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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헬조선을 성서조선으로!

우리는 다소의 경험과 확신으로써 금일의 조선에 줄 바 최진최절(最珍最切)[가장 귀하고 가장 간절함]의 선물은 신기하지도 않은 구·신약 성서 한 권이 있는 줄 알뿐입니다. … 〈성서조선〉아, 너는 … 조선 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초부[나무꾼] 일 인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

 - 김교신 지음(1901-1945), KIATS 엮음, 《김교신》(서울: 홍성사), 167, 168. 

교회는 민초들이 나무뿌리만 먹으며 지냈던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부터 사람들의 혼을 책임지는 의식 공동체였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지만‘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겠다’고 일갈하던 김교신, 함석헌, 유동식 같은 어르신들이 있었기에 지옥과 같던 ‘헬조선’은 ‘성서조선’이 되었다. 교회가 변질되었다고 매도하는 목소리들이 더 큰 요즘이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건강한 ‘작은 교회’를 꿈꾸며, 육참골단(肉斬骨斷)의 마음으로 아픈 부위를 도려내며 갱생하려 몸부림친다. 그 일이 조선 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을 성서 위에 세우는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우리 나라가 ‘헬조선’이 되었다고 아우성이다. ‘5포, 7포, 9포’ 시대의 넉두리와 원한이 곳곳에서 비등하다. 왜 성서조선이 헬조선이 되었는가? 게다가, 이 정부는 조선의 혼이 가득한 조선 사람의 역사를 제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한다. 꽃보다 더 고운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저 푸른기와집, 담벼락을 향해 애절하게 외친다. 왜 성서조선이 헬조선이 되었는가? 

다시 헬조선에서 성서조선이다. 교회는 조선의 혼을 책임지는 의식 공동체다. 교회는 잘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궁전이 아니라, 더 많이 갖기 위해 충혈된 눈이 모인 시장이 아니라, 시골로, 산천으로… 그분의 위로에 굶주린 이들과 함께하는 곳이다. 이제 이 조선은 최진최절(最珍最切)의 선물인 성서 위에 다시 서서 조선의 혼을 깨우고, 민중을 살리고, 역사를 새롭게 써야할 것이다. 그 때, 한반도는 지옥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맛볼 것이다.

타말파이스 이경희



김교신 선생이 발간한《성서조선》 창간호 (1927.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