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나 그림을 감상할 때에 그 작품의 각 부분을 곰곰이 살펴본다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때) 이 놀라운 광경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너의 이성을 동원해서) 경건한 호기심을 가지고 내용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제임스 트래이시(James Tracy), "인문주의자들의 성서 이해: 영혼의 양식," 《기독교 영성 II》, 질라이트 편집(Jill Raitt), 엄성옥 이후정 공역 (은성), 386.
요즘 십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 총 세 단계의 훈련 과정인데 첫 번째 과정을 수료한 친구들과 이제 막 두 번째 과정으로 들어왔다. 대견하고 기특하다.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을 쪼개서 렉시오 디비나, 말씀 암송, 자기 관리표 작성 등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청년들을 보며 늘 도전받는다.
오늘이 두 번째 과정(14주)에 들어가는 첫 날이다. 이런 저런 숙제들을 설명하다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몇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말에 청년들은 아연실색이다. 그 착한 청년들이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기세다. 한 술 더 떠, 이게 성경과 관련된 책이냐며 앙탈을 떤다. 헐… 대박…!
왜 교회에서 인문학은 치외법권인가?
중고등학교 시간에 배워 익숙한 르네상스의 아버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of Rotterdam, 1466-1536)는 사실 인문학자이기 이전에 가톨릭 사제이며 복음적 영성가였다. 그는 당시에 팽배했던 금욕주의적 기독교보다 인문주의의 접근이 더 세상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그를 포함한 인문주의자들은 지식을 지적인 것들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식이란 하나님을 더 알고자하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의지를 형성하는 전인적 경험(Holistic Experience)이라 이해했다. 그들에게 인문학은 절대 하나님을 등지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 등에 업혀 못 보았고 못 들었던 지성의 세계를 열어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함이었다.
위에서 트레이시가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이것은 몇 년도 조각된 누구의 작품입니다. 다음 작품은요……'라는 설명으로 조각품 감상을 급하게 훑듯 성경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품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이곳저곳 뜯어보며 조각가와 대화하듯 경건한 호기심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성의 잠자던 미세신경까지 깨워 본문에 드러나지 않은 행간에 숨겨진 하나님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 경제학, 미술사, 정치학, 건축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은 성경이 꽁꽁 싸맨 그만의 맨살을 볼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 선생의 그 책을 난감해하던 나의 청년들이 시간이 지난 후 인문학을 통한 하나님과의 전인적 경험을 기뻐할 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 나도 그러했기에 그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 이경희
Christian Spirituality Vol. 2: High Middle & Reformation
- 저자
- Bernard McGinn, Jill Raitt, John Meyendorff 지음
- 출판사
- Crossroad Publishing Company | 1989-09-30 출간
- 카테고리
- 인문
- 책소개
- A multivolume series with more 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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