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과 영적 독서

기타/영성 관련글 2021. 3. 5. 16:45

사순절과 영적 독서

 

 

사순절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십일을 일컫는 말이다. 왜 사십일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이기며 준비하신 날수가 사십일인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하며 기념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온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이다. 대림절은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십일이고 사순절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십일이다. 사십일 동안 그리스도인은 다양한 영성훈련들을 통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기다린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에 참여할 날을 기다린다.

 

사순절은 사십일 동안 영성훈련에 집중하는 기간이다. 여기에서 영성훈련이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활동을 잘 알아차리고 순종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든 내적이고 외적인 방법들이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방법이라는 뜻에서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이라고도 한다. 영성훈련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묵상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는 첫 번째 수단이다.

 

성경 묵상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성경 묵상 방법 중 교회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이 영적 독서 또는 거룩한 독서이다. 라틴어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번역한 것이다. 귀고2세는 <수도승의 사다리>라는 책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네 가지 단계 또는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 그 네 가지 단계는 읽기, 묵상, 기도, 그리고 바라보기이다.

 

첫째 단계, 정해진 성경 본문을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읽는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선택한다.

 

둘째 단계, 선택한 구절을 암송하면서 묵상을 시작한다. 묵상은 능동적으로 정신, 마음, 그리고 의지를 동원해서 전인격적으로 말씀을 마주하고 반응하는 행위이다. 지성을 동원해서 말씀을 이해하고, 감정을 동원해서 말씀을 느끼며, 의지를 동원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셋째 단계, 묵상하면서 올라온 마음들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기도한다. 죄를 깨닫고 탄식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은혜를 깨닫고 느끼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결단의 기도를 드리고, 또 지혜와 용기를 주시도록 청원의 기도를 드린다.

 

마지막 단계,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 사랑의 임재 안에 고요히 머문다. 렉시오 디비나를 소개하는 영성 고전 <수도승의 사다리>를 쓴 귀고 2세는 이 네 가지 요소가 성경 묵상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 한다: “묵상 없는 독서는 메마르며, 독서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묵상 없는 기도는 냉담하고, 기도 없는 묵상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기도가 열정적일 때 [바라봄]에 이르는 것이지, 기도 없이 [바라봄]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그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들이 골고루 경험 되지 않으면 마음은 어느새 메마르거나, 오류에 빠지거나, 냉담한 상태에 빠지고, 열매 맺지 못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순절 기간 동안 날마다 최소한 30분씩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성경 묵상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성경 묵상은 아침에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침 묵상은 사실 묵상의 시작일 뿐이다. 아침에 하나님이 주셨다고 여겨지는 성경 구절을 마음에 담아 하루 종일 생활하면서 수시로 되새기는 것이 진정한 묵상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구체적인 순간에 적용 되고 나를 변화시키고 열매를 맺기에 이른다. 이러한 성경 묵상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의 고백이 바로 시편 119편 103절인 것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하루 종일 묵상하면서 깨닫고 느낀 것을 영성 일기장에 기록해놓으면 나중에 영적으로 힘든 시기에 도움이 된다.

 

성경을 묵상할 때 어떤 주제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까? 사순절 시기에 하는 묵상의 주요 주제는 죄, 죽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다. 첫째, 사순절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죄악 된 습관을 고치기에 좋은 시기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아울러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다. 죄악 된 습관을 벗어버리려면 죄에 대한 인식과 함께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죄 묵상에 도움이 되는 성경 본문들은 다음과 같다: 십계명(출애굽기 20:1-17), 사도 바울의 악덕 목록(갈라디아서 5:19-21, 디모데후서 3:1-5).

 

둘째, 사순절은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겸손해지기에 좋은 시기이다. 전통적으로 사순절이 시작 되는 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했다. 예배 시간에 목회자가 재를 머리에 발라주면서 창세기 3장 19절을 읽어 주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수도원 영성의 위대한 스승인 요한 클리마쿠스는 <천국의 사다리>라는 책에서 자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영성훈련이라고 강조했다: “부단히 노력하더라도 주님께 진 빚을 갚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을 자기 생애의 마지막 날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경건하게 살기란 불가능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면 가장 큰 죄인 교만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우리가 얼마나 죽음의 권세에 짓눌려 살고 있는 지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부활의 감격을 크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다운 인내와 희생의 삶을 결심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제자도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또는 일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연합은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도 함께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수님의 고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마음은 예수님을 깊이 사랑할 때 올라온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는 시기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넘쳐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라는 결심이 새롭게 올라오는 것을 경험하기에 적합한 시기이다. 이를 위해 도움이 되는 성경 본문은 당연히 복음서이다. 복음서를 한 권 정해서 예수님의 일생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읽고 묵상해보라. 우선 예수님을 더 잘 아는 것을 목표로 기도하며 묵상한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정보를 축적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격적으로 사귀어 안다는 의미이다. 복음서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고 그가 경험한 예수님의 사랑이 동시에 나를 향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더 잘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더 가까이 따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2021년 사순절에 특별히 성경 묵상의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은 코로나 재앙이다. 우리는 현재 인류의 역사에 남을 감염병 재앙의 한 가운데에 있다. 성장의 가도를 질주하던 인류 문명이 강제로 멈춤을 당했다. 이 재앙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반드시 묵상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재앙 및 탄식과 관련된 본문들을 읽고 묵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대표적인 본문은 다음과 같다: 출애굽 당시에 이집트 백성이 경험한 열 가지 재앙(출애굽기 7-12장), 피조물의 탄식(로마서 8:18-22).

 

이번 사순절 성경 묵상을 통해 죄악 된 습관을 한 가지 극복하고, 더 겸손한 마음으로 부활의 소망을 품게 되며,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용솟음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강학

 

영락교회 「만남」(통권565호, 2021년 3월) 게재.

posted by 바람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