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ing God: Theology as Spirituality
케네스 리치 지음 · 홍병룡 옮김 | 청림 | 2011년
영성 지도(spiritual direction) 사역에 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케네스 리치(Kenneth Leach)의 《영혼의 친구》(Soul Friend)를 꼭 읽어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케네스 리치라는 이름은 아마도 《영혼의 친구》라는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리치는 영성 지도에서 중요한 저작들을 남겼는데, 이 책 《하나님 체험》(Experiencing God)은 영성 지도와 관련된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중 《영혼의 친구》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True Prayer)에 이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세 번째 책이다. 이 삼부작을 잘 들여다보면 영성 지도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잘 다루어주고 있다. 《영혼의 친구》는 영성 지도의 정의, 영성 지도의 역사, 영성 지도와 기도, 영성 지도와 심리학 등의 주제들을 통해 영성 지도를 소개하는 개론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영성 지도에 참여하는 영성 지도자나 피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라는 영성 훈련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체험》은 역시 영성 지도에서 나누는 대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는 하나님 경험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리치는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영성 지도라는 사역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체험》을 접근하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리치는 왜 영성 지도에 그토록 큰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리치는 1939년에 영국에서 출생하였고, 1965년에 서품을 받은 영국 성공회의 신부이다. 성공회 신부로서 리치는 다양한 목회활동에 참여했겠지만,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센터포인트(Centrepoint) 사역이다. 그는 센터포인트라는 자선단체를 1969년에 창립했는데, 이 단체는 16-25세의 청소년과 청년 노숙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는 사역을 해왔다. 센터포인트의 이전 대표 후원자가 다이애나 왕비, 현재 대표 후원자가 그녀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라는 사실은 이 단체가 그 사회에서 얼마나 공신력 있는 단체가 되었는가를 보여주며, 동시에 리치가 영국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끼쳤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영성지도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은 센터포인트의 사역 가운데 하나가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이라는 점이다. 센터포인트는 신뢰할 수 있는 멘토들을 일대일로 청소년들과 연결시켜 주고, 1년 동안 서로 만남을 갖고 도움을 주도록 해왔다. 멘토링과 영성 지도는 구분되지만 비슷한 사역이므로,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이 이 단체에서 중심적인 사역이었음을 볼 때, 이것은 리치가 영성 지도라는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영성 지도의 방향과 성격을 이해하고 규정하는데 틀림없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저자와 영성지도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하나님 체험》이라는 책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제목. 이 책은 “하나님 체험”을 제목으로 뽑았는데, 미국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기독교영성학(Christian Spirituality) 학자인 버나드 맥긴(Bernard McGinn)이나,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샌드라 쉬나이더스(Sandra Schneiders)가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영성이라는 학문에서 “하나님 체험”은 핵심적인 주제이다. 영성이라는 학문은 체험 (또는 경험)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영성은 체험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기독교인이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독교 영성학을 세 분야로 나눈다면, 성경적 영성(biblical spirituality), 교회사적 영성(historical spirituality), 그리고 목회적 영성(pastoral spirituality)이다. 성경적 영성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교회사적 영성은 교회사의 자료에 나오는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그리고, 목회적 영성은 현대 기독교인의 하나님 체험을 다룬다. 이처럼 “하나님 체험”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 주제이자, 영성지도 대화의 핵심 주제가 된다.
그런데, 저자는 부제를 “Theology as Spirituality” (영성으로서의 신학)라고 했다. 이 표현은 이 책의 방향을 짐작하게 해준다. 즉,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조직신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영성적 관점에서 씌어진 것이며, 따라서 신학적 논쟁을 피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저자가 생각하는 신학이란 변화의 체험이 일어나는 신학이다. 리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된 신학이란 참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 또 만남을 통해 인간이 변화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을 다루는 변혁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신학과 영성의 관계에 대한 토론 또는 논쟁은 교회사에서 무척 오래된 주제이다. 쟝 르클레르크(Jean Leclercq, 1911~1993)라는 중세사에 정통한 영성학자는 대학의 출현이 영성과 신학의 분리를 낳았다고 주장했는데, 리치는 영성과 신학을 하나님 체험 안에서 다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과 영성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의 고민과 맥을 함께 한다. 신학교 교육이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있어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신학교마다 영성훈련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 고민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과 영성의 통합이라는 리치의 화두는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매우 적합한 주제이다.
