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5) 썸네일형 리스트형 걱정은 절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손양원) 밤마다 꿈속에 당신의 마음의 근심과 몸이 불안한 것을 보았는데, 아마 근심 걱정에 눌려 병이 된 모양 같습니다. 그러나 근심과 걱정은 절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이랑 병 중에 병이요, 죄 중에 큰 죄가 되는 것이외다. -손양원 (1902~1950), "부인 정양순 사모에게 보낸 편지 2," 《손양원》(홍성사, 2009), 131. 손양원 목사님이 1942년 10월 14일 옥중에서 쓴 편지의 일부이다. 매달 정해진 날에 면회를 오던 아내가 찾아오지 않자, 그는 밤마다 꿈속에서 불안과 걱정 가운데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사모님의 불안이 목사님께 전해졌다기보다, 목사님 당신의 마음속에 걱정이 자라났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편지에서 아내에게 절대 걱정하지 말라며 당부하는 말씀은, 곧.. 이 봄, 무엇을 기다리나 (우찌무라 간조) 오, 주님이시여, 나의 전적인 무능과 타락을 인정하고, 당신의 생명으로 채움받고자 당신 앞에 나아옵니다. 나는 부정합니다. 나를 정결케 하기를 당신께 기도합니다.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내게 믿음을 주옵소서. 당신은 선함 그 자체이시며, 당신이 없으면 나는 어둠일 뿐입니다. 나의 불결함을 보시고 나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옵소서. 아멘. - 우찌무라 간조,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서울: 홍성사, 2002), 241. 해가 길어지는(Long 도덕적 개인, 비도덕적 사회 (마틴 루터 킹, Jr,) 각 개인들은 윤리적으로 판단하려 하고 불의한 태도를 벗어 버리려 한다. 라인홀드 니부어가 잘 지적했듯이 집단은 개인들이 더 비도덕적이다.- 마틴 루터 킹 Jr., “Letter from Birmingham Jail” (1963). 그러므로, “하늘 뜻이 이땅에 이루어 지게 하옵소서”하는 기도를 매일 올리는 그리스도인들,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고 매일 간구하는 우리들은, 개인적 차원의 죄와 악, 내면적 차원의 선악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넘머, 사회 구조와 집단 간의 역학 관계에 파고 들려는 죄와 악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악을 몰아낼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 남기정 . 진부한 드라마를 이젠 끝내자 왜 후회할 짓을 자꾸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우리는, 과연 이 짓을 그만 둘수 있기나 한 걸까? 우리는 늘 반복해서 죄를 짓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언제나 자비롭게 용서하고. 또 우리는 죄를 짓고, 하나님은 또 우리를 한량없이 용서하는 이 드라마를 우리는 언제까지 찍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항상 나쁜 죄인 역할이고,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우리를 '단지' 용서하시기만 하는 그런 역할을 보기가 이제 좀 슬슬 지겨워지지 않는가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하지 않겠는가? "무슨 신이 자기 사람을 맨날 나쁜 역할에 앉혀 두냐?" 고. 우리가 인간은 응당 나쁜 짓을 하는 존재라 여기고, 죄인의 역할을 당연시하고 안주할 때, 제기되는 가장 큰 도전은 그러한 안주가 하나님을 욕보이는 꼴이 된.. 믿음의 눈 (노리치의 줄리안) 그리고 나서 나는 (마음의 눈으로) 한 순간 하나님을 보게 되었는데, 그 비전에서 나는 그분께서 만물 안에 계신 것을 보았다......만사는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죄는 없다......(따라서) 죄란 그저 없는 일이다(sin is no deed).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2 – c.1420),《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11. '계시' 중에 줄리안은 '순간'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I saw God in a point"). 줄리안이 보니, 모든 것에 하나님이 계셨고("He is in all things"),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다("there is no doer but He"). '궁극적 실재'를 ..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