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에 해당되는 글 13건
- 2014.12.11 금방 다시 괴로워지는 마음 (하나님 임재 연습)
- 2014.11.27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 2013.12.15 그저 바라보면서 경험할 뿐 (하나님 임재 연습)
- 2013.09.28 당신이 원하시니 (하나님 임재 연습)
- 2013.05.09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임재 연습)
- 2013.04.30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
- 2013.04.09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주님 (하나님 임재 연습) (1)
- 2013.03.05 죽어버린 관계 (로렌스 형제) (1)
- 2012.12.13 기도 외의 시간 (하나님 임재 연습) (2)
- 2012.10.31 완전한 순종 (하나님 임재 연습)
글
내가 더 우선적으로 여기는 것은 가능한 한 자주 그분과 함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 앉아 있는 것이라네. 그분과 함께 거기 거할 때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네. 하지만 일단 그분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금방 괴로워진다네.
-로렌스 형제(1605-1691)지음, 윤종석 옮김,《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서울: 두란노, 2000), 41.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생활은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0) | 2014.12.28 |
---|---|
그리스도의 탄생과 가치의 전복 (김교신) (0) | 2014.12.20 |
금방 다시 괴로워지는 마음 (하나님 임재 연습) (0) | 2014.12.11 |
님은 먼 곳에? (아빌라의 테레사) (0) | 2014.12.09 |
그리워하면 깊어진다 (히포의 어거스틴) (1) | 2014.12.06 |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아니고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 (0) | 2014.11.25 |
글
고통에서 건져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 사랑을 위해 결연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 로렌스 형제 (1605-1691) 지음, 오현미 옮김《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좋은 씨앗, 2006), 114.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하겠지만 난 군대 생활이 좋았다. 무질서 하던 대학 새내기 생활을 뒤로하고, 규칙적인 삶과 규칙적인 식사 속에서 난 내 몸이 처음으로 건강해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몇 주간은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눈동자 하나라도 흔들리면 바로 장교들이나 고참들의 소리와 물리적인 압박이 가해져 왔다. 훈련소에서 처음 행군 나가서 몇 주만에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던 바깥 세상의 가게며 마을이며, 집들을 보았을 때, 난 처음 탈영을 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참아서였는지 용기가 없어서였는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격 훈련에 앞서 군기를 잡기 위해서 심한 얼차려를 받았다. 속된 말로 구르고 또 굴렀다. 군복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머리며 코는 흙먼지로 뒤범벅이 되었다. 육체의 한계라는 말이 오래간만에 생각나는 날이었다.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땀투성이, 먼지 투성이가 된 훈련병들을 향해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소대장이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 말이 내 군생활을 건강하게 했던 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 하루 즐기며 견디었고, 제대할 때에는 난 정말 건강해져 있었다.
그런지가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신앙의 여정은 언뜻 보면 지루하고 더딘 여정 같지만, 어찌 보면 군대보다 더 힘들고 더 농도 깊은 고통의 시간일 때가 있다.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알고 그 속에서 말씀을 붙잡고,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군인보다 더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여전히 느끼는 내 모습은 될 수 있는 대로 고통을 피하고 싶고, 두려움에 맞서기를 꺼리는 그런 소심한 나다. 군대에서는 군기가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 여전히 피하지 말고 감당해야 한다. 그 분을 사랑한다면 기꺼이 맞서야 한다. 그래서 또 무릎 꿇고 그 분 앞에 엎드린다.
