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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학 논문

소명과 식별

소명과 식별



    필자가 영성지도를 하다가 만난 신학생 가운데에는, 목사인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신학교에 들어온 경우가 있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학생은 소명이 없이 신학교를 다니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신학생은 번듯한 직장 생활을 갑자기 그만 두고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에 차서 신학교에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그런 신학생 가운데 어떤 사람은 마침내 선교사가 되어 사역을 활발하게 잘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사회생활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 소명은 개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기에, 소명을 잘 식별하는 일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식별을 잘 안내해주는 커리큘럼을 한국 교회 안에서 찾기 힘든 실정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소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소명 식별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1. 소명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자 윌리엄 플래처(William C. Placher)에 따르면, 소명 즉 하나님의 부르심[각주:1]은 성경과 교회사에서 다양하게 이해되어 왔다.[각주:2] 먼저 성경은 소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부르심”(call) 또는 “소명”(vocation)이라는 낱말은 신앙으로의 부르심, 또는 하나님의 일과 관련된 특별한 과업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각주:3]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일깨우는 말씀이고, 더불어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말씀이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의 소명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여기에서 부르심(klesis)은 기독교인으로 부르심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이 되어 기독교인임을 세상에서 드러내며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것 자체를 소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교회사를 통틀어 소명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 플래처는 교회사를 네 시기로 나누어서 각 시기별로 소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첫 번째 시기인 초기 교회는, 기독교인이 되고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것을 소명으로 이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기독교인은 소수(minority)였다. 기독교인이 되면 수시로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게 된다. 체포되어 고문당하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시기인 중세 교회는, 신부나 수도자가 되는 것을 위주로 소명을 이해하던 시절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인이 되자 그 전까지 기독교인을 위협했던 박해가 사라졌다. 누구나 쉽게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구체적으로 가정을 이루고 일상생활을 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사제나 수도자가 될 것인가가 소명을 식별하는 주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 시기인 종교개혁 이후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만인제사장설’과 ‘직업소명설’에 잘 나타나 있듯이,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사제나 수도자로 사는 것만을 기독교인의 중요하고 특별한 소명으로 여기던 것에서 벗어나, 모든 직업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고린도전서 7장 20절의 부르심(klesis)을 직업(Beruf)으로 번역했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루터에 따르면, 결혼과 자녀양육을 포함해서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기는 현대다. 우리 기독교인이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다종교 사회일 뿐만 아니라, 직업과 삶의 모양이 분화되고 다양화되어서, 직업과 소명을 동일시하기 힘들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이나 아메리카 지역은 더 이상 기독교 사회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는 비기독교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박해의 시대를 살았던 초기 교회 시대에 기독교인이 했던 질문이 다시 현대 기독교인에게 적용되는 시절이 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진행된 분업화로 인해 우리는 직업을 전통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공장에서 부품을 만드는 일부 과정에만 참여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아울러, 직업만을 소명으로 생각하면, 실업자나 은퇴자는 소명 담론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성경과 교회사를 살펴볼 때, 현대 기독교인을 위해서, 소명은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첫째, 소명은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둘째, 소명은 어떤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셋째, 소명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 또는 사역자가 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명은 세상에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소명들은 경우에 따라 한꺼번에 적용될 수도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셋째 소명과 넷째 소명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2. 소명 식별 방법: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소명을 식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방법은 대체로 기도, 말씀 묵상, 자신이 지닌 능력과 욕구를 성찰하기,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보기 등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들은 한국 교회에서 여전히 기독교인 개인에게 맡겨져 있고, 한국 교회 기독교인들은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소명 식별 방법을 알고 적용하기 위한 첫걸음은 영성고전에 담긴 지혜를 이용하는 것이다. 영성고전에는 식별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소명을 식별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가장 잘 알려진 자료는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of Loyola, 1491-1556)의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각주:4]이다. 이냐시오는 가톨릭 교회의 내부에서 개혁을 이끈 영성가 중 한 명이다. 영신수련은 이냐시오가 자신의 영성훈련과 식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영성훈련 안내 책자 즉 매뉴얼이다. 이 책을 쓴 의도는 기독교인이 자신의 소명을 잘 식별하여 선택(election)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냐시오는 당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영성훈련 방법을 통합하여 네 주에 걸친 영성훈련을 제시하였는데, 이 영성훈련은 말씀묵상과 양심성찰, 기도, 식별,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소명 식별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소명을 식별하려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 묵상이다. 영신수련에서 영성훈련 참가자가 네 주에 걸쳐 참여하는 말씀 묵상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 주제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인식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둘째 주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하고, 더 가까이 따르고 싶은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셋째 주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수난의 자리까지 따르며 함께 머무는 인내와 용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주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묵상하면서, 부활의 기쁨을 경험하고, 세상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투신할 결심과 용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성훈련 참가자는 먼저 죄가 정화되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맑은 마음과 질서 잡힌 마음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욕구 즉 영적 갈망이 생긴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 또는 왕으로 여기며 그분의 편에 서서 그분을 위하여 사는 삶을 선택하려는 용기가 생긴다. 그러므로 소명을 식별하려면 가장 먼저 말씀 묵상을 깊이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려고 하는 영적 갈망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소명을 식별하려면 자신의 내면의 경험을 살펴보고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냐시오는 영신수련 부록에서 식별을 위한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규칙을 이해하고 있으면 소명을 식별하기 위한 영성훈련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구분할 때 도움이 된다. 이 규칙에서 이냐시오는 내면의 경험을 다음과 같은 두 종류로 구분 한다. 영적 위로(spiritual consolation)와 영적 실망(spiritual desolation). 영적 위로의 경험은 식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으로 진보하고 있을 때 성령으로부터 오는 경험으로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언급된 세 가지 영원한 것, 즉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증가되는 경험이다. 영적 실망의 경험은 반대로 식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영적으로 퇴보하고 있을 때 하는 경험으로서,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 감소되는 경험이다. 영적 위로의 경험이라고 해서 모두 긍정적 감정의 경험인 것은 아니며, 영적 실망의 경험이라고 해서 모두 부정적 감정의 경험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적 위로의 경험과 영적 실망의 경험은 영성훈련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교대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식별하는 사람의 내면이 정화될수록 그리고 성령 충만할수록 영적 실망의 경험은 줄어들고 영적 위로의 경험이 늘어난다. 이것을 경험적으로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소명을 식별할 때 좀 더 쉽게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해당할수록 영적 위로의 경험이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식별 과정을 도와주는 영성지도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냐시오는 영신수련에서 영성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과, 영성지도자가 피지도자(directee), 즉 영성훈련 참가자에게 자신의 의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소명 식별을 개인이 혼자서 하는 것은 자신과 공동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공동체와 영성지도자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성경과 교리에 맞게 객관화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개인은 공동체와 영성지도자를 신뢰하며 자신의 경험을 함께 식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영성지도자는 개인이 소명 식별 과정에서 지나치게 개입하기보다는 성령님만을 의지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성지도자가 수도원장이라면 소명을 식별하는 영성훈련 참가자가 수도자가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또 영성지도자가 담임목사라면 소명을 식별하는 청년이 목회자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피지도자의 식별 과정에 영성지도자가 자신의 바람을 바탕으로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3. 현대 기독교인을 위한 소명 식별 방법


