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 없이 성자를 생각할 수 없고, 성자로부터 성령을 나눌 수도 없다. 세 위격 사이에는 인간의 말이나 이해를 초월하는 공유(sharing)와 구분(differentiation)이 있다. 위격들 사이의 구분은 본질의 하나니됨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공유하는 본질의 통일성 때문에 각 위격들의 특성들이 혼동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신성은 통일된 것인 동시에 분화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통일성 내의 다양성과 다양성 내의 통일성이라는 이 기이하고 역설적인 것을 수수께끼를 사용하여 직시한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c.335-395), On the Difference between Essence and Hypostasis
그레고리는 삼위일체의 교리가 역설적이며 언어와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고심한다. 그것은 우리의 이성에 의해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그것을 넌지시 암시할 수는 있지만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의 추리력은 하나님 주신 은사이며,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사용해야 하지만, 그것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삼위일체는 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에 접근함에 있어서, 논증이나 분석이 말 없는 기도에 양보해야 하는 지점에 이른다. “모든 유한한 육체여, 잠잠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서라”(The Liturgy of St, James). (칼리스토스 웨어, 《정교회의 길》,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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