

 



4-5세기 무렵 이집트 사막에 살았던 사막의 수도자들은 고대 기독교의 대표적인 기도의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성 안토니우스(Antonius: 251-356)는 사막 수도자들의 효시가 되는 인물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회심과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영적 거장이다. 그는 젊은 시절 교회에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9:21)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여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고 평생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단순한 믿음을 가졌고,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않고 단순하게 순종했으며, 기도와 금욕의 단순한 삶을 살았다.


이 책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그러한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이야기한 전기로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296-393)에 의해 저술되었다. 아타나시우스가 묘사하는 안토니우스는 자신과의 싸움은 물론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영웅이자,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맞서서 교회를 지키는 수호자였다. 그리고 이러한 승리의 비결은 무엇보다 그가 기도와 금욕의 삶을 통해서 점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세워져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성인전(hagiography)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것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안토니우스가 얼마나 거룩한 사람인지를 전달하는 데에 그 초점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 기록된 일화들, 또는 그가 행한 기적들이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만큼 안토니는 거룩한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사건 하나하나의 진실성을 따지기보다는 안토니우스가 얼마나 진실하게 하나님을 추구했는지, 얼마나 단순한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이야기들로 엮어져 있어서 읽기도 쉽고, 영적 삶에 대한 교훈과 지혜 외에도 재미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안토니가 악한 영들과 싸우거나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부분들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할 정도로 흥미롭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고, 그림이나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재구성되어왔다. 또한, 그동안 기존의 한국어 번역본에 아쉬운 점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새롭게 좋은 번역본이 나왔으니, 이 책을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한 독자들은 물론, 이전에 읽어본 독자들도 새롭게 일독하면 좋겠다. / 바람연필 권혁일


《말씀의 샘에서 솟아나는 기도2》(영락교회)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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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의 변증법

“갈망의 변증법”

《순례자의 귀향》  The Pilgrim's Regress

C. S. 루이스 지음 ·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3 단평 



"한번은 그리피스와 바필드가 내 방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데, 내가 얼결에 철학을 "학과(subject)"라고 지칭했다. 그러자 바필드가 말했다, '플라톤에게 철학은 학과(연구주제)가 아니었지. 삶의 방식(a way of life)이었지.'"


루이스의 회심기《예기치 않은 기쁨》에 나오는 장면이다(p. 323). 그 때 자기 말이 "경솔했"다고 말하는 루이스는 실은 평생에 걸쳐 더없이 진지한 철학도였다. 루이스에게 철학은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 구도(求道)였고, 그 구도의 길 끝에서 그는 '참 철학'(True Philosophy)으로서의 기독교를 만났다. 루이스는 자신의 회심은 "감정적 회심이 아니었고, 거의 순전히 철학적 회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회심 후 쓴 첫 기독교 저술인《순례자의 귀향》은 그의 회심이 실은 그의 ‘철학적 여정'의 결과였음을, 20여년 후에 쓰인 《예기치 않은 기쁨》보다 더 여실히 펼쳐 보여준다. 그래서 두 책 모두, 특히 루이스가 아직 "쉽게 말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쓰인 앞의 책은 더, 어렵다. 따라가기 쉽지 않다. 그러나 두 책 모두, 철학에 문외한인 독자들까지도 끝까지 존/루이스의 여정을 따라가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바로, 루이스/존의 “순례”길을 처음부터 추동(推動)한 그것, “기쁨”이다. 


《순례자의 귀향》은 루이스가 "갈망의 변증법"(dialectic of desire)이라고 부른, 사람을 영적 순례자로, 철학적 구도자로 만드는 “기쁨”에 대한 책/알레고리이다. 존은 그만 그 “섬”을 흘낏 보게 되고 말았다.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존재들이 거하는 그곳 말이다.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이라는 문장에서 방금 당신이 멈칫 했다면, 아마 당신도 언젠가 그 “섬”을 본 적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그 세계 밖에, 그 문 밖에”(‘영광의 무게’) 처한 존재로 느꼈던 순간 말이다. 그 순간, 존은 “흐느껴 울었다.” 


존은, 루이스는 자신을 흐느껴 울게 만든 그 “기쁨”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 길에서 만난 각종 인물/사상들과의 조우와, 그(것)들과의 논쟁은, 알레고리 작품의 전형을 따른 것으로서, 루이스 당대 지성사, 문화사에 대한 적요이자, “기쁨”을 추구하며 그 “거짓 대상들을 하나하나 밝히고 거짓임이 드러나면 단호히 내버리는” 길을 걸었던 루이스의 철학적 여정의 궤적이다. 여기서, 《순례자의 귀향》은 루이스가 기독교로 회심한지 겨우 1년 정도 되었을 때 2주 만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작품임을 기억하자. 여러 비평가들은 루이스 사상의 집 골조는 이미 이 때 거의 완성되어 있었고, 루이스의 기독교 세계가 지닌 고유한 풍취의 연원이 여기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루이스는 하나님(“동쪽 산” “지주님”)을 믿기 전에 “하늘/초월/궁극적 실재”(“섬”)를 추구했으며, 그의 신학과 영성은 그 “섬”이 실은 “동쪽 산”의 일부라는, 즉 하나님은 “하늘의 님”이시라는 발견과 깨달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늘” 이야기를 “wishful thinking”이라 하여 의심하고 조롱하는 서구 근대 시대정신의 눈치를 보는 서구 신학자들과 달리, 루이스는 “하늘” 이야기를 철학과 신학 담론의 중심에 끌어들여,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thoughtful wishing"이 어떻게 우리를 진리/하나님께로 이끄는 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흔히들 루이스가 “영적 갈망”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하늘”의 존재를 논증했다고 하나, 루이스의 “갈망 논증”은 실은 그가 “삶으로 살아낸” 논증(lived ontological proof)이었고, 그렇기에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이라니. 그 “섬”을 정말 본 것이 아니라면! 하늘을 맛본 사람의 글에서는 하늘이 엿보일 수밖에. /이종태


홍성사 쿰회보 (2013년 12월호) 게재







순례자의 귀향

저자
C. S. 루이스 지음
출판사
홍성사 | 2013-11-1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C. S. 루이스가 회심 직후 쓴 자전적 소설 이 책의 주인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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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2014년 2월의 추천 고전을 2월을 넘겨서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꼭 2월에 읽어야 한다는 의미로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성 고전을 한 달에 한 번씩 소개한다는 의도로 게시하는 것이니 널리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래의 추천글을 읽어보시고 관심이 생기신다면, 시간을 내어 고전을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  편집자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이후정 역, 은성(1993)


 