자, 이제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리치는 1장 “하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하나님의 안부를 묻는다. 니체나 마르크스, 프로이드가 주장하듯이,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은 정말 죽은 것인가? 아니면, 마르틴 부버나 자크 엘룰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에 대해 그동안 쓰였던 개념적 언어가 죽은 것인가? 저자는 나중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계신다. 이제는 참된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잘못된 하나님 이미지에 기대왔던 거짓평안에 안주하지 말고, 창조적 의심을 바탕으로 무신론 너머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기에서 리치는 무신론자들의 의심마저도 창조적 의심을 가능케하는 디딤돌로 겸손하게 사용하고 있다. 리치가 현 상황을 “종교적인 준거 틀, 성스러움에 대한 의식, 심지어 하나님의 관념까지” 모두 허물어졌다고 묘사하는 것은 다분히 리치가 이 책을 쓰던 20세기 중반 유럽의 상황에 바탕을 둔 인식이다. 그러나, 이 상황인식은 현재 한국 사회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비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은 진정 하나님의 현존을 증명해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한편으로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상실하고 영적분별력을 잃어버린 채 내면적 체험에만 골몰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리치의 조언을 우리에게 적용해보자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한국교회를 사랑하신다는 급급한 변명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한다고 믿고 있는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인가, 우리의 믿음과 영성생활의 토대가 참된 것인가를 의심해보는 것이다.
《하나님 체험》의 2장부터 13장까지 나오는 내용은 우리의 의심이 창조적 의심이 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로운 토대 위에 세우는데 있어서 매우 도움이 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성경과 교회사를 통틀어서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을 열두 가지 스펙트럼으로 묘사하고 있다. 먼저, 2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구약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으로서 사막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 그리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3장 “예수의 하나님”은 복음서를 통해, 인자,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살펴 본다. 4장 “하나님, 그리스도, 교회”는 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를 바탕으로, 인류를 하나로 만드시는 하나님, 구원과 화해, 빛과 사랑의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그리고 종말론을 다룬다. 5장 “사막의 하나님”은 사막 교부들과 수도원 운동을 중심으로 고독과 관상, 단순함, 기다림, 투쟁의 영성을 강조한다. 6장 “구름과 어둠의 하나님”은 동방과 서방의 전통을 섭렵하며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통한 앎”의 체험, 즉 부정적(apophatic) 체험을 설명해준다. 7장 “물과 불의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과의 만남을 다루는데, 특히 오순절 전통의 “성령세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신비주의 전통의 마음을 거룩으로 이끄는 사랑의 불에 대해 설명한다. 8장 “육신을 입은 하나님”은 성육신, 몸, 물질, 성(sexuality), 그리고 신화(deification)라는 주제를 다룬다. 9장 “성찬의 하나님”은 성찬식, 제사,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전례의 해방적 성격 등에 대해 설명한다. 10장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하나님의 고통, 대속인가 화해인가, 정치적 행위로서의 십자가, 실천신학으로서의 십자가 신학, 그리고 제자도 등을 다룬다. 11장 “심연의 하나님”은 내면으로의 여정, 신비주의, 영적 여정의 삼중 단계, 영적지도, 그리고 신비주의와 정치 등에 대해 설명한다. 12장 “어머니 하나님”에서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경험한 영성가들, 마리아론의 문제, 그리고 페미니즘 신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13장 “공의의 하나님”은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정의를 하나님의 사회적 성품에 근거한 것으로 보며, 평화 및 가난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상의 열두 가지 하나님 체험은 저자가 인위적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분류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에 있어서 “사막” 그리고 “어둠”이라는 주제의 경우처럼 겹치는 부분도 있다. 또, 독자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 저자와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 가운데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하나님 이미지가 성경과 교회사의 자료를 통해 제시되는 것에 신선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 리치의 열두 가지 하나님 체험 분류는 기독교 영성 자료에 대한 상당한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겸손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의 영성생활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연구를 위해서 기독교 영성학적으로도 무척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체험》에 대한 필자의 전체적인 소감 몇 가지와 함께 북리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첫째, 다수의 영성가들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영성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다. 각각의 영성가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존스, 와인라이트, 아놀드가 편집한 《기독교 영성학》(The Study of Spirituality)과 버나드 맥긴, 질 라이트, 루이스 두프레 등이 각각 편집한 《기독교 영성 1, 2, 3》(Christian Spirituality 1, 2, 3)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이 책에는 전적타락, 마리아론, 화체설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독자들이 신학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다소 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성공회 신부이기 때문에 그의 신학적 입장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작은 몇 부분에서 신학적 논쟁에 사로잡히지 말고 이 책의 주제인 하나님 체험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유익을 얻기 바란다.
셋째,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영성관련 서적은 특히 번역이 중요하다. 체험을 표현하는 표현들이 번역에 따라서 더 이해할 수 없게 되거나 전혀 다르게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은 정말 훌륭하다. 진심으로 역자의 수고와 열정에 감사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책이 상당히 두꺼운 편이라서 지레 포기할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으레 갖기 마련인 독서를 빨리 완수하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읽어나가면, 영성가들의 글에서 인용한 부분들이 마치 맑은 우물에서 직접 길어온 샘물들과 같아서 그로 인해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고 새 힘이 솟아나는 경험들이 일어날 것이다. / 이강학
- * 이글은 〈목회와신학〉 2012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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