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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푸르른 힘의 원천 (빙엔의 힐데가드)

만물의 요소들이 외쳤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지시해 주신 우리의 과제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악행을 저질러 우리를 파멸시키고 휘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악취를 풍기고 정의에 굶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푸르른 힘의 원천(viriditas)은 눈 먼 인간 무리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빙엔의 힐데가드 (Hildegard of Bingen, 1098-1179), 

The Book of the Rewards of Life, p. 125-126.


중세시대의 대표적 여성 신학자이자 신비가인 힐데가드는 살아있는 모든 만물에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푸르른 생명력, 생명의 원천이 있다고 말하며 생태신학, 혹은 생태 여성신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인간 중심, 남성 중심, 권력 중심의 삶을 추구해 온 인류에게 녹색의 푸르름을 회복하여 모든 만물, 모든 인류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온전한 세계를 추구한 것이다.


그녀가 녹색 푸르름이 말라버렸다고 한탄한 후 이제 1000여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절박하게' 모든 인류가 말라버린 녹색 생명력을 회복시키려 한다. 땅을 파고, 댐을 건설하고, 어떻게든 과학으로, 힘으로, 돈으로 그 생명의 푸르름을 회복시키려 하지만 힐데가드의 표현을 빌자면 그런 모든 노력 또한 '눈 먼 인간 무리들의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힐데가드의 주장에 따르면 이 생명력은 오직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을 통해서 살아난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모든 자연 만물과의 관계.  아직도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만물 앞에 용서를 구하는 피고인이 아닐까? 

 

"겨울은 생기를 잃지만 여름은 다시 꽃을 피웁니다. 죽은 것 같지만 겨울은 풍성한 초록이 자라게 하는 여름이 올 때까지 그 푸른 생명력을 보존합니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푸른 생명력을 보존하는 겨울을 생각하며 나 또한 소홀했던 모든 관계의 회복을 꿈꾸어 본다. 하나님과의, 사람들과의,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