"주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 소리벼리 정승구
'영성 생활 > 수필 한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힘을 다해 서로 위로합시다 (0) | 2015.01.12 |
---|---|
죽을 생각을 하고 살면 - 스데반의 순교 축일에 (0) | 2014.12.27 |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0) | 2014.11.27 |
결혼하는 벗들을 위한 기도 (1) | 2014.11.13 |
광한루에서: 춘향의 정절을 생각하며 (0) | 2014.09.25 |
'하고 싶다' (0) | 2014.09.11 |
글
우리의 영혼이 더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믿음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고, 마침내 그 믿음이 온 영혼에 스며들어 마지막엔 "이제 나는 더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보면서 경험할 뿐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Spiritual Maxims, Chapter 7)
로렌스 형제는 영적 격언의 마지막 장인 7장에서 하나님 임재 연습의 유익을 알려준다. 그 첫 번째 유익은 더욱 생생하고 역동적인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특히 부족함을 느끼는 영역에서 말이다. 자신의 결단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 자신이 부족함을 고백하는 영역에 주어지는 그 믿음은 은총이다. 그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를, 아니 하나님을 그저 바라보면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부터 있었던 사랑을 알고 답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부족한' 영역은 더 선명히 드러난다. 그 자리로, 곧 내 삶의 마굿간 구유에 주님이 오시길 기다린다. 하나님의 사랑, 그분이 오실 때, 해석하거나 믿으려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바라보면서 경험할 수 있길 소망하며 기다린다. ……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시편 46:10) /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을 향해, 또 땅을 향해 (조지 허버트) (0) | 2013.12.26 |
---|---|
왕으로 오신 예수 (안토니의 생애) (0) | 2013.12.24 |
그저 바라보면서 경험할 뿐 (하나님 임재 연습) (0) | 2013.12.15 |
심판이 아닌 완성으로 (디트리히 본회퍼) (0) | 2013.12.13 |
기다리는 즐거움 (마르틴 루터) (0) | 2013.12.09 |
크리스마스의 기적 (W.H. 오든) (0) | 2013.12.06 |
글
오직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기를 연습하고 경험하는 이들만 이 교제가 얼마나 달콤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기쁨을 얻기 위해 하나님 임재를 연습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연습을 통해 자기 위안을 추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이 끊임없는 대화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원해야 할 것입니다.
-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Second Letter)
기도의 맛과 경험은 소중하다. 많은 이들에겐 '그때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시점과 경험이 있다. 과거의 그 경험은 때론 영적 열망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현재의 영적 나태를 발견하게 만드는 하나의 기준적 경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삼고, 그 자체에 매여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만나게 된다.
로렌스 형제는 그 맛을 위해 기도하지는 말라고 권면한다. 기도 안에서 초점은 대화의 자리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현존이 우리의 기도 행위를 '대화'가 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행위 안에 하나님을 분명 모신다면, 그분이 우리의 대화를 그리고 그 모든 '나머지'를 인도하실 것이다. /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아우구스티누스) (0) | 2013.10.19 |
---|---|
"죽음아, 너는 죽으리라!" (존 던) (1) | 2013.10.09 |
당신이 원하시니 (하나님 임재 연습) (0) | 2013.09.28 |
지금의 자리를 떠남 (0) | 2013.09.24 |
기독교는 여성 해방의 선구자 (주기철) (0) | 2013.09.18 |
사막의 열매 4 : 평화와 기쁨 (컬른의 브루노/정호승) (0) | 2013.09.13 |
글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 임재 연습이란 가장 거룩하지만 동시에 매우 일상적인 영적 훈련이라고 말한다. 가장 거룩하면서도 일상적이라는 말은 모순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는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지도 가르쳐준다. 그저 매순간 자신의 마음 안에 일어나는 생각과 뜻 그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누는 것이다. 거기엔 특별한 기도 문구나 매개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소한 즐거움이나 작은 투정, 때론 넘쳐나는 기쁨이나 깊은 절망도 내 좁은 생각에 묶어 두지 않고, 그저 주님께 가져가면 그것은 거룩한 것이 된다. 그분과의 대화 안에서 우리 안의 모든 것이 거룩해질 수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혼자 감당하거나 다루려하지 않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에 그분은 언제나 즐겁게 동행해 주시며 응답해 주신다.
거룩하신 그분과의 접촉 때문에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의 평범함도 거룩함을 입게 된다. 사실 이런 낭만이 있기까지 그분은 수많은 대가를 치뤄주셨지만 (우리의 부모님처럼) 우리에겐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사랑이신 그분과 오늘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자. 더 자주 이야기해보자. /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권고 (베네딕트의 규칙서) (0) | 2013.05.21 |
---|---|
이성적인 사색보다는 경험적인 언어로서의 '기도' (0) | 2013.05.14 |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임재 연습) (0) | 2013.05.09 |
좋음 (노리치의 줄리안) (0) | 2013.05.06 |
절제와 균형 (마카리우스) (0) | 2013.04.28 |
속사람이 강해지기를 (조지 폭스) (0) | 2013.04.26 |
글
2013년 4월의 추천 고전
하나님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지음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요? 하나님은 저 하늘에 거하시나요?"