마카리우스는 누구인가

     필자가 이 달의 영성 고전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마카리우스(Pseudo-Macarius, c.300-391)의 《신령한 설교》이다. 여기엔 50 편의 <신령한 설교><대서한>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들의 저자는 성서와 초대 교회 사막 영성에 영적 뿌리를 둔 위대한 영성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4 세기 후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도자들로부터 탁월한 영적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수련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징과 비유들을 사용하면서 값진 조언과 통찰들을 전해 주었다.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은 곧 문헌화 되었고, 당대의 수도자들 뿐만 아니라, 이후 동방과 서방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속적인 감화를 주는 영성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마음과 성령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영적 조언의 큰 줄기는 영성 생활에서의 마음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우리 마음은 지성적 활동의 중심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일, 그리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일, 뭔가를 갈망하고 욕망하는 일 등이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다. 즉, 마음은 지성과 감성과 욕망과 의지 등의 모든 내적 활동의 중심이며, 또한 우리 신체 기관들을 총괄하는 제어탑(control tower)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은 우리 전 인격의 중심이다. 그리고 여기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이곳을 통하여 성령이 오시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신다. 하지만, 사탄과 악마들 또한 이곳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마음 그 자체는 작은 그릇이다. 하지만 그 속에 용들이 있고, 사자들도 그곳에 있다. 그 속에 독을 가진 짐승들이 살고 있으며, 모든 악마의 비장품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곳에는 가파른 절벽과 거친 길들도 있다. 하지만 그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고 그분의 나라도 있다. 그곳엔 생명이 있고 빛이 있다. 또한 그곳에 사도들이 있고 천상의 도성들이 있고 은혜의 보화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그곳에 있다

-신령한 설교, 43:7.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우리의 마음의 모든 영역을 성령으로 온전히 채워가는 일을 수련의 중요한 과제로 강조한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깨닫는 일뿐만이 아니라, 생각을 조절하고,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는 일 등이 모두 우리가 그릇된 영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과 연합하는 일에 관계된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성령을 따르는 마음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사를 바로 알아 보고 올바로 경험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임을 소상히 밝혀준다.

 

     그러므로 영적 수련의 길은 성령과의 협력을 통한 오랜 동안의 정화의 과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중심적 것에 대한 집착(마카리우스는, 이를 세상적인 것들이라고 칭한다)과 천상적인 것(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충만한 것)을 잘 살펴 분별하고, 세상적인 것을 떠나고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우리 속에 채우려는 지향을 가지고 언제나 살아야 한다. 이런 삶의 정점은 아파테이아(apatheia)의 상태, 즉 세상적 욕망과 감정은 모두 벗어버리고 성령과 천상의 성격으로만 순전히 채워진 상태이다.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임재를 참되게 경험하며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된다.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성령과 협력하는 영적 수련에 있어서 겸손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자기 비움의 겸손, 자기 판단의 교만을 벗어날수록 우리 마음 속(이는 영적 전쟁의 전쟁터이다)에서 성령의 영토는 점점 넓어져가며, 이와 함께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 나아가 몸의 태도와 습관까지, 한마디로 우리 전 인격체로서의 몸이 점진적으로 성화되어 간다. 이러한 변화의 궁극에서 우리는 부활하시어 영화로워지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부활과 영생의 삶이 종말에만 있는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카리우스는, 주님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영화로워지신 빛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보았던 것을 거듭 거듭 상기시키면서, 부활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몸을 알아보는 일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비전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마카리우스의 영성 생활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은 신자의 삶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속에 임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재적 임재를 감지하며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만남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또한 그러한 일에 참여할 가능성이 지닌 우리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거듭해서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에 신자들이 어떻게 신자들이 다가갈 수 있는 가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후대에 끼친 영향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은 이후 헤시카즘(Hesychasm)으로 대표되는 동방 교회의 영성 전통 형성에 큰 토대가 되었다. 오리게누스(Origenus)와 에바그리우스(Evagrius)에서 비롯된 지성적 영성과 마카리우스의 마음의 영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동방 교회 영성을 형성해 간 것이다. 서방 교회 전통에서도 마카리우스의 설교들과 조언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서방 교회에서 신학과 교리가 삶과 실천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영성이 사변적이고 현학적이지만 무미건조한 것으로 변해가려고 할 때마다, 이런 경향에 경종을 울리고 이의 위험성을 알리는 시금석의 역할을 거듭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개신교 영성 전통에 마카리우스의 글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한 예로 경건주의(pietism) 운동의 지도자들은 마카리우스의 글에서 많은 통찰을 얻었다. 종교 개혁 이후 오직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이신칭의 교리를 법정적 용어처럼 이해하면서 믿음은 이런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로만 설명하려는 하는 개신교 스콜라주의적 성향이 나타났을 때, 경건주의자들은 이를 비판하면서 이신칭의의 진정한 의미는 거듭남이라는 생명과 삶의 덕목이라고 강조하였다. 마카리우스의 글들은 이런 경건주의 영성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주장이 초대 교회의 사도적 권위를 갖춘 것이라는 점을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 요한 아른트(Johann Arndt)는 이신칭의 교리의 진정한 의미는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에서 옳게 드러난다고 하는 주장을 견지하였다(G.A. Maloney, Pseudo-Macarius, 24). 또한 18세기 부흥 운동 당시에는 마카리우스의 조언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험에 다가가는 데 중요한 권위있는 초대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정되었다.


오늘날 갖는 의의 

     오늘날, 우리에게 마카리우스의 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신앙 생활에서 교리와 실천이 분리되고, 신앙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큰 위험으로 남아 있다. 마카리우스의 조언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위험을 감지하게 하고 그런 것들을 피하게 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마카리우스의 글은 우리 가운데 있는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들, 특히 감정주의적 신앙 체험에 천착하는 이들에게 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기독교인의 내적 경험은 우리의 감정과 경험과 지식과 의식까지도 모두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은사를 경험하는 일에 영적 규칙을 따르는 수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G. A. 말로니(Maloney)가 말하고 있듯이, “겸손과 사랑을 강조하는 마카리우스는 은사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마치 자신의 권력의 근거인양 사물화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처럼 여기다가 결국 그들의 영적 여정을 허망한 것을 만드는 것을 피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Pseudo-Macarius, p.26).

 

     다시 말하면, 회개의 중요성, 성령의 역할, 마음의 정화, 점진적 변화와 성장, 부활 그리스도와의 만남 등을 강조하면서 마카리우스의 글들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지고, 지식과 실천이 어우러지게 하여서, 신앙이 지식이나 명제들에 대한 지적 동의에 머무는 것에서 벗어나 성령을 통하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게 하고, 그 삶에서 하늘의 기쁨 맛보도록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마카리우스의 글과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  더 순결한 것으로 정화되고, 그리하여 우리의 영적 생활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더 풍성해지고, 우리의 태도는 좀 더 덕스러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 남기정.



Pseudo-Macarius (Paperback)

저자
#{for:author::2}, Pseudo-Macarius (Paperback)#{/for:author} 지음
출판사
Paulist Pr | 1992-08-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책소개
The writings of Pseudo-Macarius,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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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글

2014년 1월의 추천 영성 고전


Pope Innocent III has a dream of St. Francis of Assisi supporting the tilting church (attributed to Giotto)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겠으나, 그가 '글'을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프란치스코가 유명한 것은 그의 '삶' 때문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누구의 '삶'을 아는 것이 정말 그를 아는 것일 터. 그러나 과연 우리는 정말 프란치스코의 삶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프란치스코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일 경우 오히려 우리가 그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잘 모르고 있기 쉬운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우리가 그를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무수히 들어봤다고 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았다고 해서 정말 그를 아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오해하고 있기 싶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아야 한다. 그가 자신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말이다. 


