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클래식: 영성 고전으로 오늘을 읽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공동의 열매'이다. 글의 착상 단계부터 원고를 완성하기까지 아홉 명의 필자들이 서로의 글을 읽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주로 '구글 문서(google docs)'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협업이 이루어졌지만, 필요하면 전화 통화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모두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선의 열매를 맺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2년 동안은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함께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영적 여정을 함께 걸었다. 저자 중 한 분의 표현대로, 우리는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다.
책에 실린 편집자 서문을 아래에 옮겨 놓는다. (이 서문은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 메뉴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인쇄된 책에서는 의도치 않게 원고에 있던 각주 두 개가 빠졌는데 아래에는 다시 달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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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날씨로 비유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성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의 모래바람에 상상력과 경이가 메말라가는 건조한 날씨가 아닐까? 마치 현대 도시에서 동물들은 주위에서 사라져가고 동물원 우리 속에 격리되는 것처럼, 오늘날 상상력은 《해리 포터(Harry Potter)》와 같은 판타지 소설이나 〈겨울왕국(Frozen)〉과 같은 애니메이션과 영화, 드라마 속에 가두어져 버린 듯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아이들도 ‘공주 드레스’나 ‘파워레인저 가면’을 벗을 나이가 되면, ‘유치한’ 상상력도 함께 벗어 버리고 과학적 사고라는 안경을 낀 건조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은 그 현존이 점점 엷게 인식되어지고, 대신 이해하기 힘든 교리를 통해 이론적으로나 접할 수 있는 분으로 제한되어 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기독교 영성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이성주의 시대에 저항하는 ‘불경한’ 그러나 용기 있는 행동이다.
저명한 영성학자 아서 홀더(Arthur G. Holder)에 의하면 ‘영성 고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여러 세대의 독자들의 삶에 깊은 변화를 일으킨 종교적 진리를 담고 있는 글”이다. 가장 1차적인 기독교 영성 고전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서이다. 그런데 성서는 굳이 영성 고전으로 분류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서 탁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일반적으로 기독교 영성 고전이라고 할 때에는 성서 시대 이후 기록되어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으며 꾸준히 읽히는 작품들을 말한다. 물론 어떤 특정한 텍스트가 영성 고전의 범주에 들어가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가 있다. 하지만 보통 이 범주에 포함되는 글들은 저자들이 삶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영적 진리와 경험을 담고 있다. 그래서 독자가 글을 통해 저자들이 전하는 지혜와 경험에 접촉하게 되면, 그것들은 더 이상 종이 위의 문자로 존재하지 않고 독자의 삶 속에서 새로운 경험으로 살아난다. 마치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1새벽 출정호의 항해》 에서 에드먼드와 루시가 벽에 걸린 바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볼 때, 액자에서 바닷물이 쏟아져 나와 조그만 방이 나니아의 세계로 변하는 것처럼, 영성 고전에 담긴 지혜와 경험은 독자의 현실로 쏟아져 나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님의 신비로 빛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이처럼 영성 고전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현재적인 영적 경험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기도 하고, 또한 과거와 미래의 영적 경험을 해석하는 데에 유용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항상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주목받는 일본의 비평가 사사키 아타루(佐々木中)는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내면에서는 변화에 저항하는 “방어기제”가 자연스럽게 작동하여 독자로 하여금 책이 어렵고 무료하다고 느끼게 하거나 감동받은 내용도 쉽게 잊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특히 대부분의 영성 고전 작품들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시대와 장소와 문화 속에서 다른 언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기에 “방어기제”가 작동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에 이 책의 필자들은 기독교 영성학(Christian Spirituality)을 전공하며 읽고 배운 고전 작품들을 한국의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2012년부터 팀블로그(spirituality.co.kr)를 중심으로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을 시작하였다. ‘산 책(living books)’을 ‘길’로 삼아 영적 여정을 함께 걸어가자는 의미이다. 아직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학위 과정 중에 있는 학생의 신분이라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2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블루아의 피터(Peter of Blois, c.1130–c.1203)의 말처럼 독자들과 함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들”이 되어 비록 “우리의 소견은 일천(日淺)할지라도, 영적 거장들의 어깨 위에 선 덕분에 우리는 그분들보다 더 높은 식견을 가지고, 바른 신앙의 길을 전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부족한 글들을 독자들 앞에 내어 놓는다. 3
