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제가 한 운둔자를 찾아와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생각이 저를 너무도 괴롭힙니다.”
은둔자가 대답했다. “그대는 가공할 무기,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던져버리고, 대신에 갈대로 만든 막대기, 곧 사악한 생각을 손에 쥐고 있구려. 다시 불을 움켜쥐시오. 불을, 가공할 무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움켜쥐시오. 그러면 사악한 생각들이 접근할 때에 마치 불이 갈대를 사르듯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것들을 온통 파괴할 것이오. 악한 생각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압도할 수 없소이다.”
- 사막 교부들 지음, 배응준 옮김, 《깨달음》, (서울: 규장, 2006), 88-89.
꿈에서 이 분이 등장한 게 벌써 세 번째이다. 간헐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내 꿈에 등장하시는 분도 드물다. 현실에서는 교제할 수 없고, 소통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는 분이지만, 다행스러운 건 꿈에서 이 분과 유익하고 좋은 교제의 시간을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나 융의 이론에 따르면, 꿈은 "현실에서 좌절된 욕망에 대한 보상"이라고 한다. 그대로 적용해서 해석하자면, 그 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소통하고 대화하고 싶은 내 기대감과 갈망이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고 단절을 느끼기에 꿈에서라도 내 무너진 욕망이 위로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꿈은 현실의 반대”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이 꿈을 통해 내 안의 관계와 소통에 대한 갈망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갈망의 기저에 더 깊은 열망(desire)이 있는지 성찰해 본다. 인간에게 관계는 본능적인 갈망이기도 하지만 이 갈망이 얼만큼 순수한 것인지는 오직 내 자신 스스로만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분과의 관계를 복원한 뒤에 내가 얻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지는 않은가? 그 분의 명성과 사회적 위치를 통해 내가 덕보려고 하는 의도는 없을까? 우리 사회에서 관계는 재산이라고 하는데, 내 기대치는 혹시 내 재산을 더 늘리고 싶은 욕심인가?
사막의 은둔자는 내 영혼을 해부해 보길 원한다. 내 욕망과 갈망, 기대감의 기저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지는 않았는지! 삶과 인생의 주권자를 하나님으로 말로는 선포하면서, 일상 속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지는 않는가!
“주여, 성령의 불을 드소서. 거짓되고 허망한 욕망의 갈대는 불사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주소서!" / 이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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