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개

(8)
회개, 소망의 딸 (요한 클리마쿠스) 회개는 소망이 낳는 딸이며 절망에 대한 거부다. (Repentance is the daughter of hope and the refusal to despair.) - John Climacus (7C), The Ladder of Divine Ascent (New York: Paulist Press, 1982), 121 (Step 5 "On Penitence") 그래, 이 사순절의 회개는 부활절의 기쁨을 위한 '조건'이 아니다. 회개는 부활의 소망이 낳는 파장이다. 회개는 항복이다. 하나님의 평화가, 용서가, 사랑이 쳐들어왔다. 어찌 항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종태
참된 영적 경험을 위하여: 수덕과 관상의 생활 (고백자 막시무스) 분내고 성질부리는 마음은 사랑으로 고삐를 삼아 제어하고, 욕심부리는 마음은 자제력으로 누그러뜨리십시오. 그리고 그대의 지성, 그 생각하는 힘에는 기도의 날개를 달아 주어 날아 오르게 하시오. 그러면 그대 마음의 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고 빛날 것입니다. - 고백자 막시무스(Maximus the Confessor), Capita de caritate, IV, 80. 자기의 경험을 믿음의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본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우리의 감각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온전한 존재가 아니듯 우리들의 감각은 역시 불완전한 것이다. 우리의 감각은 종종 우리를 오류에 빠뜨린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자명하다. 즉, 우리는 착각하고 혼동하고 오..
진부한 드라마를 이젠 끝내자 왜 후회할 짓을 자꾸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우리는, 과연 이 짓을 그만 둘수 있기나 한 걸까? 우리는 늘 반복해서 죄를 짓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언제나 자비롭게 용서하고. 또 우리는 죄를 짓고, 하나님은 또 우리를 한량없이 용서하는 이 드라마를 우리는 언제까지 찍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항상 나쁜 죄인 역할이고,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우리를 '단지' 용서하시기만 하는 그런 역할을 보기가 이제 좀 슬슬 지겨워지지 않는가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하지 않겠는가? "무슨 신이 자기 사람을 맨날 나쁜 역할에 앉혀 두냐?" 고. 우리가 인간은 응당 나쁜 짓을 하는 존재라 여기고, 죄인의 역할을 당연시하고 안주할 때, 제기되는 가장 큰 도전은 그러한 안주가 하나님을 욕보이는 꼴이 된..
은총의 징표 (귀고 2세) 내면의 흠집들을 씻어주고 죄의 불을 꺼주는 저 눈물은 참으로 복됩니다. 내 영혼아, 이 눈물 안에서 네 신랑이신 분을 알아 모셔라 …… 한숨과 눈물, 바로 이것이 네 신랑께서 네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이며 위로이다. 이러한 눈물은 그분이 네게 마시라고 주시는 은혜로운 음료이다. 이 눈물이야말로 너의 일용할 양식이 되게 하여라. 이 양식은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하며, 꿀과 벌집보다도 더 달콤하다. -귀고 2세(Guigo II, ?-1188) 《관상생활에 관한 편지(The Letter on the Contemplative Life)》 VIII장 12세기 카르투지오회 수사인 귀고 2세는 《관상생활에 관한 편지》에서 읽기, 묵상, 기도, 관상이라는 4가지 영성훈련의 단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하나님의 임재..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2014년 2월의 추천 고전을 2월을 넘겨서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꼭 2월에 읽어야 한다는 의미로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성 고전을 한 달에 한 번씩 소개한다는 의도로 게시하는 것이니 널리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래의 추천글을 읽어보시고 관심이 생기신다면, 시간을 내어 고전을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 편집자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이후정 역, 은성(1993) 마카리우스는 누구인가 필자가 이 달의 영성 고전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마카리우스(Pseudo-Macarius, c.300-391)의 《신령한 설교》이다. 여기엔 50 편의 와 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들의 저자는 성서와 초대 교회 사막 영성에 영적 뿌리를 둔 위대한 영성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4 세기 후반 시리아..
생각 보고서 (이집트의 안토니우스) 우리는 마치 보고서를 제출하듯 자신의 행동들과 영혼의 움직임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것들이 알려지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죄를 짓지 않을 것이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죄짓는 것이 발각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 입니다. 또 죄를 지은 사람은 그것이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를 지킨다면 간음하지 못하듯이, 서로에게 보고하는 듯이 자신의 생각들을 기록한다면 더러운 생각들이 알려지는 것이 수치스러워 그러한 생각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입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 , 《안토니의 생애》, ch. 55. 외부와 거의 단절된 채 살아간 사막의 수도승들, 특히 홀로 있는 독수도승들은 외부의 유혹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
세 가지 상처 (노리치의 줄리안) 나는 사는 동안 세 가지 상처를 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참된 통회라는 상처, 깊은 동정이라는 상처, 그리고 하나님 향한 갈망이라는 상처.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ca.1342 – ca.1416),《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2.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열여섯 가지 계시'를 체험하고서 평생을 잉글랜드 노리치의 한 교회 부속건물에서 은수자(anchoress)로 살았던 여인 줄리안. 그녀가 1373년 '계시'(showings)를 보기 전에 늘 하나님께 구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세 가지 상처"를 지니고 살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통회'(contrition)라는 상처, '동정'(compassion)이라는 상처, (하나님을 향한) '갈망'(yearning..
나는 회개의 정의를 (그리스도를 본받아) ❝ 나는 회개의 정확한 정의를 아는 사람이기보다는 절절한 회개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c. 1380–1471), 《그리스도를 본받아》, bk.1, c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