물론, 성인(聖人)은 자기 '자신'에 관해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니, 하나님'께' 이야기한다. 프란치스코의 글은, '영성고전'에 드는 책들의 글이 그렇듯, 실은 '기도'다. 형제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그들을 '권면'할 때도, 공동체 '회칙'을 내릴 때도, 프란치스코는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기도'인 그의 글을 직접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프란치스코를 만난다. 가공되지 않은, 낭만화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프란치스코를 말이다. 


날 것 그대로의 프란치스코는 모든 '진짜'가 그렇듯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는 불편하리만치 엄격하고 관용적이며, 전통적이고 개혁적이며, 이성적이고 신비적이며, 비관적이고 낙관적이며, 가톨릭적이고 복음주의적이며, 인간적이고 거룩하다. 


역사상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중 으뜸은 단연 프란치스코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글은, 기도문은 복음서의 글만큼이나 단순소박하며, 깊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소위 영적으로 '도통'(道通)한 듯 보이는 말은 잘 없다. 프란치스코에게는 그저 '가난'이 하나님께 이르는 '도(道)/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이데올로기화한, 이후의 프란치스코 '파'들과 달리 가난을 '주창'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는 가난을 '노래'할 뿐. 


"귀부인이신 거룩한 가난이여, 

주께서 당신의 거룩한 자매인 거룩한 겸손과 함께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프란치스코는 "마음의 가난"을 이렇게 말한다. 


"여러 가지의 기도와 신심행사에 열중하고 육신의 많은 극기와 고행을 하면서도, 자기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 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뺨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프란치스코의 글은 유학을 와 프란치스코회 수사이신 교수님에게서 '프란치스코의 영성'에 대해 배울 때 처음 제대로 읽어 보게 되었다. 


가장 깊은 울림이 있었던 건 프란치스코가 구술했다는, "참되고 완전한 기쁨"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기록해 놓으십시오"...


라고 시작되는 그 글. 여기 소개하기보다는 독자 여러분께 성 프란치스코의 글 모음집을 구하여 그 전체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독하여 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 이종태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글(아씨시의)

저자
프란치스꼬회 지음
출판사
분도출판사 | 2004-10-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프란치스꼬회의 영성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를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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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and Clare

저자
Armstrong, Regis J. 지음
출판사
Paulist | 1982-03-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책소개
Francis (c. 1182-1226) and Clare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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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면, 그대 무슨 생각하시나요? : 본회퍼의 《옥중서간》

2013년 12월의 추천고전


찬 바람이 불면, 그대 무슨 생각하시나요?

: 디트리히 본회퍼의《옥중서간》


 

이 달에 함께 나누고 싶은 고전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옥중서간》이다


본회퍼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지가 벌써 68년이 되었지만, 그의 사상과 신학이 녹아 있는 옥중서간》은 작금의 한국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더욱 회람되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 한다. 특히 한 대학생의 대자보로 시작된 안녕하십니까의 물음은 예외 없이 우리 기독인들이 답해야만 하는 경건과 저항에 관한 물음이라고 하겠다


찬 바람을 견디다 못해 이미 얼어붙은 농토처럼 굳어 있는 우리네 영혼에 경건의 의미세상에 대한 저항 정신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책, 옥중서간》! 이 글에서는 먼저 본회퍼의 생애과 배경을 다루고, 그의 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검토한 후에옥중서간》에 나타난 그만의 경건과 저항의 영성을 다루고자 한다.

 

디트리히트 본회퍼는 1906년 독일 브레스라우(Breslau)에서 아버지 카를(Karl)과 어머니 파울라(Paula)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학적 전통이 유명한 튀빙겐(Tubingen)에서 공부했으며 <성도의 공동생활(Sanctorum Communio)>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년 히틀러 폭정하에 독일 교회들이 히틀러의 비위를 맞춰가며 그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에, 본회퍼는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를 세워 나치에 대항했다. 그 후, 본회퍼는 라인홀트 니버(Reinhold Niebuhr)의 권유로 뉴욕으로 건너갔지만 내가 이 어려운 시기에 나의 조국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다시 재건될 때에 나는 내 조국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조국 독일로 돌아 간다. 계속되는 반 나치 운동을 펼치던 본회퍼는 1943년에 체포되어 테겔 형무소(Tegel Prison)에 수감되어 2년을 지내고 광복을 몇 달 앞둔 1945 4 9일 다른 동료들과 함께 운명을 다하고 만다. 이 시기에 그는 부모 그리고 절친인 베트게(Bethge)와 그의 원숙한 신앙을 교류하게 되었고, 또한 기도문과 시 그리고 다른 에세이 등을 써 보내게 된다. 그의 서거 후, 베트게가 그의 글들을 모아 정리하였으니 그것이 지금 우리의 손에 안긴 옥중서간》이다.

 

옥중서간》에 녹아 있는 본회퍼의 사상, 즉 ‘(머리가 커져버린) 세상에 대한 이해 (The secular interpretation)’, ‘비종교로서의 기독교 (Religionless Christianity)’ 그리고타자를 위한 기독교 (Being there for others)’는 그의 철학적, 신학적 이해를 보여주는 주요한 개념들이다.

 

먼저, 본회퍼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철학자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의 영향하에 있다. 딜타이에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인간 자신의 주체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신의 존재를 긴급할 때 부르는 임시방편의 존재나 자기 편의를 위해 임의로 쓰는 존재로 더 이상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딜타이는 신의 존재를 정치나 법 그리고 일반과학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하였다. 본회퍼는 이런 딜타이의 영향으로 성인이 된 세상(A World come of age)’을 언급하였다. ‘성인이 된 세상의 의미는 이미 머리가 커져 버린 세상을 의미하는데, 이는 더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찾지도 않고 의지하려하지도 않는 세상이다.


           본회퍼는 또한 칼 바르트(Karl Barth)와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이었다. 칼 바르트는 종교적 선험성(Religion a priori, 경험 이전의 직관 혹은 감정)에 빠진 자유주의자들의 모순을 비판했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는 자유주의자들이 믿음과 신학의 영역을 감정에 국한시키고 형이상학적으로만 치부하며 세상의 일들과는 별개의 것으로 여겼다고 비판했다.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본회퍼는 <옥중서간>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약점은 그들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자리를 결정할 권리를 세상에 양보했다는 것이다그들은 세상과 교회의 싸움에서 비교적 쉬운 길을 선택했다” (180)[각주:1]  

 

본회퍼는 바르트의 영향하에 있었지만 또한 바르트의 실증주의적 입장을 비판했다. 즉, 바르트는 종교적 선험성으로 치닫는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였지만 실제적으로 아무런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바르트]는 교의학적 측면이나 윤리학적 측면에서 어떤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것이 그의 한계이다. 이것 때문에 그의 계시신학은 실증주의적[경험과 실증적 기반에 의해 얻어지는 지식만이 참된 것이라는 주장]이 되었다”(181).