"무엇 때문에 우리가 짧은 한 순간의 경배로만 만족해야 하겠는가?" (34)
이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짧은 경배의 순간으로 끝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이들이 되물었던 질문이다. 쉬지않고 기도하며 예배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은 이 질문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소망을 키워갔다. 그러나 이 고백이 자주 드려지던 장소, 곧 예배나 기도의 처소를 벗어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일상의 자리에 발을 딛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 질문은 희미해져버린 경우가 많았다. 때론 많은 이들이 그것은 불가능한 소망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일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구별지으며 잘(?) 살아간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일상의 삶 가운데 지속해간 사람들의 낯선 이야기는 반가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것이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긴 시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일상을 통해서 도리어 더 깊이 하나님의 현존을 누린 사람에 관한 것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불만마저 생겨날지 모른다. 한 젊은 날에 꾸었던 이젠 접어둔 꿈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순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더 깊이 누리고 있는 이를 직접 만나 대화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더 나아가 그가 누구나 하나님 임재를 지속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방법이 매우 쉽고도 단순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다시금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로렌스 형제가 쓴 하나님 임재 연습이 우리 마음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기는 이유일 것이다.
로렌스 형제는 상처로 인해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된 후 파리로 가 갈멜 수도원의 평신도 수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니꼴라 에르망라는 본명 대신에 로렌스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다. 로렌스 형제가 담당했던 일은 부엌에서 요리와 설겆이를 하는 것이었고 다양한 허드렛 일이 그의 주요한 과업이 되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도리어) 그 일을 통해 더 깊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일거리들이 하나님 임재의 장애가 된 것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천상의 하나님을 더 깊이 누리는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단순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상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로렌스 형제는 이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훈련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필요한 연습은 곧 하나님의 임재 연습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동행 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발견하고, 매순간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막힘이 없이 항상 그분과 겸손하면서도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특히 유혹과 슬픔의 시간,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 시간, 그리고 불성실과 범죄의 시간에 더더욱 중요합니다." (77)
그는 하나님 임재를 위한 연습과 훈련의 길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마치 몸에 밴 습관처럼 되게 하라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 꾸준한 연습을 통해 주님을 향한 끊임없는 지향이 본성의 일부가 되도록 할 것을 권면해준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 가장 한가운데로부터 우러나오는 겸손하고도 거짓없는 사랑으로 그분을 예배해야만 합니다.) ... 우리는 그것(예배)이 우리 본성의 일부가 될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영혼과 하나가 되시고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그것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82)
"이것도 하나의 습관이기에 몸에 배기까지는 쉽지 않지만 한번 습득되고 나면 거룩한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89)
그가 이 하나님 임재의 연습을 대화와 서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몸과 삶 안에 깊이 새겨진 경험적 확신 때문이었다. 마치 관성처럼 하나님을 향한 지향과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는 잠자는 시간에도 이어졌고, 계란 프라이를 뒤집는 순간에도 지속되었다. 그는 일상의 과업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행하기를 소망했으며, 그것들을 순결한 사랑의 행위로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실천적 가이드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지향하고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그 연습의 근본적 바탕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이다. 그는 "그분을 향한 순전한 사랑만이 제 삶의 모든 원동력입니다."(48)라고 고백하였다. 일상의 과업 자체보다 하나님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항상 그를 이끌었다. 일상 가운데 종종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일상이 하나님을 찾아 살아가는 삶 자체가 되기를 소망했다. 하나님 임재를 향한 열망이 그의 삶의 모든 자리를 채웠고 그가 순전한 열망으로 일상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그의 중심에 자리잡으셨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자리는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깊이 인정하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 임재 연습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정확히 모른다. 많은 이들이 하늘 어딘가에 그분의 자리를 가정하며 그분의 임재를 가끔씩 생각한다. 그리고 지향한다. 그러나 모든 순간을 하나님 임재로 살아간 로렌스 형제는 그 하나님의 자리가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임을 알았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아주 친밀한 분으로 와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하면 된다." (26)
"그분은 늘 내 곁,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계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제게는 하나님을 향한 놀라운 경외심이 일었으며, 저는 오직 믿음으로만 만족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46)
언젠가 나의 자녀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지구의 중력 때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순간 나는 지구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생각해보게 되었고, 우주의 무한성 안에서 어디가 우주의 위이고 아래이며 오른쪽은 어디이고 왼쪽은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이 닿게 되었다. 사실 우주는 앞뒤 좌우가 없고, 위 아래가 없다. 우리가 하늘이 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경험적으로는 극히 천동설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일지 모른다. 지구 반대편 아니 지구 아래 편에서 중력에 의지하여 매달려있는 그들의 하늘은 어디이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하늘 한 편에 자리를 펼치시고 계실 하나님은 우리 좁은 사고의 하나님이실 뿐이다.
