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두운 밤,
사랑의 긴박한 갈망에 불타서
―아, 그 순전한 은혜여!―
나는 눈에 띄지 않게 밖으로 나갔다.
집안은 이제 모두 잠들었으므로……
십자가의 요한(John of the Cross: 1541-1591), 《영혼의 어두운 밤》, Selected Writings, ed. Kieran Kavanaugh, (New York: Paulist, 1978). 162.
갈급함에 목말라 밤을 새며 부르짖을 때가 있었다. 밤새껏 부르짖고 나면 '무언가 통쾌하고 내 할 것 다한 것 같고, 이젠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무슨 답답한 문제나 어려울 때에 난 여전히 부르짖는다.
그런데 계속 반복해서 부르짖다 보면, 나에게 하나님은 내가 급할 때에만 필요한 분, 다급하지 않으면 부르짖을 필요가 없는 분으로 생각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분과 나의 관계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도 있다. 또한 아무리 부르짖어도 내가 진실하지 못한 것 같고, 자꾸만 부르짖음 뒤에 내 모습을 가장하는 것 같고, 부르짖음 자체에만 매달리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나아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느껴지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에 더 크게 부르짖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럴 때는 갈멜산에서 비를 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연상되어 때론 무섭기조차 하다.
때로 내 모든 갈망, 잘못된 욕망, 무언가 얻으려 하는 모든 의도를 내려 놓고 조용히 그 분의 사랑만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고, 내 영혼의 모든 소리마저도 잠들어 버리고 난 후에 마치 밤에 몰래 만나 연애하는 연인이 되어 그 분을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고요의 세계, 내 내면의 모든 욕심이 죽는 세계, 모든 것이 잠들고 그 분과만 대면할 수 있는 세계에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난 또 조용한 밤에 나가 아무도 오지 않은 예배당 구석을 찾아 밖으로 밖으로 나간다. /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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