 

이런 딜타이의 철학에 근거한 성인이 된 세상이해와 바르트의 종교적 선험성을 극복하려했던 신학적 이해가 그의 경건과 저항의 영성인 비종교적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타인을 위한 기독교(Being there for others)’를 만들어 내었다. 이 본회퍼의 이 두 용어 안에 들어있는 경건과 저항의 영성은 (종교적 선험성을 비판했지만 아무런 방법을 말하지 못한) 바르트와 달리,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인 예수의 길을 보여주는 현장의 영성이다.

 

그의 경건과 저항의 영성을 나타내는 비종교적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타인을 위한 기독교(Being there for others)’는 무엇인가? 딜타이(Dilthey)의 철학적 개념에 영향을 받은 본회퍼는 기존의 종교의 개념 - 라인홀트 지베르크(Reinhold Seeberg)나 칸트(Kant)의 선험적 개념, 즉 임시방편의 신 또는 복을 주는 신 - 을 거부하고 삶의 매 현장(정치, 입법, 자연 과학등)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따르는 비종교적 행위를 경건이라고 불렀다. 즉 기존의 종교 개념은 끝이 났고 삶으로 종교개념’ – 비종교적 개념 - 만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우리는 정말 비종교의 시대로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정말 종교적이기를 거부한다그리스도는 더 이상 종교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교회의 주인이 아닌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153-4).

 

예수님은 우리를 새로운 종교를 하자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그분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세상 안의) 새 삶으로 초대하기 위해서이다(199).

 

 

그래서 그는 인간들이 위험에 빠지는 순간 혹은 자기가 자기 꾀를 가지고 고전하다가 안 되면 다급하게, 슈퍼맨을 부르듯, 부르는 하나님을 거부한다. 그에게 이것은 신앙도 경건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함이 아닌 하나님의 약함과 고통 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라고 설명한다.

 

종교적인 인간은 인간의 인식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라든가 (대부분 본인들이 치밀하지 못하거나 자신들이 게을러서 생기는 경우지만)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경험할 때 신을 찾곤 한다. 사실 이런 신은 대부분 기계장치의 신’ (deux ex machina)이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거나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일 때만 이런 신을 부른다(154).

 

교회는 인간들 자신들이 해보다가 안 되면 신의 이름을 부르는 삶의 끝자리가 아닌, 삶의 중심에 세워져야 한다(155).

 

마태복음 8장 17절은 그리스도가 그의 전지전능함으로 우리를 돕지 않으시고 그의 약함과 고통으로 우리를 돕고 계심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196).

 

  

이런 기존의 선험적 종교개념을 거부한 본회퍼는 그의 매 삶 속에서 '비종교적' 행보를 걷게된다. 그리고 이런 삶은 고통받는 타인과 함께 있는 행동(프락시스 praxis)에서 구체화된다. 고통을 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그의 비종교적 기독교의 경건은 가해자들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본회퍼는 예수님의 경건 역시 세속적 삶에 기반한 타자를 위한 삶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타자를 위한 삶은 기득권들에게는 저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세속적 세상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고, 이 세상의 무신성(ungodliness)을 어떤 방법을 써서 종교적으로 은폐하거나 신성화해서도 안 된다 (198).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인간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는 절대적 변화의 경험이다. 이 예수는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경험이다(209).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가장 높고 가장 힘이 있고 가장 좋은 이미지로써의 종교적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예수가 거하는 현장에 참여하는 것을 통한 이웃과 함께하는 실재의 행동안에서 맺어지는 관계이다. 그 하나님은 동방의 제의 종교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괴하거나, 혼돈적이거나, 무서운 야수의 모습도 아닌 그저 타인을 위한 인간으로 계신 분이다. 그분은 그저 이웃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이다(210).

 

 

옥중서간》에 나타난 본회퍼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그저 선험적으로, 추상적으로, 현실도피적으로, 교회 안에만 머물게하는 그런 종교를 거부하는 비종교적 영성을 지니고, 가장 현실적으로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고통주는 자들에게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외칠 수 있는 저항 정신을 지닌 자였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살아가는 기독인들이 참으로 답답해하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숨통을 터줄 수 있을까? 로마서 13장 1절을 들이대며 무조건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의 사람, 본회퍼를 통해 감히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본회퍼의 옥중서간》에 깃든 경건과 저항의 영성이 팍팍한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을까?/ 이경희




옥중서간 - 디트리트본회퍼

저자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 1995-08-15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잘못된 국가 권력과 신앙인의 양심이 충돌했을 때 목숨을 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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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글에서 인용하는 《옥중서간》본문은 Dietrich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ed. Eberhard Bethge (SCM Press, 1967)의 본문을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비회원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 <사막교부들의 금언집>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이나 제가 언급한 것 외의 다른 한국어 번역본들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링크에 게시된 이강학 교수님의 글을 참조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강학 목사님은 두란노와 분도출판사의 번역본을 추천하시네요.^^

    http://cafe.daum.net/spiritus/cDyN/70?docid=1KV3mcDyN7020120402093840

    BlogIcon 바람연필 2014.02.04 04:39 신고

2013년 8월의 추천 고전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시간을 '때우기 위해' 교회 북까페의 책장을 기웃거리다가 반가운 제목을 발견했다. 이전에 어디선가 광고를 보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인데, 이곳 태평양 바다 건너편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은 평소 좋아하는 작가이고, 지리산도 스무 살 때 무거운 배낭 위에 텐트까지 얹어서 기다시피 올랐던 '지리산 등반대'의 초록빛 추억이 깃든 산이다. 게다가 평소 제법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교'에 관한 글이라 책 제목을 보는데 군침이 막 돌았다. 그러나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아도 이 책이 나의 예상과 달리 '교육'에 관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발견은 나에게 실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인터넷에서 찾아본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이 책은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으로 묶여지기 전에 <경향신문>에 약 9개월 동안 연재되었던 글이며, 책으로 출간된 이후에도 <MBC 스페셜>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고 한다(2011년 3월 4일).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이야기 속에 나온 사람들의 집이나, 이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지리산학교'를 찾는 방문객이 많다고 하니 가히 세간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제서야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고 앉아 있으니, "쯧쯧!" 수 년 동안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무지'와 지금의 '뒷북'에 대한 핑계가 될까? 


