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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조선에서의 추수감사절의 유래 (길선주)

어두운 죄 가운데서 밝은 새 소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파멸에서 건설로 우리의 살림을 개척한 이날이야 말로 감사일이라고만 하기에 저로서는 오히려 불만족한 느낌이 있습니다.  (중략)  어쨌든 우리로서 기억할 것은 우리가 받은 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은혜의 복음이 우리에게 들어온 그때를 기념함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 기쁨입니다.


길선주 (1869-1935), "추수감사일의 조선 유래와 그 의의," 《길선주》(서울: 홍성사, 2008),  169-75.


미국은 오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전야이다. 한국에서도 매년 11월 셋째 주일이면 교회마다 당연하게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지만, 한국교회 초기에는 추수감사절은 낯선 서양의 풍습이었다. 1931년 10월 《종교교육》이라는 잡지에 실은 글에서 길선주 목사는 조선에서 추수감사절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의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길선주에 따르면 조선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조선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가 세워진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되었다. 길선주와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은 비록 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지만, 기독교의 전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길선주 목사는 단순히 '감사하는 날'이라는 용어로는 담아낼 수 있는 의미와 감격이 이날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조선에 선교사가 첫발을 딛은 날(1884년 9월 20일)을 감사일로 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조선은 농업국인 만큼 추수 시기를 고려하여 11월 셋째 주일 후 3일로 날짜를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약하면 길선주 목사는 (1) 추수감사절은 수확한 '곡식과 열매'로 인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하는 날이라고 말한다. (2) 특히 우리 나라에서의 감사절은 어두운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복음을 보내어 주신 것을 감사하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두 번째의 의미는 거의 잊혀진 듯하다. 과거 20세기 초에 한국 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가 혼탁한 한국 사회를 밝게하는 등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두 번째의 감사의 의미가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 바람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