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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고전의 벗들 (2차 자료)

[서평] 부담 없는 입문서, 아쉬운 연구서

토머스 머튼

은둔하는 수도자 ∙ 문필가 ∙ 활동하는 예언자

Mission-Shaped Hermit: Thomas Merton, Mission and Spirituality

키스 제임스 지음 · 김은해 옮김 | 비아 | 2015년


    선교와 영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올해 초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5)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성공회 출판사 '비아'에서 나온 《토머스 머튼: 은둔하는 수도자, 문필가, 활동하는 예언자》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Mission-Shaped Hermit :Thomas Merton, Mission and Spirituality인데요, 문자적으로 옮기자면 "사명으로 형성된 은둔 수도자: 토마스 머튼, 선교와 영성"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서의 제목에 포함된 "Mission-Shaped" 운동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운동은 Mission-Shaped Church[사명으로 형성된 교회]라는 제목의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2004년 보고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로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가 서문을 쓴 이 책은 영국 사회의 세속화와 그로 인한 교인수 감소라는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교회의 모델로서 "선교적인 교회"(missionary church)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 이후로 "Mission-Shaped"라는 형용사구는 일종의 유행어가 되어 영국 국교회에서 출판되는 많은 문서와 책들의 제목에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키스 제임스(Keith James)의 Mission-Shaped Hermit도 이러한 영향 아래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각주:1]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듯이, 영어 단어 'mission'[미션]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주로 '선교'라고 번역되고 있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어려운) '임무' 또는 '과제'라는 의미로 번역 없이 그대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사명' 또는 '천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리신 명령(마태복음 28:19-20)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사명'은 일차적으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 '선교'를 의미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머튼의 글에서 '미션'이라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 우리말로 '선교'보다는 '사명'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머튼의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을 읽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정작 머튼 자신은 비종교인 또는 타종교인들을 '개종'시키는 선교에 대해서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머튼은 그리스도인의(또는 수도자의) 사회적, 도덕적, 시대적 사명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글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책, 《토머스 머튼: 은둔하는 수도자, 문필가, 활동하는 예언자》에는 '미션'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선교'와 '사명' 사이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의 저자 키스 제임스는 '선교'라는 관점에서 머튼을 소개합니다. 그는 서문에서 "토머스 머튼이 선교를 지향하는 운동을 점검했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8)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입니다. 먼저 장점인 이유는 지금까지 머튼에 관한 책과 글들이 아주 많이 나왔지만, 선교의 관점에서 머튼을 이해하고 소개하는 글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머튼은 선교보다는 '종교 간의 대화'라는 주제로 더 많이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라는 바늘로 머튼의 인용구들을 구슬처럼 꿰매고 있는 이 책은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다소 실망스럽게도 실제로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선교에 대한 머튼의 직접적인 이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해 주고 있지 못합니다. 

    저자는 본론에서 머튼이 수도생활을 통해 깨달은 지혜와 유산들을 (그것들이 선교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몇 가지 간략하게 언급한 뒤에, 결론에서 그것들이 오늘날의 선교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적용' 또는 '유추'하고 있습니다. 키스 제임스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제7장 머튼과 선교: 결론"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담겨져 있는 듯합니다.

그리스도교인은 은연중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다른 이를 개종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교회는 다른 종교 집단을 그리스도교 선교를 방해하고 국가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교적 유산을 훼손하는 경쟁자로 곧잘 간주한다. 신앙과 다른 길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 머튼은 진리에 열린 태도를 가질 것을 권했다. 진리는 어디에서든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자신과는 다른 이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자신과는 다른 이를 사랑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따를 때 교회의 선교는 거듭나며 활력을 얻는다. 머튼은 교회가 행동만큼이나 침묵과 관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침묵은 행동과 예언자적 증언을 이끌어 낼 수 있다. (65쪽)