      어쨌든, 이 책은 다 '먹어 치우는' 데에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 책이 참 '맛있는' 이유는 먼저 이 책의 등장인물이 영위하고 있는 지리산 산골마을과 섬진강변에서의 삶이 세속적인 도시 생활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도시를 떠나 지리산으로 온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부를 욕망하는 삶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사람, 생명, 평화를 사랑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삶을 사는 데에 많은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적게 벌고, 적게 쓴다. '최 도사'라는 인물은 일 년에 몇 달 시내의 마트에서 주차 관리 요원으로 일해서 번 '연봉 200만원'으로 일 년을 충분히 산다. '낙장불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원규 시인은 방문객들을 위해서 자신이 사는 집을 통째로 비워주기도 한다. 공지영 작가의 손을 거쳐 맛깔나게 쓰여진 이들의 이야기는 행복을 찾기 위해 유형, 무형의 것들을 자꾸만 소유하려고 발버둥치는 도시인들에게 참된 행복은 오히려 소유가 아니라 욕심을 비우고 생명과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삶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인물들이 취한 의미있는 '방향 전환'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지리산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들이 아니라, 다른 도시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어떤 계기로 인해 지리산 산자락과 섬진강변으로 옮겨간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사업에 실패해서, 어떤 이는 결혼 생활에 실패해서, 어떤 이는 보다 의미있는 삶을 찾아 지리산으로 향했다. 모든 사람들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인생에서 어느 순간 중대한 '방향 전환'을 해야할 때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디에서 살 것인지와 같은 '장소'의 문제는 나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내 나이 올해 마흔. 평균 팔 십 년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산술적으로는 인생의 반환점 언저리에 서 있다.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만간 있을) 커다란 인생의 방향 전환을 앞두고 내가 누구인지,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나에게 신선하고도 가치있는 질문들을 던져 준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이 책에 나오는 지리산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떠나 보내지 않았다. 소문을 들은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그들의 집 대문을 넘나들고 있고, 특히 신문 연재와 책을 통해서 유명세를 탄 이후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많은 이들의 입과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에 이 '지리산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의 영향력은 앞으로 당분간은 지속되리라 본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삶은 이 책 속의 함태식 옹에 대한 글로 요약될 수 있다. 함태식 옹은 1972년 나이 마흔에 지리산에 입산하여 노고단 산장을 열고 거의 40년 동안 피아골 대피소를 지키며 많은 조난객들을 구한 인물이다. 


"노고단 산장에 처음 가서 내가 호롱불을 만들어 현관에 달아놨어요. 근데 작은 호롱불빛이 말이야. 멀리 화엄사 입구에서도 보여. 등불이라는 게 그렇더라고 어둠 속에서 헤매던 사람들이 그걸 보고 찾아오는 거야. 길게 밝혀 준다고 그걸 장명등이라고 하지."


그의 말대로 빛이라는 게 그렇구나 갑자기 우리는 숙연해졌다. 작은 일도 지극해지면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되는구나. 장명등,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 공지영,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서울: 오픈하우스, 2010), 57-58.


장명등(燈), 어두운 밤 멀리까지 빛을 비추는 등불처럼, 기이하면서도 소박하고 진실된 지리산 사람들의 삶은 한 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도시 생활이 커다란 기계가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굉음을 울리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 속의 삶 같은 한, 또 도시가 그 물질들을 소비함으로써 욕구를 충족하려는 소비자들로 가득 찬 백화점 같은 한, 이들의 이야기는 길게 한 줄기 빛을 비춰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로마제국에서의 기독교 공인(313년) 이후 세속화되고 타락해진 기독교 신앙을 벗어나 마음의 순전함(purity of heart)을 얻기 위해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지의 사막으로 들어간 4~5세기의 '사막의 수도자들'(Desert Fathers and Mothers)이다. 공지영 작가도 그녀의 책에서 지리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막 교부들이 떠오른다고 쓰고 있다. 그만큼 지리산 사람들과 사막의 수도자들은 여러 가지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들은 모두가 순수성을 잃고 점점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번잡한 도시 생활로부터 벗어나, 지리산/사막에서 단순하고 진실한 삶을 살며 그 속에서 참된 자아의 발견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더불어 이들이 물질을 소유하는 것보다 비움과 가치 추구를 통해서 행복을 발견하려 한다는 점, 이들이 도시를 떠났지만 도시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배우기 위해 몰려 온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삶이 하나의 '장명등'이라는 점들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공통점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천오백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보다도 더 큰 차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하지만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옛날 사막 수도자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만 짚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막 수도자들의 이야기로 넘어 가려고 한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은 주로 4~5세기에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사막에 살던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ntonius of Egypt)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훈련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사막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로 평신도들이었으며, 그 중에는 글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떤 이들은 혼자 동굴이나 무덤 등지에서 기거하는 은둔자(hermit/anchorite)로 살기도 하였고, 삼삼오오 모여 살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생활(cenobite)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가장 활발했을 때는 '사막을 도시로 만들었다'고 묘사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수도 생활에 자신을 내던졌다.


      당시 사막에서는 많은 경우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거주하며 수도 생활을 배워 나갔는데, 그들의 배움과 훈련 방법은 스승의 강론을 듣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스승의 삶을 관찰하고 따라서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씩 외부에서 찾아온 방문자들이나 제자들이 스승에게 질문하거나 "아버지여(abba, 여성의 경우는 amma),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가르침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책에 수집된 이야기들은 이와 같은 경우 영적 스승들이 남긴 짧은 가르침들 또는 이들과 관련된 짧은 일화들이다. 이 가르침들과 일화들은 구전과 기억을 통해서 전해져 오다 첫 세대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을 알지 못하는 다음 세대의 수도자들을 위해 그 일부가 기록으로 남겨졌다. 


      이 사막의 수도자들의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며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는, 이들의 가르침이 어떻게 하면 금욕생활 또는 수도생활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하여 금식과 철야, 그리고 여러가지 고행을 하기도 하였지만 고행 그 자체가 그들의 관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혜로운 스승들은 지나친 고행은 수도자를 교만하게 하여 수도생활의 본질을 흐릴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어떤 형제가 한 은둔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금식을 해야 합니까, 육체노동을 해야 합니까? 철야를 해야 합니까,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까?"


은둔자가 대답했다. "분별력을 가지면 이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소. 많은 사람들이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오. 오랜 금식으로 입에서 가시가 돋고, 말씀을 다 배워서 알고, 시편을 암송한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가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겸손과 사랑이오." 


- 사막 교부들 지음, 배응준 옮김, 《깨달음》(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서울: 규장, 2006), 199. 


      그렇다고 해서 사막의 수도자들이 늘 소위 '영적인' 이야기, 또는 실제 생활과는 관련이 없는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를 하고 산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화가 있다. 한 은둔자가 포에멘(Poemen)의 명성을 듣고 그를 만나러 왔다. 포에멘은 기뻐하며 그를 자신의 움막으로 맞아 들였고, 두 사람이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 은둔자가 "성경과 영적인 것들과 하늘에 속한 것들"에 대하여 말하였으나 포에멘은 다른 곳으로 얼굴을 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은둔자가 밖으로 나와서 포에멘의 제자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 제자가 포에멘에게 들어가 그 이유를 물었다. 포에멘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아래에 속한 사람이라 땅의 것을 말하는데, 그 분은 위에 속한 사람이라 하늘의 것들만 이야기하지 않소? 만일 그 사람이 영혼의 격정에 대해 말했다면 나도 기꺼이 대답했을 것이오. 하지만 그는 영적인 것들만 말했소. 나는 그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오.