     소명 식별을 주제로 하는 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는 아마도 프레드릭 뷔크너(Frederick Buechner)가 한 말일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곳은 당신의 깊은 즐거움과 세상의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곳이다.”[각주:5] 다시 말해서,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가장 깊은 욕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주변의 세상에서 가장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뷔크너에 따르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위의 두 가지가 만나는 접점 또는 교집합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씨시의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 1181/1182-1226)는 회심한 후에 가장 큰 기쁨을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 사는 삶에서 발견했다. 동시에 그는 이웃에 사는 한센병 환우들이 가장 가난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 프란치스코는 한센병 환우들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현대 개신교인을 위한 소명 식별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 가운데 하나가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 및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의 기독교 영성학자인 엘리자베스 리버트(Elizabeth Liebert)의 《영적 분별의 길》[각주:6]이라고 할 수 있다. 리버트는 이 책에서 식별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 할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면 도움이 될 영성훈련을 체계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내릴 결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결정은 소명을 인식하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리버트가 제시하는 영성훈련을 소명 식별에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 절차는 다섯 단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영적 갈망과 영적 자유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 더 분명해진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 마음이 세상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선택하기가 더 쉬워진다. 


  2) 소명이라고 추측하는 주제를 명료한 질문 형태로 만들어본다. 예를 든다면, 하나님은 나를 목사로 부르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영성지도자로 부르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간호사로 부르시는가? 또는 하나님은 나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부르시는가? 등이 있다. 


