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의 변증법”
《순례자의 귀향》 The Pilgrim's Regress
C. S. 루이스 지음 ·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3 단평
"한번은 그리피스와 바필드가 내 방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데, 내가 얼결에 철학을 "학과(subject)"라고 지칭했다. 그러자 바필드가 말했다, '플라톤에게 철학은 학과(연구주제)가 아니었지. 삶의 방식(a way of life)이었지.'"
루이스의 회심기《예기치 않은 기쁨》에 나오는 장면이다(p. 323). 그 때 자기 말이 "경솔했"다고 말하는 루이스는 실은 평생에 걸쳐 더없이 진지한 철학도였다. 루이스에게 철학은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 구도(求道)였고, 그 구도의 길 끝에서 그는 '참 철학'(True Philosophy)으로서의 기독교를 만났다. 루이스는 자신의 회심은 "감정적 회심이 아니었고, 거의 순전히 철학적 회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회심 후 쓴 첫 기독교 저술인《순례자의 귀향》은 그의 회심이 실은 그의 ‘철학적 여정'의 결과였음을, 20여년 후에 쓰인 《예기치 않은 기쁨》보다 더 여실히 펼쳐 보여준다. 그래서 두 책 모두, 특히 루이스가 아직 "쉽게 말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쓰인 앞의 책은 더, 어렵다. 따라가기 쉽지 않다. 그러나 두 책 모두, 철학에 문외한인 독자들까지도 끝까지 존/루이스의 여정을 따라가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바로, 루이스/존의 “순례”길을 처음부터 추동(推動)한 그것, “기쁨”이다.
《순례자의 귀향》은 루이스가 "갈망의 변증법"(dialectic of desire)이라고 부른, 사람을 영적 순례자로, 철학적 구도자로 만드는 “기쁨”에 대한 책/알레고리이다. 존은 그만 그 “섬”을 흘낏 보게 되고 말았다.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존재들이 거하는 그곳 말이다.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이라는 문장에서 방금 당신이 멈칫 했다면, 아마 당신도 언젠가 그 “섬”을 본 적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그 세계 밖에, 그 문 밖에”(‘영광의 무게’) 처한 존재로 느꼈던 순간 말이다. 그 순간, 존은 “흐느껴 울었다.”
존은, 루이스는 자신을 흐느껴 울게 만든 그 “기쁨”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 길에서 만난 각종 인물/사상들과의 조우와, 그(것)들과의 논쟁은, 알레고리 작품의 전형을 따른 것으로서, 루이스 당대 지성사, 문화사에 대한 적요이자, “기쁨”을 추구하며 그 “거짓 대상들을 하나하나 밝히고 거짓임이 드러나면 단호히 내버리는” 길을 걸었던 루이스의 철학적 여정의 궤적이다. 여기서, 《순례자의 귀향》은 루이스가 기독교로 회심한지 겨우 1년 정도 되었을 때 2주 만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작품임을 기억하자. 여러 비평가들은 루이스 사상의 집 골조는 이미 이 때 거의 완성되어 있었고, 루이스의 기독교 세계가 지닌 고유한 풍취의 연원이 여기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루이스는 하나님(“동쪽 산” “지주님”)을 믿기 전에 “하늘/초월/궁극적 실재”(“섬”)를 추구했으며, 그의 신학과 영성은 그 “섬”이 실은 “동쪽 산”의 일부라는, 즉 하나님은 “하늘의 님”이시라는 발견과 깨달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늘” 이야기를 “wishful thinking”이라 하여 의심하고 조롱하는 서구 근대 시대정신의 눈치를 보는 서구 신학자들과 달리, 루이스는 “하늘” 이야기를 철학과 신학 담론의 중심에 끌어들여,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thoughtful wishing"이 어떻게 우리를 진리/하나님께로 이끄는 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흔히들 루이스가 “영적 갈망”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하늘”의 존재를 논증했다고 하나, 루이스의 “갈망 논증”은 실은 그가 “삶으로 살아낸” 논증(lived ontological proof)이었고, 그렇기에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신처럼 지혜롭고 짐승처럼 자의식이 없는” 이라니. 그 “섬”을 정말 본 것이 아니라면! 하늘을 맛본 사람의 글에서는 하늘이 엿보일 수밖에. /이종태
'서평 > 이 달의 고전 (1차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바그리우스의 기도와 묵상 (0) | 2019.03.25 |
---|---|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 (1) | 2019.03.11 |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0) | 2014.03.02 |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글 (0) | 2014.01.16 |
찬 바람이 불면, 그대 무슨 생각하시나요? : 본회퍼의 《옥중서간》 (0) | 201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