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분별 :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과 공동 분별
1. 교회 공동체와 분별
교회는 형제자매들의 신앙 공동체다. 그러나 분리된 개인으로 한 공간에서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성도들의 뒷모습을 마주하노라면 공동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지도자인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Johann Heinrich Arnold)는 《공동체 제자도》에서 개별화된 개인과 가족이 서로의 일부가 되는 것은 자기만의 생각, 이상, 존재를 비우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영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참된 공동체는 하나님과 형제자매들에게서 자신을 떼어놓는 모든 것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 이뤄지며, 하나님의 사랑의 영에 굴복하여 자만, 자기 연민, 자기 주장 그리고 거짓 경건에서 돌아설 때 경험될 수 있다. 1
하나님과 나,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나 사이를 떼어놓는 방해물들, 곧 배금주의, 외모지상주의, 과도한 경쟁, 잘못된 관행, 권위주의, 개인주의, 왜곡된 신앙관, 나태, 탐욕, 교만, 두려움 등은 이기적 자아의 모습이나 거짓 경건으로 위장하여 우리를 속인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리버트(Elizabeth Liebert)가 《영적분별의 길》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이 어떻게 현존하시고, 활동하시고, 또 우리를 개인과 공동체로 부르시는지를 의도적으로 인식해가는’ 분별이 중요하다. 저자는 개인으로 그리고 공동체로 하나님의 부름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아간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of Loyola, 1491~1556)를 통해 참된 공동체를 이루는 길을 모색해 보겠다. 2
2. 이냐시오 로욜라와 공동 분별
1) 분별의 영성가 이냐시오 로욜라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은 《영신수련》이라는 작은 책자에 집약되어 있다. 《영신수련》은 이론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를 묵상하며 주님을 따르도록 돕는 교본이라 할 수 있다. 《영신수련》의 중심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데 이를 위해 예수님의 부르심을 분별하는 원리를 제공하는 ‘특별 묵상’과 ‘분별 규칙’이 첨가되어 있다. 분별규칙은 《영신수련》[313~336]에 나타나는데, 성령의 내적인 움직임들을 다른 근원으로부터 오는 움직임들과 구분하는 방법과 항상 성령에 대하여 개방성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다. 이냐시오는 분별 원리와 규칙을 집을 가지거나, 결혼을 하거나, 가족들의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데 적용하라고 가르칠 정도로( 3《영신수련》[189]) 현실의 선택에 대해 씨름한 분별의 영성가였다.
2) 공동 분별의 배경
《영신수련》의 분별 원리와 규칙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분별을 돕는 데 쓰이지만 공동체적 배경에서도 아주 유용하다. 공동 분별의 예를 《첫 사부들의 식별》(Delibratio primorum Patrum) 4이라는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간략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냐시오 로욜라는 만레사(Manresa)에서 여러 가지 신비 체험을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을 맛본 후 자신의 경험과 신학의 지식 등을 《영신수련》에 녹여 내고, 그것을 활용하여 많은 이들을 지도하면서 그들의 영적 생활을 도왔다. 그들 중 이냐시오를 포함한 몇 명이 청빈과 정결,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고 설교하는 일 등을 공동으로 체험하면서 깊은 형제애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의 동반자’로 스스로를 칭하면서 자신들이 수도회로 결속되어야 할지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들은 토론과 분별을 통해 같은 생활양식으로 결속하기로 결정했으며 예수회라는 수도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 사부들 5의 식별》 은 그들이 《영신수련》의 정신에 기반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간 과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첫 사부들의 식별》에 나타난 공동 분별의 원리를 중심으로 《영신수련》에 배어있는 개인 분별의 원리들이 어떻게 실제적으로 적용되었는지를 살핌으로서 개인과 공동체의 분별에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The First Vows at Montmartre, 1534년.
3. 공동 분별의 실제
1) 분별의 시작 : 올바른 목적과 정체성 공유
《첫 사부들의 식별》[1]은 공동 분별이 시작된 배경을 먼저 언급한다. 이냐시오와 벗들은 동일한 소명을 공유했지만 다양한 배경과 문화로 인해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 의견이 분분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도 의사결정에 있어서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통일된 질서가 없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모두가 나름의 방식대로 주님을 따르기 원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공동분별을 시작해야 할까?’ 6
“우리가 서로 다른 판단을 지니고 있었기에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 존경과 영광을 드리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양으로 봉헌하기 위하여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고자 했다.” (《첫 사부들의 식별』》[1]) 7
공동 분별을 시작할 때 중요한 점은 분별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올바른 분별의 목적을 공유하지 못하면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겉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목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교세(성도수나 재정)확장’, ‘성도들의 편의 증진’, ‘특정인이나 그룹의 영향력 강화’ 등이 목적이 되어 버릴 수 있다. 그러면 공동 분별은 자기 욕망의 경연장이 되고 수단이 목적을 흔들고 이기적이고 세속적 결정을 내리게 된다. 공동 분별에 참여하는 모두가 분별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며 분별에 참여하는 자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소명받은 자’라는 관점을 충분히 공유해야 한다.
