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누에[자기 자신]는 살아 있는 게 아닙니까? 마치 요나의 칡넝쿨을 갉아먹던 벌레와 같이 우리의 자애심, 자존심, 그리고 하찮은 일을 가지고 남을 판단한다든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아낄 줄 모르는 사랑의 결핍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덕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기껏 한다는 노릇이 죄짓지 않으려는 것뿐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받아들이기에 필요한 그 마음가짐에는 너무나 먼 것입니다. …… 사랑이란 결코 한가로울 수 없는 것, 한가로운 사랑은 벌써 잘못되었다는 표인 것입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5궁방, 3장. 6절., 4장,10절.
아빌라의 테레사는 영적 여정을 묘사하면서 하나님과 연합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다섯 번째 궁방(mansion)을 소개한다. 그녀는 누에가 고치를 틀고 죽어 마침내 나비가 되는 변화의 순간이 바로 이 연합과 같다고 밝힌다. 그러나 슬프게도 여기까지 이른 이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이야기한다.
자기 부정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외적 신앙 활동에만 관심을 둔 영혼은, 테레사의 말대로 칡넝쿨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을지 모른다. 기껏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방어적 신앙은 하나님과의 연합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저 기독교적 색채를 띤 자기 수련일 수 있다. 자기 자신인 누에의 행실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누에를 죽여야 하는 것이 영적 여정의 숙명이다. 자애심과 자존심을 먹으며 한가롭게 사는 삶 대신 차라리 그리스도의 사랑과 함께 불타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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