우리는 지구에 매달려 붙어있는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도 어느 하늘 한편에 계실 수 없는 분이다. 도리어 로렌스 형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찾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의 영적 여정의 모델은 등정의 사다리나 어떤 산이 아니라 이미 우리 중심 가운데 거하시는 그분을 향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로렌스 형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온전히 오신 분을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살아가면 충분하다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분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말을 걸고 들을 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이 우리 몸에 배고 나 자신의 일부가 될 때까지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이미 계신 분을 넘치도록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 임재 연습은 이미 많은 독자들의 입을 통해 추천되어 오고 있다. 필자 역시 대학시절 이 책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며 그날에 꾸었던 하나님 임재와 동행의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로렌스 형제를 다시금 영적 벗으로 맞아들이며 이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여러 독자들과 함께 귀기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서평 > 이 달의 고전 (1차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1) | 2013.08.17 |
---|---|
은둔 그리고 참여 (안토니의 생애) (0) | 2013.06.25 |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 (0) | 2013.04.30 |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다그 함마르셸드 (0) | 2013.03.17 |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2) | 2013.01.04 |
베네딕트의 규칙서 (Rule of St. Benedict) (0) | 2012.07.09 |
글
로렌스 형제는 주님이 이미 자신 안에 와 계시다는 인식 속에서 살아갔다. 그것이 그의 영적 삶의 전체이자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현존이 그가 만지고 관계맺고 경험하는 모든 일상을 거룩하게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경험했다. 미미할 수 있는 일상이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자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현존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는 그 예수님의 임재를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완전한 복종과 자아의 포기라고 알려준다. 생전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불리셨던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죄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들의 마음에 임하시기를 즐겨하신다. 로렌스 형제에게 있어서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은 스스로를 세리와 죄인과 같다고 고백하는 자아의 포기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주님으로만 더불어 먹고 마시기를 기뻐하는 마음에 주님은 임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성육신하셔서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오시고 또 가장 가난한 마음의 자리를 찾으셨던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는 이들에게 즐겨오신다. 원래 그러셨던 분이셨고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그분에게까지 올라오라고 명하시기보다 스스로 우리의 자리까지 내려오시길 선택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육신하신 주님은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내 마음에라도 충분히 내려오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렇게 하셔서 기도의 자리와 일상의 자리 사이의 경계를 파괴하시고 오늘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고자 하신다. / 작은소리찾기 박세훈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예, 장사치, 자녀(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 (0) | 2013.04.20 |
---|---|
고상한 욕망 (본회퍼의 옥중서신) (0) | 2013.04.14 |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주님 (하나님 임재 연습) (1) | 2013.04.09 |
은혜와 자선 (조나단 에드워즈) (0) | 2013.04.01 |
성령으로 시험해보라! (조지 폭스) (0) | 2013.03.31 |
은혜는 꿀벌 같이 일하신다 (마카리우스) (0) | 2013.03.28 |
글
(로렌스 형제의 글에서 이런 강한 어조를 듣게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내 그가 다른 이들을 자신이 경험하고 살아내고 있는 삶으로 간절하게 초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했으며, 그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내면을 향해 헤엄쳐 들어갔다. 모든 분주한 외적인 일들 가운데에서도 (아니 그 일들을 통하여) 더 깊이 잠영해 들어갔다. 로렌스 형제에게 있어서 영적인 삶은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자기 영혼과의 관계였다. 그리고 그분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그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뒤로 물러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우디 앨런 감독은 그의 작품 애니 홀<Annie Hall>에서 모든 관계는 상어와 같아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게 된다고 말했다. 상어는 그 아가미의 구조 때문에 전진하지 않으면 호흡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상어라는 존재의 전진은 생명과 생존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관계는 속성상 점점 더 자라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어색한 일종의 죽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영적인 삶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종의 죽어버린 관계를 화석처럼 남겨두고 있지는 않을까?