2) 분별의 준비 : 불편심(영적 자유)
목적과 정체성이 공유되었다면 다음 단계로 분별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분별의 준비는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 즉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다.(마18:3)
마침내 한 결정에 이르러 만장일치로 합의한 것은 우리가 여느 때보다 좀 더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고 좀 더 열심히 묵상하면서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고 희망하며 우리의 모든 관심을 주님께로만 향하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친절하시고 관대하신 분이시기에 겸손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구하는 이에게 결코 당신의 선하신 성령을 거절하지 않으신다.”(《첫 사부들의 식별》 [1] )
겸손하고 단순한 마음이 《영신수련》[23]에서 말하는 '초연'이다. 이 때 초연(Indifference)은 애착으로 인해 한쪽으로 치우쳐짐이 없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불편심’(不偏心)의 상태이다. 이 때 내적자유를 누린다고 해서 ‘영적 자유’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불편심(영적 자유)은 《영신수련》을 관통하는 아주 본질적인 태도이다(《영신수련》 [15, 179, 189]). 《영신수련》을 통해 수련자가 예수의 길을 향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특별 묵상(《영신수련》 [23, 136~147, 149~155])과 ‘선택을 위한 길라잡이’(《영신수련》 [169])에서도 불편심(영적자유)을 선택을 위한 준비 조건으로 분명하게 강조한다.
분별을 위한 두 번째 준비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첫 사부들은 일상적인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더 기도하고 더 묵상하는 최선을 드리려고 하고 있다. 일상적인 사역과 일을 벗어나지 않았다. 반드시 기도원이나 수도원과 같은 별도의 공간일 필요는 없다. 일상적인 사역과 병행하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그 분의 뜻을 구하려는 열정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분별은 맞는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사랑해가는 과정이다.
3) 분별 방법 결정 : 이성적 분별
준비를 갖춘 후 어떤 방법으로 분별했을까? 이냐시오와 그의 벗들이 사용한 실제적인 분별의 방법은 《첫 사부들의 식별》 [2]에 잘 나타난다. 그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문제들을 살피고, 일을 마친 밤시간에 함께 모여서 선택안을 시험하고 이유를 설명하고, 다수의 의견에 따라 수정해가면서 합일점에 도달해갔으며, 이런 과정을 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 방식을 이성적 분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신수련』의 ‘선택을 위한 길라잡이’에 근거한다.
제시된 직책이나 교회의 특전을 취함으로써 오직 우리 주 하나님을 찬미하고 내 영혼을 구원하는 데 내게 얼마나 유익하고 도움이 될 것인지를 따지고 고찰한다.(《영신수련》[181])
제시된 것에 대해 이처럼 다방면으로 따지며 궁리한 다음에는 이성이 어느 편으로 더 기우는지를 살핀다.(《영신수련》 [182])
이냐시오의 분별 규칙은 기본적으로 위로와 실망이라는 내면의 감정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유혹이 있을 수 있기에 이성적 성찰로 보완도록 한다. 이냐시오와 벗들은 공동체로 결속되는 것이 하나님을 더 섬기고 영광스럽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유를 서로에게 설명함으로써 서로 시험하고, 더 나은 안을 찾고, 다수의 생각을 모아가는 이성적 분별을 사용한다.
4) 선택안 구체화 : 질문하기
분별의 방법을 정한 후에 질문을 제기한다. 첫 질문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내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는가?”였다. 이것은 근원을 흔드는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예수의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삶을 나누며 살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루어진 우정, 이미 이루어오던 방식까지도 폐기할 수 있는 개방성이 담긴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그들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주 다양한 우리를 함께 모이게 하셨고 일치시키셨으니 하나님께서 모으시고 일치시킨 것을 우리가 갈라서는 안 된다.”(《첫 사부들의 식별》[3])라고 마음을 모아간다. 그들에게 공통의 신앙 경험을 주시고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명의 본질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우리 중 누군가 한 명에게 순명할 수 있는가?”이었다(《첫 사부들의 식별》[4]). 만약 그들이 한 공동체로 연결되기 원한다면 지도자의 인도에 따라 순명의 삶을 살아야했다. 이것은 첫 질문을 구체화하는 실제적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의 질문하기를 통해 구체적인 선택안을 갖게 되었다.