이 책의 아홉 명의 필자들은 고전 작품과 저자를 선정할 때에 가능한 한 다양한 시대와 전통을 아우르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많지는 않지만 여성 신비가들과 한국 저자들, 평신도들의 작품들도 포함함으로써 ‘서구’, ‘남성’, ‘성직자’들의 작품에 경도되지 않고 영성 고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여기에 실린 스물세 편의 에세이들은 2013년과 2014년에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상황》의 ‘백투더클래식’이라는 꼭지에 연재된 글들이다. 원래 시리즈의 기획의도가 고전 작품과 현대의 이슈 사이에 가교를 놓는 것이며, 또한 시사 주제를 다루는 월간지의 특성상 이 책에 실린 글들에는 잡지에 게재될 당시 유행한 영화, 게임, TV 프로그램, 또는 사회적 이슈 등에 대한 언급들이 의도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이 이 에세이들을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제한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고전의 본질적인 특징, 곧 시간을 초월하는 항구성과 장소를 넘어서는 보편성 때문이다. 영성 고전에서 얻은 지혜로 현대의 교회와 사회를 진단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글들은 독자들에게 이 책에 언급되지 않은 또 다른 현대 이슈들도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독자들의 형편이 되는대로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을 교회나 공동체의 소그룹 멤버들과 함께 읽고 토론한다면,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복음과상황》에 게재된 글에서 제목과 잘못된 정보들을 일부 수정한 것들이다. 그리고 글의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묶고 순서를 새롭게 배열하였다. 먼저 제1부 “신비와 경이”에서는 온 우주는 물론 우리의 일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신비’ 또는 ‘경이(wonder)’와의 만남에 관한 글들을 모았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신비’라고 하면 비현실적이고 미신적인 어떤 기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글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신비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빛나고 있으며, 때로는 육체적인 관계 속에서도 발견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 자체가 하나님의 신비를 향해 끊임없이 여행하는 신비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신랑으로, 어머니로, 또는 연인으로 경험되기도 하는데 이 경험의 중심에는 믿음과 사랑이 놓여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신비와의 접촉점이며, 사랑만큼 놀라운 신비가 없다. 이 신비를 알기 위해서는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면학심, 곧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며, 우리의 영적 감각이 훈련되고 변화되어야 한다. 4
다음으로 제2부 “훈련과 형성”에서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영성은 무엇이며, 그러한 영성으로 형성되기 위한 영적 훈련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들을 모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소비주의 사회의 뿌리에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이 존재한다. 욕망은 거짓 자아의 가면을 만들기도 하고, “강철 우리”와 같은 사회구조, 의식, 습관을 만들기도 해서 그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생각과 삶을 구속한다. 변화는 “자기 사랑의 우리”로부터 벗어나는 “진정한 회심”에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의존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사막’으로 떠나는 급진적인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성자 프란치스코는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고상한 욕망을 가졌던 그의 발자취는 우리를 청빈과 섬김의 삶으로 초청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영적 규칙을 공유하는 공동체와 함께 걸어가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때로는 타락한 제도권 교회 밖에서 길을 찾은 이들도 있지만, 이들 옆에는 뜻을 같이하는 벗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3부 “이웃과 정의”에서는 영성의 사회적 측면과 관련된 글들을 모았다. 한국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영성이 한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초월적인 관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와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오해가 편만하다. 그러나 영성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하나님과의 연합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적으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에 동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성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공공의 부를 공평하게 나눠가지지 않고, 다른 이들이 가난으로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방치한다면 도적질과 살인을 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가르친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사교클럽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며, 구원의 복된 소식은 소유와 배움의 유무를 떠나서 모든 이들에게 흘러가야 한다. ‘순수 기독교’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불의에 분노해야 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도록 분투한 예언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의 희생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비리디타스(viriditas)”, 곧 만물에 깃든 생명력을 통해 인간 사회는 물론 자연 생태계가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돌아보면 이 책은 〈산책길〉 팀블로그에 게재된 이종태 목사님의 “큐리오시티”라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이 글을 《복음과상황》의 옥명호 편집장님이 읽고, 신생 단체인 〈산책길〉에게 소중한 잡지의 지면을 내어 주셨다. 지난 2년 동안 원고를 깔끔하게 편집해서 인쇄해 주신 《복음과상황》 편집부 식구들께 필자들의 마음을 모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어려운 기독교 출판 여건 속에서도 무명의 필자들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신 도서출판 예수전도단과 홍지욱 팀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학당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팀블로그 댓글과 SNS 등을 통해서 응원해주신 독자들은 이 책의 숨의 공로자들이며 〈산책길〉의 소중한 길벗들이다. 독자들께서 책을 읽다가 발견하는 부족한 부분들을 일깨워 주신다면, 다음 글을 위한 귀중한 밑거름으로 삼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들이 바쁜 학업과 목회 가운데서도 〈산책길〉 활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고, 나아가 글을 챙겨 읽고 조언해 주신 필자들의 아내들께도 진심 어린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2015년 5월
저자들을 대신하여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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