-《깨달음》, 173.

 

이 대답을 전해 들은 은둔자가 다시 포에멘에게로 들어가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정욕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그는 포에멘의 대답을 듣고 깊은 감화를 받고 돌아갔다. 이 일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막 교부들의 이야기에는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인간적인 욕망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사막 수도자들의 옛날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인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난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책을 다시 읽다가 얼굴이 자주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약 1600여 년 전의 이야기들이 최근의 나의 어리석고 악한 마음과 행동들을 환하게 들추어 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 책이야 말로 기독교 영성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속에 기록된 이야기들이 모든 시공간을 초월해서 적용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한 인물들에게 주어진 가르침들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가르침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던지는 나쁜 생각들에 주의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의지를 따르면서 그것이 악마들이 공격이라고 핑계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쭉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중간 중간에 쉬어가며 충분히 묵상하고, 가능하면 주위의 벗들과 깨달은 내용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할 때 책 속의 내용들을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 옛날 사막의 수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할 가르침으로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수도자들의 이야기들은 여러 문헌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가르침들을 담고 있는 것은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압바(암마)들의 이름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모은 편집본(Alphabetical Series)과 주제별로 모은 편집본(Systematic Series) 이 두 가지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편집본들에서 이야기들을 추출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은 라틴어 선집 Verba Seniorum도 존재한다. 이 책의 영향력을 증언하듯이 한국어로도 여러 가지 번역이 나와 있다. 그러나 현재 필자가 해외에 거주하면서 이 모든 번역들을 두루 검토하고 좋은 번역을 추천할 수 없는 점을 독자들께 양해를 구하고 싶다. 다만 현재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한국어 번역본은 규장에서 《깨달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인데, 이 책은 펭귄 클래식스(Penguin Classics) 시리즈의 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이라는 영어 번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 영어본은 베네딕타 워드(Benedicta Ward)가 Verba Seniorum을 대본으로 옮긴 것으로 매우 공신력 있는 텍스트이다. 하지만 규장의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영어본에 있는 워드의 뛰어난 서문은 물론, 본문도 중간 중간 적지 않게 생략되어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장(chapter) 순서도 뒤바뀌었는데 매우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시원한 활자와 삽화가 이정선의 영감 있는 그림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 잡고 읽고 싶게 만들며, 중간중간 묵상할 수 있는 휴지(止)도 다는 점에서 위로를 삼는다. 


       한국은 아직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이곳 버클리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지리산 단풍만큼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 산책길에 본 나무에 벌써 옅은 빨간 물이 흠뻑 들었다. 공지영의 책에 나오는 지리산 사람들도 그렇고 사막의 수도자들도 모두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소박하면서도 참된 삶을 추구하고, 창조주가 디자인한 대로 각각 다양한 색깔의 잎사귀를 내는 사람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번 가을, 영성 고전 독서를 통해서 아름다운 삶, 순전한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기도하고, 실천하자. 그리하여 자신과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빛깔로 삶이라는 잎들을 물들여 가자. 우리 모두가 희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어두운 세상에서 각각 단풍빛의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지리산은 그 모든 골짜기 구석구석마다 다른 빛깔로 각기 다른 사람들을 품고 있으니까 말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26.

/ 권혁일



지리산 행복학교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사
오픈하우스 | 2013-11-0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망이 두려움을 넘어설 때 우리는 지리산 행복학교로 간다.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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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저자
사막교부들 지음
출판사
규장 | 2006-10-3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진정한 깨우침을 주는 참스승, 사막의 은자들! 사막 은자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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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저자
두란노아카데미 편집부 지음
출판사
두란노아카데미 | 2011-02-0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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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교부들의 금언집

저자
뻬라지오와 요한 지음
출판사
분도출판사 | 1999-08-14 출간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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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생활 교양서.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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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Paperback)

저자
Ward, Benedicta (EDT) 지음
출판사
Penguin USA | 2003-08-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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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ert fathers provided the 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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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 of the Desert

저자
Merton, Thomas (Author) 지음
출판사
New Directions | 1970-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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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sdom of the Desert was on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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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그리고 참여 (안토니의 생애)

2013년 6월의 추천고전


안토니의 생애 (The Life of Antony)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영성 고전을 소개하고 싶다안토니의 생애 (The Life of Antony)》는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ntonius of Egypt 또는 Ant(h)ony the Great)를 소개한 책이다. 비록 이 책은 약 1700여년 전에 쓰여졌지만, 순전한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애독되어 왔고, 지금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 쯤 곱씹고 고민해볼 만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안토니우스의 가르침과 설교의 주요 주제들은 무엇인가? 저자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를 통해 당시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안토니우스의 부르심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안토니우스의 교회론은 오늘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개신교는 안토니우스의 수도 생활, 은둔 생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등이다. 

 


·         시대적 배경


      이 책의 저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는 기독교 초기, 변증과 이단 논쟁을 통해서 기독교 교리가 확정되어 가던 격동기를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큰 영향을 끼쳤던 밀란 칙령(The Edict of Milan, 313)과 니케아 회의(The Nicaea Council, 325)를 직접 경험하였다. 무엇보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아리우스주의자들과의 설전은 그를 평생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의 투사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그는 아리우스를 경계하며 안토니우스의 입을 빌어 이렇게 권면한다.

 

안토니가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잘못된 주장을 아리우스파가 펼쳤을 때, 그는 흥분하며 그들에게 분노했다. “그러므로 그분(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자 말씀이신 분을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보다는 그분이 만드신 것을 더 경배하며 섬기는 ( 1:25) 이방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69).

 

믿음의 자녀들이여, 낙심하지 마시오. …… 여러분 자신을 아리우스파와 상대함을 더럽히지 마시오. 그들의 가르침은 사도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마귀들과 그들의 아버지인 사탄에게서 온 것이오. 정말로 사탄은 생명이 없고 지각이 없으며 무분별한 노새들처럼 올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한다오.” (82).

 


·         안토니우스의 삶


      그렇다면 안토니우스는 누구인가? 그는 251년 이집트의 작은 마을 코마(Coma)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무 살쯤에 부모를 여의고 모든 재산을 상속 받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순수한 신앙을 따르려는 열정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중에 네가 완전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라라는 말씀을 듣고 문자적으로 순종하여 그의 재산을 처분하고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살던 마을 근처에서 금욕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금욕주의자들을 만나보고 그런 삶을 공부했으며 서로의 가치를 배웠다. 그 후, 그는 그의 거처를 마을 근처의 무덤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수많은 야수의 모양을 한 악령들과의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15년후, 그는 완전한 고독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그를 단절시켰다. 나일강 동쪽 피스피르(Pispir)라는 곳에 자리를 잡은 안토니우스는 거의 2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나일강과 홍해 사이의 한 곳을 정하여 자신을 격리시켰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완전한 은둔이 아닌 필요에 따라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며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거나 도시로 나가는 현실 참여적인 수도의 삶을 45년간 살다가 105세에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         은둔인가, 참여인가?