5) 교착 해결하기 : 믿음을 통한 개인과 공동체의 양립
그들이 영성수련을 함께 하고 공동 사역을 체험하고 결속되었다고 해서 공동 분별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여러 날 기도하고 숙고했지만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첫 사부들의 식별》[5]). 이냐시오와 동반들은 이 때 더 나은 방법으로 ‘분별의 환경을 바꾸는 것’과 ‘누군가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것’을 고민한다(《첫 사부들의 식별》[5]). 그러나 세 가지 영적 준비를 제안함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더 많은 기도와 묵상 등의 최선을 다하는 노력’, ‘상대방의 생각을 염탐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말 것’, ‘제3자적 태도를 가질 것’(《첫 사부들의 식별》[6]). 교착상태에 빠지면, 소수자를 설득하거나 또는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위임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 때 영적 준비를 위한 해결책을 제안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집중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다만 함께 기도하면서 제3자적 관점, 즉 불편심(영적 자유)을 가지면서 자신이 경험한 움직임을 공동체와 나누었다. 개인에게 경험된 하나님의 의도를 존중하여 각 개인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때로는 동일하고 때로는 상반되지만 전체적으로 온전히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고 있다. 믿음으로서 교착을 해결한다.
6) 선택안 결정 : 선택안에 대한 불이익과 이익을 통한 마음의 기울기 측정
교착을 해결하기 위한 영적 준비를 마친 후, 다음 날 모여서 개별적으로 기도하고 성찰하면서 얻게 된 순명에 대한 부정적 측면(불이익들)을 전체에게 돌아가면서 발표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질문의 반대측면, 즉 순명에 대한 긍정적인 면(이익들)에 대하여 기도 중에 성찰한 것을 다시 돌아가면서 나누었다. 이 때 전 날 나눈 것들 중 불가능하고 엉뚱한 것들은 감소시켜갔다(《첫 사부들의 식별》[7]). 이런 정보들을 다시 숙고해가면서 마음의 기울기를 측정해 나갔다(《영신수련》[182]). 공동체 전체가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지는 지를 살피면서 다수의 마음이 어디로 모아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다수결이지만 아무의 반대도 없는 만장일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첫 사부들의 식별》[8])
4. 제언
이냐시오의 공동 분별은 개인의 분별과 공동체의 분별을 일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다수의 의견이 한마음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과정이다. 포스트 모던의 교회 현실에서 《첫 사부들의 식별》의 식별에서 제공하는 모델을 통해 개별성과 공동체성을 동시에 존중하는 공동 분별은 특히 큰 유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공동 분별의 모든 과정이 《영신수련》이라는 지속적인 회심 체험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선택하려는 《영신 수련》의 정신과 태도가 배어 있지 않은 채 방법만으로 올바른 공동 분별을 이루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훈련해 가면 이냐시오를 도우신 주님이 분명 우리도 도우실 것이다. 이냐시오의 공동 분별의 원리와 정신을 당회와 제직회 등의 의사결정에 적용해 감으로서 한국교회가 참된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글쓴이 : 유재경.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spirituality.or.kr) 연구원. 장로회신학대학교 Th.M(영성신학), 영락수련원(영락교회 영성센터)지도목사.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목회와신학>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목회와신학>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매달 글을 게재합니다. 위의 글은 2015년 8월 호에 실린 여덟 번째 글입니다. 잡지에는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요약본이 실렸지만, 이곳에서는 전문을 게재합니다.
- 1.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 《공동체 제자도》, 110~115쪽 요약. [본문으로]
- 2.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은사적 분별(고전 12:10)을 ‘분별’로, 그리스도의 빛으로 모든 믿는 자가 내면 안에 일어나는 영의 움직임을 구별하는 훈련적 분별(요일1:9, 4:1)은 ‘식별’로 용어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는 보다 친숙한 ‘분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본문으로]
- 3. Ignatius of Loyola 지음, 정제천 옮김,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s)(서울: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0), 313~336번(쪽 번호 아닌 문단 번호이며 이후부터 《영신수련》 [313]으로 표기함) [본문으로]
- 4. 다양한 영어 번역본 중 Jules J. Toner, S.J. “The Deliberation that Started the Jesuits: A Commentario on the Deliberatio Primorum Patrum,” newly translated, with a historical introduction, Studies in the Spirituality of Jesuits Ⅵ no. 4 (June 1974)를 기반으로 쓴 심종혁, "사도적 공동체로서의 예수회의 기원", 종교신학연구 6 (서강대 신학연구소, 1993.12): 389-419쪽의 한글 번역문을 사용하였음. [본문으로]
- 이냐시오와 함께 예수회의 창립에 참여한 설립 주역들 [본문으로]
- 5. 아투로 코디나(Arturo Codina)가 라틴어 원문을 아홉 개의 문단으로 분류한 표준 번호를 따름. [본문으로]
- 6. 번역본은 “하느님”이지만 이 글의 독자가 대부분 개신교 배경을 가진 점을 감안하여 앞으로 “하나님”으로 바꾸어 쓰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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