곧, 타종교인을 개종의 대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열린 태도로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교회가 선교 활동을 할 때에는 활동 자체에 매몰되지 말아야 하고, 침묵을 통해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예언자적 증언이라는 열매를 맺어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 견해에는 위의 구절에는 (이 책의 다른 구절들에도 종종 그런 부분이 발견되지만) 머튼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섞여 있습니다. 관상과 활동의 관계,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머튼의 사상을 가져와서 저자가 선교의 관점에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맞는 것 같기도 하나 다른 한 편으로는 양복 옷감을 잘라서 한복에 갖다 붙인 것과 같은 부자연스러움과 논리적 비약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위의 "진리는 어디에서든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은 문맥상 모든 종교에, 또는 모든 종교의 바깥에 진리가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입니다. 저자가 구체적으로 머튼의 어떤 글에 근거해서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머튼은  타종교에서 수련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자연적인 깨달음과 하나님의 선물로 얻게 되는 초자연적인 비전을 구분하였고, 타종교와 대화할 때에는 교리적 차원이 아니라 경험적 차원에서 접근하였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시도한 것처럼 머튼의 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생각을 선교의 영역으로 가져와 적용하기 위해서는 짧고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보다 신중하고 정확한 해석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저자도 위에 인용한 구절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지역 교회가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를 명료하게 도출해 설명할 수는 없다."(65쪽)라고 말하고 있으며, 몇 장 뒤에서는 "머튼의 통찰과 비전을 우리가 처한 상황에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직 이를 행할 때에만 알 수 있다."(68쪽) 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키스 제임스는 이 책에서 머튼의 영성이 오늘날의 선교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 지를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는 '머튼을 통해서 우리가 선교를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한 견고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선언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68쪽).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읽은 후에 남는 가장 진한 아쉬움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본론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경청', '사랑', '침묵', '예언', '초연함' 등에 관한 내용들은 이미 머튼에 대한 다른 책들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사소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머튼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정보가 발견되는 점, 때로는 인용문이 머튼의 것인지 다른 인물의 것인지 책 뒤에 있는 미주를 찾아 보지 않으면 본문에서는 구분이 되지 않는 점, 그리고 (이것은 한국어판 편집 과정에서의 실수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인용구는 미주의 참고문헌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점 등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실망은 머튼을 여러 해 동안 공부해온 저만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머튼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라면, 100여 쪽 밖에 되지 않는(원서는 28쪽) 짧은 그 내용들이 쉽고 신선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이 책은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아서 손에 들고 다니기도 좋고, 독서에 대한 부담도 줄여줍니다. 또한 사실 이 책에 인용된 머튼의 많은 구절들은 문맥에서 그 내용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더라도, 그 구절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사고와 성찰의 문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유익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뒤에 실린 토마스 머튼에 대한 참고도서 소개는 머튼 입문자들에게 유용한 정보임에 틀림 없습니다. 또한 번역자와 편집자는 친절하게도 국내에 번역된 머튼 참고도서에 대한 소개까지 추가해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외 이 책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은 각 장의 주제와 관련한 성찰을 위한 질문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서에서는 각장의 마지막에 질문이 달려 있지만,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각 장의 처음에 질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먼저 그 장의 본문을 읽은 후에, 그 질문을 가지고 숙고하거나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한다면 글을 마음에 새기는 데에 매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키스 제임스가 이 책에서 머튼의 선교 이해를 밝히는 데에는 그리 성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저자는 '선교와 영성'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미셔널(또는 미션얼) 처치(Missional Church)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영국의 "미션 쉐이프드 처치 운동"과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해외 선교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명과 갱신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각주:2] 이와 관련하여 선교와 영성, 또는 교회 갱신과 영성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보다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 외에도 출판사 '비아'에서는 헨리 나우웬(Henry Nouwen: 1932-1996)이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등에 대한 짧은 입문서들을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찾아 보니 모두 영국 국교회 출판사인 Grove Books의 영성 시리즈를 번역 출간한 것이네요. 이런 이유로 비아에서 머튼의 입문서로 키스 제임스의 책을 선택한 것이겠지만, 굳이 Grove의 책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 역시 성공회 작가인 전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의 A Silent Action: Engagements with Thomas Merton(Fons Vitae, 2001)을 번역 출간하는 것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훨씬 유익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수도자와 사회 비평가로서의 토마스 머튼을 정교회 신학자 파울 에브도키모프(Paul Evdokimov: 1901-1970)와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혹시 비아에서 머튼에 관한 책을 한 권 더 출간할 계획이 있다면, 윌리엄스의 이 책을 고려해 준다면 고마울 것입니다. 

/ 바람연필 권혁일


  1. 1. "Mission-Shaped Movement"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했습니다. Angus F. Stuart, review of Mission-Shaped Hermit: Thomas Merton, Mission and Spirituality, The Merton Seasonal 35 no. 4: 40. [본문으로]
  2. 2. 참고. http://goo.gl/5GjlxI; http://goo.gl/SyCFSB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