《안토니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은둔인가 참여인가라는 화두는 참으로 아이들 말로- 생뚱맞다. 왜냐하면 그는 은둔과 금욕의 대명사이지, 현실 참여의 영성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우리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특히 거꾸로만 향하는 정치인들의 작태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그가 철저한 참여의 영성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은 수도자들이 그에게 간청하기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들에게 와서 그들의 생활을 감독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수도자들과 함께 길을 떠났으며, 낙타 한 마리가 그들의 빵과 물을 운반하였다. 그 사막은 온통 건조해서 그의 암자가 있는 산속을 제외하고는 물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거기에서 물을 걸어왔다. 바야흐로 숨 막힐 듯 한 열기가 온 땅에 가득 차고 물마저 도중에 떨어졌으므로, 그들 모두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곳으로 물을 찾아 헤매었지만 허사였고, 더 이상 길을 걸을 수 없어서 땅 위에 드러누었으며 삶을 포기한 채 낙타를 풀어주었다. 늙은 안토니는 모두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보자 몹시 괴로워하고 깊이 탄식하면서 그들을 떠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며 기도를 드렸다. 즉시 주님은 그가 기도하는 곳에서 물이 펑펑 쏟아지게 하셨다. (54)

 

며칠 후 그는 다시 산 속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했고, 그 중에서도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에게 담대히 다가갔다. 찾아온 모든 수도자들을 위해서 그는 어김없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55)

 

귀족 한 사람도 마귀에게 시달림을 당하며 그에게 왔다. 그 마귀는 너무 흉악해서 그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이 안토니에게 가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의 상태는 너무나 심각해서 자신의 배설물까지 삼킬 정도였다.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안토니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애원했다. 안토니는 그 젊은이를 측은하게 여기고 기도를 드렸으며, 온 밤을 그와 함께 새웠다. (64)

 

             그는 죽어가는 자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고 (54), 방문하는 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고 (55), 또한 귀신들린 자를 긍휼히 여겨 그와 온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64). 그의 삶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처럼 은둔의 삶 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은둔이 무엇을 위함인지 철저하게 알았기에 그의 삶은 아픈 자들과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한 현실 참여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사회운동가들처럼 참여만을 외치는 영성가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참여는 반드시 고독에서 만나는 하나님과의 경험에 기초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로부터 또 이런 간청을 받게 되었다. 군대의 지휘관 한사람이 많은 전령사를 보내 그에게 와줄 것을 청했다. 그는 가서 구원에 대한 몇 마디 말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충고를 전한 후, 서둘러 돌아가려고 했다. 공작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에게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으나 그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공손하게 해명하며, 그 공작을 설득했다.

물고기가 마른 땅 위에 잠시 나와 있으면 죽게 되듯이 수도자들도 여러분과 함께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 수도를 게을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고기가 바다로 가듯 우리는 산속으로 속히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 사이에 남아 있으면서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85)

 


·         은둔이다 그리고 참여다


      요즘은 정의가 땅에 뭍히고법을 준수하는 자가 냉소와 조소를 받는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거대한 기득권들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다 지쳐버려아니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을 운명처럼 여겨 버리고 급기야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는 듯하다. 국가기관의 권력을 남용하여 선거에 개입하였던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직원들의 잘못은 모른 체하고, 그것에 물을 타기’ 위해 이미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발언 등을 문제 삼는 모습은 세상에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지를 더욱 꺾어버린다. 그래서 많은 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게만 만들어 간다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안토니의 생애》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가그의 영성은 은둔의 영성인가 참여의 영성인가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부조리 가운데서, 그리고 약한자들이 처절하게 밟히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안토니의 생애》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참여다! 무엇인 진리인지 고민하지 않는 영성,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은둔이다! 그 참여의 영적 밑동’(영적 뿌리)은 한 발 물러나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안토니의 생애》는 다시 한 번 이 갑갑하고 떠나가고 싶은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가 105세의 삶을 살면서 타인의 삶에 참여했지만 뒤로 물러나 하나님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은둔에 뿌리를 둔 참여의 영성이다 / 나무 잎사귀 이경희




성 안토니의 생애

저자
아타나시우스 지음
출판사
은성 | 2009-02-28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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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anasius : The Life of Antony and the Letter to Marcellinus

저자
Gregg, Robert C. 지음
출판사
Paulist | 2010-06-25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Athanasius (c. 295-373) Bishop of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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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

2013년 4월의 추천 고전

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지음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요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나요?"

"무엇 때문에 우리가 짧은 순간의 경배로만 만족해야 하겠는가?" (34)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짧은 경배의 순간으로 끝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이들이 되물었던 질문이다. 쉬지않고 기도하며 예배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은 질문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소망을 키워갔다. 그러나 고백이 자주 드려지던 장소, 예배나 기도의 처소를 벗어나게 되었을 그래서 일상의 자리에 발을 딛기 시작하는 순간에 질문은 희미해져버린 경우가 많았다. 때론 많은 이들이 그것은 불가능한 소망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일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구별지으며 (?) 살아간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일상의 가운데 지속해간 사람들의 낯선 이야기는 반가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것이 젊은 청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일상을 통해서 도리어 깊이 하나님의 현존을 누린 사람에 관한 것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불만마저 생겨날지 모른다. 젊은 날에 꾸었던 이젠 접어둔 꿈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순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누리고 있는 이를 직접 만나 대화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있다. 나아가 그가 누구나 하나님 임재를 지속할 있을 아니라 방법이 매우 쉽고도 단순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다시금 꿈을 있을지도 모른다이것이 로렌스 형제가 하나님 임재 연습이 우리 마음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기는 이유일 것이다.

    로렌스 형제는 상처로 인해 의가사 제대를 하게 파리로 갈멜 수도원의 평신도 수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니꼴라 에르망라는 본명 대신에 로렌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로렌스 형제가 담당했던 일은 부엌에서 요리와 설겆이를 하는 것이었고 다양한 허드렛 일이 그의 주요한 과업이 되었다. 그러나 가운데에서도 (도리어) 일을 통해 깊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일거리들이 하나님 임재의 장애가 것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천상의 하나님을  깊이 누리는 비밀을 알게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단순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상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인간이 있는 훈련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필요한 연습은 하나님의 임재 연습입니다. 말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동행 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발견하고, 매순간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막힘이 없이 항상 그분과 겸손하면서도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특히 유혹과 슬픔의 시간,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같은 시간, 그리고 불성실과 범죄의 시간에 더더욱 중요합니다." (77)

그는 하나님 임재를 위한 연습과 훈련의 길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마치 몸에 습관처럼 되게 하라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꾸준한 연습을 통해 주님을 향한 끊임없는 지향이 본성의 일부가 되도록 것을 권면해준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 가장 한가운데로부터 우러나오는 겸손하고도 거짓없는 사랑으로 그분을 예배해야만 합니다.) ... 우리는 그것(예배) 우리 본성의 일부가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과 하나가 되시고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가 때까지 말입니다. 그것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82)

