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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그분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본회퍼)

나는 한계에 처해서가 아니라 중심에 있어서

약함에 있어서가 아니라 힘에 있어서

죽음과 죄책을 계기로 해서가 아니라 생과 인간의 선에 있어서 

신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 

거기에는 종교로 위장된 도피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 본회퍼 지음(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문익환 옮김, <옥중서신> (The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170, 


이십 대 초반에 만난 신영복 교수의 옥중서간은 자못 맛갈스런 글의 맛을 알려준 나의 문학 입문서이며, 한 인간이 가진 고뇌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인생 지침서이다. 그의 글은 지금도 나를 사색케 한다


"없는 사람이 살기를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삼십칠 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 또 하나의 《옥중서간》을 만났다. 본회퍼의 옥중서간》은 읽는 내내 그의 삶에서 묻어나온 인생의 갈등 뿐아니라, 이십 세기 시대적 고민에 근거한 서구 기독교의 한계와 그 문제를 바라보며 대안을 찾는 신학적 혜안을 얻을 수 있는 천재적 작품이다.

 

특히, 그는 기독교가 "종교로 위장된 도피"를 제공하는 것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삶의 문제들(폭력 앞에 침묵, 부정 앞에 외면, 권력 앞에 비호)을 덮고 피안의 세계로만 인도하는 당시의 기독교는 종교이지 신앙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 이 위장된 종교의 껍데기를 벗고 싶다. 나의 한계에서만 부르는 신의 이름이 아닌, 약함에서만 부르짖는 이름이 아닌, 죄책과 부끄러움 앞에서만 절규하는 신의 이름이 아닌, 힘과 생과 중심에서 그분을 신앙하고 싶다.

 

이 사순절,

그 분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말이다. / 나무 잎사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