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을 시작으로 신앙력은 이미 한 해가 시작되었어요. 새해인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시간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갑니다. 신앙력과 세상력의 사이에서, 우리는 전자에 의한 고요한 기다림과 출발보다는 후자가 주는 힘에 더 압도되는 것 같아요. 모임도 많고 마음도 분주합니다. 커다란 박스를 꺼내놓고 12월 31일까지 한 해의 모든 것을 다 쓸어 담고 테잎으로 서둘러 봉인해 버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1월 1일을 장모가 사위 맞듯 그렇게 가슴만 두근거리는 채 일거리에 쌓여서 정신없이 맞아들입니다. 지난 한 해를 음미할 시간도, 새해를 조용히 가늠해볼 시간도 빼앗긴 채, 우리는 고속도로를 그저 질주합니다. 지나온 길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며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는, 즉 성찰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위협하는 이 강력한 힘, 저는 이 힘을 악마적이라고 느낍니다.
우리의 지난 한 해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역사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 즉 사건으로 구성된 나 자신의 역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영혼 구원이라는 말은 나란 사람이 존재하며 경험한 이 구체적 사건이 구원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체없이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지요.
이 세상의 인간 실존은 흙으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소멸 속에서 허무감을 끌어안고 삽니다. 이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보상받기 위해 인간은 온갖 것에 집착합니다. 건강, 젊음, 미모, 물질, 권력. 거기다가 신앙인들은 한 걸음 더 하여 교리를 맹신하는 종교 활동과 자기중심적 기복 신앙, 막연한 내세 만능주의를 움켜잡습니다. 그러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한 번도 건드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에서 자꾸 건조한 모래 바람이 이는 까닭은 집 지은 기초가 모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이 두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이끌려 울부짖을 일이 아니라, 그저 차분한 시선으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근거 없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성탄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그러하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온갖 흔적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흔적을 구체적인 내 삶의 역사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구원과 사랑, 거룩함에 대해 구체적인 감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일관된 방향과 그 방향을 향해 가속되는 안정된 힘을 느낍니다. 소멸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은 근거 없음이 드러납니다. 이 근거 없음에 쫓겨 다녔다는 생각이 들면 어이가 없어지고 다시는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대림의 상징인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특징을 생각해 보세요. 한 분은 생각하시는 분이었고, 한 분은 광야로 물러나신 분입니다. 성탄의 시기와 한 해의 끝자락을 보내면서, 그것이 시·공의 물러남이든, 마음의 물러남이든, 좀 차분히 물러나고픈 갈증을 많이 느낍니다. 모래바람을 피하고픈 마음이요.
그래서 지난 12월 24일에 저는 교회 식구들과 함께 하루 피정을 보냈습니다. 사역한 지 3년 반 만에 하루 피정을 열었으니, 저도 참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함께 기도하시는 분들께 성탄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맨 날 받기만 하다가 저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지 예전엔 잘 몰랐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는 것은 기쁨의 차원에 관한 말이 분명합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줄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요! 하나님께서도 성탄에 자기 자신을, 독생하신 성자를 우리에게 주시고 이렇게나 기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해의 끝자락을 저와 함께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 보시겠어요?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 자기 존재를 들여다보는 모습, 저는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인간다움’을 회복해 보시면 어떨까요?
기도 안내
제가 안내하려는 주제는 “한 해 동안 구체적인 내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깨닫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속에 머물며 2016년을 가늠해 보기”입니다.
* 먼저, 첫 번째 기도 자료를 준비합니다.
한 해 동안 내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 보세요. 예배와 영성 생활, 이웃 사랑(봉사), 교회 봉사, 가정, 직장, 몸, 그리고 사회적인 부분까지 항목을 생각하며 크게 크게 적습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는지,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적어 보세요. 월별로 적는 것도 도움이 되어요.
월 |
+ |
- |
1 |
|
|
2 |
|
|
3 |
|
|
4 |
|
|
5 |
|
|
6 |
|
|
7 |
|
|
8 |
|
|
9 |
|
|
10 |
|
|
11 |
|
|
12 |
|
|
자, 기도할 때는요. 각 사건들을 기억하세요. 공간들, 상황들,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거기서 올라오는 느낌들을 깊게 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세요. 성경 말씀은 호세아 11장 1~4절 입니다.
1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2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3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기도하시면서 다음 요점으로 도움을 삼아 보세요.