로렌스 형제는 그렇기에 생애의 죽음 이전에 이 관계의 진전을 이뤄내라고, 또 그것에 집중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더 깊은 관계로 진보하지 않는 것은 어색한 또 하나의 죽어버린 관계를 낳는 비극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로렌스 형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이라도 다시 님이 계신 내면을 향해 돌이켜야 합니다. 다시금 막힌 것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아있는 그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 작은소리찾기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분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본회퍼) (0) | 2013.03.14 |
---|---|
나는 결심한다 (조나단 에드워즈) (1) | 2013.03.06 |
죽어버린 관계 (로렌스 형제) (1) | 2013.03.05 |
쉬지 않고 기도하기 (존 웨슬리) (0) | 2013.03.01 |
훼손 되어버린 기독교의 왕관 (막데부르크의 메히트힐트) (0) | 2013.02.27 |
존 웨슬리의 영적 독서를 위한 조언 (모음) (0) | 2013.02.25 |
글
-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Fourth Conversation)
가까스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영혼에게 로렌스의 요청은 너무 거대해보인다. 기도하지 않는 시간 밖에 없는 삶에서 기도를 시작하는 삶으로, 그리고 기도가 일상에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삶에서 일상과 기도의 시간이 구별되지 않는 삶으로 바뀌어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도 경험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렌스 형제는 이런 '상당한' 기도의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 '엄청난 실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는 기도할 때나 일상에서나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언제나 그 자신을 주님 가까이 두었기 때문이다.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는 그의 의식 때문에 그의 일상과 기도의 경계는 사라지게 된다.
어쩌면 '상당한' 기도를 통해 일상의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기도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을 구별짓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는 마음가짐 안에 살아가는 것이 기도와 일상이 하나가 되는 길이라고 로렌스 형제는 이야기해 준다. / 작은소리찾기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그마한 것" _ 개암 비전 I (노리치의 줄리안) (1) | 2012.12.17 |
---|---|
위-디오시니우스와 성탄절 (0) | 2012.12.14 |
기도 외의 시간 (하나님 임재 연습) (2) | 2012.12.13 |
복수는 나의 것 (조나단 에드워즈) (1) | 2012.12.11 |
내 마음, 주님이 장사(葬事)되신 곳 (마카리우스) (2) | 2012.12.07 |
잘 먹고 잘 입는 것보다 중요한 것 (손양원) (0) | 2012.12.06 |
글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또한 자신을 죽이기를 소망하면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이야말로 진실로 안전한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 길에는 항상 빛이 있어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로렌스 형제 (Brother Lawrence of the Resurrection: c. 1614-1691),
《하나님 임재 연습》,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Third Conversation)
우리는 죽음을 부정하고 몰아내는 세상 속에 살아간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죽음은 쫓아내야 할 저주이며, 징벌을 받은 사람들의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심과 뜻을 죽이기가 어렵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다고 할 때에도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매우 어렵다. 머리로는 아는 듯 해도 순종이 내 삶에 상식처럼 되게 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저 과장법이나 비유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완전한 순종'은 지금 우리에게 거대한 믿음의 도전이 된다.
로렌스 수사는 이 거대한 도전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될 때까지 순종하면서 배워갔다.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포기와 순종의 길에는 항상 우리를 인도하는 빛이 (정말)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준다. / 작은소리찾기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We appreciate your busy-ness! (팡세) (0) | 2012.11.05 |
---|---|
영적 독서를 위한 조언 4 : 열정을 구하라 (존 웨슬리) (1) | 2012.11.03 |
완전한 순종 (하나님 임재 연습) (0) | 2012.10.31 |
영적 독서를 위한 조언 3 : 기억과 반복 (존 웨슬리) (1) | 2012.10.29 |
성령을 받는다는 것 (바질) (0) | 2012.10.26 |
이런 나라를 꿈꾼다 (길선주) (1) | 2012.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