  3)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기도한다. 리버트는 네 종류의 정보를 모아보도록 제안 한다. (1) 개인 내적(intra-personal) 정보, (2) 상호 관계(inter-personal) 정보, (3) 구조(structural) 정보, 그리고 (4) 자연 환경(natural, environmental) 정보. 개인 내적 정보란 내가 지닌 지적, 정서적, 신체적, 영적 고유한 특성들을 모두 포함한다. 상호 관계 정보란 내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모든 경험을 포함한다. 구조 정보란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나의 역할과 권력과 관련된 경험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자연 환경 정보란 내가 자연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왔는가에 대한 것이다. 정보들을 모은 후에, 나의 소명이라고 추측하는 주제를 이 정보들에 대입해 보고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기도한다.  


  4) 다양한 영성훈련을 시행하고 기도한다. 리버트는 일곱 가지의 영성훈련을 제안 한다. (1) 떠오르는 기억 경험하기, (2) 상상력을 사용하기, (3) 직관을 사용하기, (4)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기, (5) 이성을 사용하기, (6) 감정을 식별하기, 그리고 (7) 자연 묵상에서 일어나는 경험 사용하기 등. 이 모든 영성훈련은 영적 갈망과 영적 자유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후에 시작한다. 또 이 영성훈련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전제로 실시한다. 영성훈련을 실시할 때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명 식별 주제에 대해 가부간의 임시 결정을 내린다. 


  5) 마지막으로 일곱 가지 영성훈련의 결과를 하나님께 들고 나가서 확증(confirmation)을 받는다. 확증을 위해 사용하는 식별 기준들을 리버트는 시금석이라 부른다. 식별 시금석들은 성령께서 일으키신 경험들의 예로서, 대체로 내가 경험한 것과 비교해보기 위해 사용하는 성경의 경험들과 영성고전에서 신앙의 선배들이 제시한 경험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앞에 언급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믿음, 소망, 사랑의 경험이라든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경험을 들 수 있다. 


     영성고전에서 제시된 시금석 경험의 대표적인 예로는 이냐시오의 식별 규칙에 나오는 영적 위로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18세기 미국 영적 대각성 운동의 중심 인물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신앙과 정서》(Religious Affections)[각주:7]에서 제시한 바 있는, 성령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정서의 신뢰할만한 열두 가지 표지들 역시 식별의 시금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 열두 가지 표지들은 다음과 같다. (1) 거룩하고 초자연적인 원천에서 옴, (2)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법들에 그 자체의 탁월성 때문에 이끌림, (3) 거룩한 일들의 아름다움을 보는 경험에서 옴, (4) 영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수반함, (5) 깊게 자리한 확신을 수반함, (6) 겸손을 수반함, (7) 본성의 참된 변화를 수반함, (8)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을 수반함, (9) 부드러운 마음과 영의 온유함을 수반함, (10) 균형과 조화를 수반함, (11)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더욱 커짐, (12) 기독교적 실천들이 증가함. 


     필자는 이상에서 소명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그리고 소명을 식별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성훈련들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소명을 식별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부르심이 지닌 두 가지 특징을 기억하자. 첫째, 하나님은 먼저 우리가 자유롭게 와서 보고 선택하게 하신다. 소명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안에서 싹트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사귐 없이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식별하는 것은 한 순간에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 그러므로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너무 앞서거나 너무 뒤떨어지거나 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에 기독교인의 소명 식별을 도와줄 목회자와 영성지도자가 많이 준비되기를 기도한다. / 아우의 마음 이강학


이 글은 '디바인영성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영성을 살다」 (통권7호, 2017년 상반기), 36-43쪽에 게재된 글입니다.



  1. 1. 이 글에서 '소명'과 '부르심'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본문으로]
  2. 2. William C. Placher, ed., Callings: Twenty Centuries of Christian Wisdom on Vocation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5). [본문으로]
  3. 3. 한글 성경은 모두 '개역개정판'을 인용한다. [본문으로]
  4. 4. 이냐시오 로욜라, <영신수련>, 정제천 역 (서울: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0). [본문으로]
  5. 5. Frederick Buechner, Wishful Thinking: A Theological ABC (New York: Harper and Row, 1973), 95. [본문으로]
  6. 엘리자베스 리버트, 《영적 분별의 길》, 이강학 역 (서울: 좋은씨앗, 2011). [본문으로]
  7.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서문강 역 (서울: 지평서원, 200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