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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20 정의와 평화의 입맞춤 (길선주)
- 2013.07.12 모험 (1)
- 2012.11.22 조선에서의 추수감사절의 유래 (길선주) (1)
- 2012.10.24 이런 나라를 꿈꾼다 (길선주) (1)
- 2012.09.16 말 기계와 앵무새 (길선주) (2)
글
그리고 오늘 이후로는 "의는 평화와 입을 맞춘다." 하는 말을 기억하고, 정의의 기초 위에 서서 싸움할 자가 될 것 같으면 정의의 무대에서 평화의 막이 열리도록 "위로부터 손을 펴서 지배하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도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마음에 평화가 오지 않는 법입니다. 가정 안에 싸움이 있을지라도 의로운 자가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그 가정에 참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오늘과 같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곳이든지 불의한 까닭입니다. 이후 세계 역시 정의와 인도에 의하여 행하지 않으면 참말 평화는 오지 않을 줄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는 것이지만 아무쪼록 여러분은 시편 85편 10절에 "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는 이 말로써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또한 구하시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바이올시다.
- 길선주 지음, KIATS 엮음,《길선주》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 설교 시리즈 (서울: 홍성사, 2008), 187-88.
가정과 국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의가 바로 서야한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으로 유명한 길선주 목사는 "평화의 서(曙, 새벽)"라는 그의 설교에서 위와 같이 역설하고 있다. 이글은 3·1운동 직후인 1921년 7월에 출간된 《종교계 제명사 설교집》에 일제의 검열에 의해 일부가 삭제된 채 수록되어 있다. 그는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라는 시편 85편 10절 말씀에 근거하여, 불의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정의와 인도(人道,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의 토대 위에 세우지 않는다면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저질러진 불의를 밝히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반성 없이 더 큰 거짓으로 잘못된 것을 은폐하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모함하는 불의하고 비열한 몸부림도 거세다. 그리고 한 편에서는 이를 침묵으로 관망하거나, 명백하게 죄를 밝히지도 않은 채 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느 정도의 '작전'은 필요했을 것이라며 관대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아마 적지 않은 수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세 번째 부류에 들어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의회 연설에서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밝히고, 며칠 전 8·15 경축사에서 이를 북한에 제안하였다. 전쟁과 분단의 상징인 DMZ의 일부에 평화 공원이 조성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길선주 목사의 말씀처럼 먼저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를 굳게 세우지 않는 한 평화공원은 언제라도 전쟁과 갈등으로 폐쇄될 가능성이 높은 '정치쇼의 공연장'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 불의의 힘을 빌어 탄생한 것으로 강하게 의심 받고 있는 (그리고 그 일부가 사실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가 잘못된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이를 진솔하게 사과하며, 말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환골탈태(換骨奪胎)하지 않는다면, 비무장지대 전체를 평화공원으로 조성한다고 하여도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참된 평화는 요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무대에서 평화의 막이 열리도록" 간절히 기도하라는 길선주 목사의 말씀이 더욱 뼈저리게 와닿는다.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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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새로운 앎과 경험을 방해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를 엄한 분으로만 알고 있다면, 아버지의 자상하고 따뜻한 면모를 놓치기가 쉽지요.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과감히 버리고 그곳으로부터 떠나지 않으면 새롭고 더 깊은 앎과 봄을 경험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사진은 나이아가라 폭포의 모습입니다. 폭포는, 멀리서 볼 때도 참 웅장하고 멋있지만, 배를 타고 폭포 아래로 가까이 가보면 멀리서 볼 때와 다른 새롭고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하나님에 대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안전지대(기존의 지식과 경험)를 떠날 때 새로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고 깨달을 수가 있지 않을까요?바람연필 2013.07.12 16:47 신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자 하면 아는 데서 떠나고,
보지 못한 곳을 보고자 하면 보는 데서 떠나라.
영계 길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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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국의 도성은 견고하여 도적이 능히 엿보지 못하고, 임금과 신하가 다 거룩하여 성현 군자와 같이 어질고 자애로우며, 영웅 열사의 용맹한 기상이 늠름하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 화답하니 국가의 모든 일들이 형통치 아니함이 없다. 그래서 국민들의 생활은 극히 부요하여 만물이 풍족하고 사람들은 모두 호걸이다. …… 세상이 태평하고 평화로우니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문명세계요 자유강산이로다."
길선주 (1869-1935), 《만사성취》 제25장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가지고 있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일평생 동안 노력을 한다. 그래서 길선주 목사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개작(remake)한 그의 책 《만사성취》에서 사람의 삶을 '소원성'에서 '성취국'으로, 더 나아가 '영생국'으로 가는 영적 여정으로 그렸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성취의 나라는 개인이 자신의 이기적인 꿈이나 욕망을 이룬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길선주 목사가 꿈을 꾼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자유의 나라이다.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그린 것과 같은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평화의 나라이다 (이사야 65:17-25).
그런데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조선이 일제에 강제로 합병을 당한 직후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성취국에 대한 묘사를 다시 읽어 보면, 길선주 목사가 그린 성취의 나라는 조선의 백성들이 억압과 침탈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독립된 나라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나라로 나아가기 위한 영적, 도덕적 안내도가 바로 《만사성취》이다. 이는 당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리에 읽혀졌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길선주 목사는 해방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그가 꿈꾸던 성취의 나라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다. 이 책이 쓰여진지 약 백 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오래이지만 우리 나라에는 여전히 고통, 억압, 불의 등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어쩌면 길선주 목사가 꿈꾸던 성취의 나라는 이땅에서 완벽하게 건설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평화롭고 자유로운 나라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나라의 통치권을 맡겨야 할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참여해야 할 이유이다. /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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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간절히 원하고 바랍니다. 행실을 말하는 바에 합당하게 하여 능히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 기계와 앵무새가 되지 마십시오."
길선주 (1869-1935), <그리스도신문> 1906. 2. 15.
어느 날 길선주 목사가 한 외국인의 집 앞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떠들고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깜짝놀랐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홀로 "나팔통 같은 기계"를 틀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축음기'(record player)였다. 이후 그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신문에 실은 글 또는 강단에서의 한 연설에 감동되어 그들을 만나보았으나, 실제 그들의 행동이 그말과 글에 조금도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서는 그가 축음기에 속았던 경험을 생각해내었다.
"말 기계"는 사람의 목소리를 재생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말을 알아 들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비슷하게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흐르는 물같이 따라 하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도 스스로 생각해내지도 못한다. 길선주 목사는 이처럼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식과 말재주만 배워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그는 "성령의 신령한 은혜"로 변화되어 바른 행실을 갖춘 자에게 교회의 중대한 직분을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혀와 머리만 변화받은 "말 기계" 또는 "앵무새"인지, 아니면 아니면 성령으로 마음이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인지 스스로 살펴보자. 우리 교회가 '말 기계'를 틀어 놓은 '앵무새들'의 모임이지는 않은지, 그래서 소리를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속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자. 매일 밤 자신이 오늘 하루 동안 맺은 행실을 돌아보자.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 (마태복음 7장 15-20절) /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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