1) 내 삶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깊게 보세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세요? 아니면, 뭔가 잘 못 된 것 같으세요? 이 질문과 더불어, 기도 중에 내면에서부터 올라오는 나의 느낌을 인식하면서,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과 대화(교제)하세요.
2) 한 해 동안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떻게 이끄셨는지를 바라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내 삶의 각 사건들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는지요? 나는 성숙해졌나요? 나는 자유로워졌나요? 나는 고요해졌나요? 사랑이 많아 졌나요? 관대해 졌나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졌나요? 신앙심이 깊어졌나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났나요? 부르심에 민감해졌나요?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나의 사건 속에서 나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셨는지 묻고 대화해 보세요. 아버지 같으셨나요? 엄마 같으셨나요? 선생님, 연인, 친구? 봄볕 같으셨나요? 시원한 소나기? 곡식을 익게 만드는 가을 햇살? 사람을 고요하게 만드는 한겨울 깊은 밤?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말씀을 떠올리면서 기도해 보세요.
3) 만일 그러하지 않은 여러 마음들이 든다면, 과연 하나님은 나의 지금 이 느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내가 바라보고, 판단하고, 느낀 이 감정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를 물어보세요. 즉, ‘나의 느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마음’을 알려 달라고 하세요. 말씀을 떠올리면서 말씀의 내용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기도임을 기억하세요. 자기 분석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고 하나님 당신께 초점이 가 있어야 해요.
다음 사항을 주의하세요.
1. 기도 주제를 잃어버리거나 분심(잡념)이 올라와서 딴 생각으로 흘러갔어도, 다시 기도하던 지점으로 돌아가시면 되요.
2. 어떤 느낌에 깊이 함몰되거나 압도되어 기도를 놓치지 마세요. 기도는 대화요, 교제예요. 즉 오고 가야 해요. 인내하지 말고, 말씀을 붙들고, 사건을 기억하고, 위의 1),2),3)을 알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집중하세요. 그렇다고 욕심을 내라는 것은 아니구요. 하나님께 반응하라는 말이예요. 감정을 견디지 말고. 특히,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거나, 지루하다 거나, 하는 것도 느낌이예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세요. 지루함, 당황스러움을 인내하지 마세요.
3. 기도를 아마 여러 번 반복해야 할 거예요. 각 항목으로, 아니면 시간 순서로, 한 해의 사건으로 충분히 기도하세요. 그리고 각 기도를 성찰하시고요.
이렇게, 한해가 점점 하나의 메시지로, 하나의 경험으로 감지가 되기 시작하면, 2016년 새해에 대한 기도로 나아갑니다.
* 두 번째 기도는요, 이렇게 해 보세요.
성탄절을 보내면서 참 빛이신 주님이 오셨어요. 빛 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그 빛 아래서 고요한 마음으로 2016년을 떠올려보세요.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뜻, 어떤 말씀을 가지고 다가 오실지를 기대해 보세요. 그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조용히 품고, 또 품으세요. 깊게 깊게 말씀을 고요히 품고 응시합니다. 이번 기도에서는 생각을 펼쳐가거나 느낌을 떠올리지 않도록 하세요. 그저 빈 마음에 말씀을 품고 품어 말씀 자체에서 오는 기운과 힘과 느낌에 고요히 머무세요. 분심이 올라오고 생각이 많아지고 집중이 흩어지면, 다시 말씀을 기억하고 품어 보세요. 그 끝에 내면에서 올라오는 통찰이나 느낌이나 하나님과의 일치된 교제를 거부할 이유는 없어요. 마음 열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말씀은 이사야 43장 19절 ~ 21절입니다.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전체를 천천히 반복해도 되구요, 기도 중에 품을 말씀 구절을 선택하시면서 기도 시간 내내 품고 계셔도 되어요. 저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이라는 구절로 이끌림을 받았어요. 이 글을 쓰는 오늘은 12월 26일인데, 저도 일주일 내내 첫 번째 기도를 하면서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새해엔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반드시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속에 머물면서 시작하려구요.
이 기도 안내가 2015년을 애쓰면서 살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요, 2016년에 뵈어요. / 해'맑은우리 주선영
'영성 생활 > 수필 한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Pick Me Up? (2) | 2016.03.23 |
---|---|
황혼 속의 〈재의 수요일〉 그리고 〈흰 그림자〉 (0) | 2016.02.10 |
희망과 사랑처럼 : 대림절 그리고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 (0) | 2015.12.13 |
테트리스 (0) | 2015.10.12 |
홀로된 너에게 (0) | 2015.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