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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세상은 투명합니다 (토마스 머튼)


저는 모든 것들이 투명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불투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것은 삶은 이것처럼 단순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완전히 투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항상 빛나고 계십니다. 


-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Solitude: Breaking the Heart (Kansas City, MO: Credence Cassettes, 1988).


영성이 깊어 진다는 것은 세상을 투명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상처, 이기심과 교만, 재난과 사고 등 우리의 눈을 가려 하나님을 숨기는 것들을 넘어서 이 세상 가운데 항상 밝게 빛나고 계신 주님의 현존을 뵙고 그 가운데 사는 사람이 깊은 영성의 사람입니다


토마스 머튼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세상이 지금 우리의 세상과 달리 평온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투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중반은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으로 세계 곳곳에 화약냄새와 비탄이 가득했던 때였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외치기도 하였지요


또는 그가 '세상과 분리된' 수도원 안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한가한' 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젊은 시절 머튼은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그는 수도원의 깊은 고독 속에서 자신 안에 있는 세상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근원적인 차원에서 자신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세상의 비극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머튼은 어떻게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완전히 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아마도 '고독'과 '침묵'일 것입니다. 고독은 우리의 눈을 덮고 있는 '비늘'(행9:18)이 드러나게 하고, 그것을 벗기시는 주님의 은총의 빛에 우리를 노출 시킵니다. 침묵은 우리의 틀에 갇힌 생각과 말들을 잠잠하게 하고, 직관의 눈을 뜨게 하여 사람의 언어에 제한되지 않는 주님의 현존을 보게 합니다. 고독과 침묵은 깜깜한 밤에도 사방을 덮고 있는 어둠이 아니라 그 속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빛을 발견하고 주목하게 합니다. 그러면 점차 어둠이 투명해지고 하나님이 세상 속에서 항상 충만하게 빛나고 계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 권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