"이것도 하나의 습관이기에 몸에 배기까지는 쉽지 않지만 한번 습득되고 나면 거룩한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89)

   그가 하나님 임재의 연습을 대화와 서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권면할 있었던 것은 그의 몸과 안에 깊이 새겨진 경험적 확신 때문이었다. 마치 관성처럼 하나님을 향한 지향과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는 잠자는 시간에도 이어졌고, 계란 프라이를 뒤집는 순간에도 지속되었다. 그는 일상의 과업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행하기를 소망했으며, 그것들을 순결한 사랑의 행위로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실천적 가이드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지향하고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연습의 근본적 바탕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이다. 그는 "그분을 향한 순전한 사랑만이 삶의 모든 원동력입니다."(48)라고 고백하였다. 일상의 과업 자체보다 하나님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항상 그를 이끌었다. 일상 가운데 종종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일상이 하나님을 찾아 살아가는 자체가 되기를 소망했다. 하나님 임재를 향한 열망이 그의 삶의 모든 자리를 채웠고 그가 순전한 열망으로 일상을 감당할 하나님은 그의 중심에 자리잡으셨다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자리는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깊이 인정하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 임재 연습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정확히 모른다. 많은 이들이 하늘 어딘가에 그분의 자리를 가정하며 그분의 임재를 가끔씩 생각한다. 그리고 지향한다. 그러나 모든 순간을 하나님 임재로 살아간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자리가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임을 알았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아주 친밀한 분으로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하면 된다." (26)

 "그분은 ,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계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제게는 하나님을 향한 놀라운 경외심이 일었으며, 저는 오직 믿음으로만 만족을 누릴 있었습니다." (46)

    언젠가 나의 자녀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지구의 중력 때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순간 나는 지구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생각해보게 되었고우주의 무한성 안에서 어디가 우주의 위이고 아래이며 오른쪽은 어디이고 왼쪽은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이 닿게 되었다사실 우주는 앞뒤 좌우가 없고, 아래가 없다우리가 하늘이 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경험적으로는 극히 천동설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일지 모른다지구 반대편 아니 지구 아래 편에서 중력에 의지하여 매달려있는 그들의 하늘은 어디이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하늘 편에 자리를 펼치시고 계실 하나님은 우리 좁은 사고의 하나님이실 뿐이다.

   우리는 지구에 매달려 붙어있는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도 어느 하늘 한편에 계실 없는 분이다. 도리어 로렌스 형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찾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그리고 우리의 영적 여정의 모델은 등정의 사다리나 어떤 산이 아니라 이미 우리 중심 가운데 거하시는 그분을 향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로렌스 형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온전히 오신 분을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살아가면 충분하다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분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말을 걸고 들을 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이 우리 몸에 배고 자신의 일부가 때까지 있다면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이미 계신 분을 넘치도록 고백할 있을 것이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 임재 연습은 이미 많은 독자들의 입을 통해 추천되어 오고 있다. 필자 역시 대학시절 책과의 만남을 기억하며 그날에 꾸었던 하나님 임재와 동행의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로렌스 형제를 다시금 영적 벗으로 맞아들이며 이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여러 독자들과 함께 귀기일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하나님 임재 연습
저자
로렌스 형제 지음 배응준 옮김
출판
규장 펴냄 | 2008.04.28 발간
소개
하나님은 당신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신다! 평생을 평수사로서 수도원의 주방에서 일하면서도 하나님 임재를 끝없이 연습한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 임재 연습』.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기름을 부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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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아》와 다그 함마르셸드

<2013년 3월의 추천고전>

1961년 9월 18일 세계를 놀라게 한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 콩고 내전을 끝낼 평화협상을 중개하러 가던 유엔 사무총장의 비행기가 아프리카 밀림 상공에서 추락, 그를 포함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고/사건이었다. 사고가 아니라 암살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심증은 충분했다. 그가 이루려고 애쓰는 평화를 달가와 하지 않는 세력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증은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그 사고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있었다. 존 F 케네디가 '금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고 평했을 만큼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사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만큼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그 사무총장의 '내면세계'였다. 사고현장에서 발견된 그의 서류가방에는 그가 그 살벌한 갈등의 현장 한복판으로 가면서 들고간 두 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한 권은 <성서>였고, 다른 한 권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성직자 같은 정치인'이라고 불렸던 그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의 이름은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öld: 다그 함마슐드')다. 날마다 기도하며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는 그의 가방에서 성경이 발견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의외의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니. 현대 세계의 치열하고 복잡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유엔 사무총장의 가방에 중세 수도사의 책이라니. 성경과 더불어 발견된 책이 당대의 유명한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Reinhold Niebuhr)기독교 현실주의와 정치 문제 같은 책이었다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니. 


혹, 그 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공항 서점 같은 데서 어떻게 하다 집어 들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물증'이 있다. 바로 그가 남긴 일기장이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지인들은 뉴욕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1920년부터 죽기 며칠 전까지 그가 기록한 일기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후에 "Vägmärken(Markings)"라는 제명으로 (편집) 출판된 그의 일기는 세계 곳곳의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할 수만 있거든" 평화를 이루어내고자 분투했던 한 고귀하고 유능한 활동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그 내면세계에서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국제문제도 유엔활동도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서는 일, 즉 요즘 말로 '영성'이었다. Markings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들은 시편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저작,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20세기 중반 이후 인기(?)가 급격히 떨어진 영성고전이다. '현대인들'이―'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이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이 표방하는 영성을 (현대와 맞지 않게) 지나치게 금욕적, 수도원적, 중세적, 개인구원중심적, 도덕적, 율법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비판적(critical) 자세는 장려할 만한 태도다. 그러나 더 장려되어야할 태도는 고전을 비판적으로 '내 것 삼을'(appropriation) 줄 아는 읽기 능력이다. 함마르셸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정말 '읽었던' 사람이었다. 지인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집 침대 옆 탁자에는 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놓여 있었고, 그의 일기장이 발견된 곳도 그 탁자 위였다. 


개명한 현대에 더는 맞지 않는 수동적 태도를 장려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 중에서 함마르셀드가 그의 일기장에 인용하고 있는 한 부분이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뿌리를 박고 견고히 서 있는 이들이니, 교만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이 풍성히 받은 모든 좋은 선물을 다 하나님께로 돌리며, 따라서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한다. (II, X, 4.)


이 구절을 또박또박 옮겨쓴 뒤 함마르셸드는 여백에 "1953년 4월 7일"이라고 적어 넣었는데, 그 날짜는 바로 그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날짜였다. 


초인적 지혜와 인내, 또 용기가 요구되는 평화협상 자리에 가면서 그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가고 싶어 했던 이유를 이제 우리는 얼마간 짐작한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정말 그 일의 막중함과 어려움, 그리고 그 일에 따르는 유혹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했던 그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간절한 기도에 더욱 공감할 수 있으리라. / 산처럼







그리스도를 본받아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출판사
가이드포스트 | 2009-12-09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중세 경건 문학의 최고봉! 삶의 시간대를 초월하는 기독교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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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