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이라 하여 복술자[점을 치는 사람]처럼 길흉화복을 예측하거나 특별한 청탁으로써 하나님의 총애를 편취[치우쳐 취함]하는 것을 능사로 아는 것은 대단한 오해입니다. 신앙생활은 기술이 아니라, 천하의 대도, 공의를 활보하는 생활입니다.‘망하면 망하리라’는 각오로써. (성서조선 제63호, 1934. 4.)
- 김교신 지음(1901-1945), KIATS 엮음, 《김교신》(서울: 홍성사), 40-41.
예나 지금이나 '기술자'가 대우받는 모양이다. ‘대우받음’을 꼭 돈에 비유하는 자본주의식 발상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기술자'들이 늘 연봉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또한 교회에서도 '종교적인 기술자'가 더 대우받는 모양이다. 귀신 잘 쫓아내는 권사, 본당 쩌렁쩌렁 울리게 기도하는 목소리 큰 집사, 전도사보다 더 잘 가르치는 고등부 부장 장로, 어찌 평신도 뿐이랴! 기술자를 찾는 교회 흐름을 간파한 목회자들 역시, 찬양인도 기술, 설교 잘하는 기술, 새신자 정착 프로그램 기술, 상담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김교신은, 신앙생활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신앙생활은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에 취해(천하의 대도), 그 은혜가 주의 백성들에게 고르게 흘러가게 하는 것(공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죽으면 죽겠다’는 각오로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고, 신 앞에 홀로 바로 선 존재]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자를 꿈꾸는가? 아니면 단독자를 꿈꾸는가?
타말파이스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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