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생활의 분주함과 압박은 타고난 폭력의 한 형태, 아마도 가장 흔한 형태이다. 상충하는 수많은 염려들에 스스로를 내어주고, 지나치게 많은 요구들에 항복하며, 너무 많은 계획들을 세워서 실천하고, 모든 사람을 모든 것에 있어서 도와 주기를 원하는 것은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폭력에 협조하는 것이다. 활동주의자의 광기는 …… 자신이 하는 일이 풍성한 결실을 맺지 못하도록 파괴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일을 풍성하게 하는 내적 지혜의 뿌리를 죽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1915-1968) Conjectures of a Guilty Bystander (NY, Garden City: Image, 1989), 86.
매일 저녁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아보면, 늘 여러가지 일로 분주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산책을 나가 발은 한가로이 걸어도, 마음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압박으로 늘 총총 걸음이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현대 생활이 주는 분주함과 압박은 우리 자신을 향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면의 풍요로움과 그로 인한 삶의 풍요로움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튼에 따르면 평화를 위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일한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활동'에 매여 있으면 그것은 폭력에 협조하는 것이다.
수도원의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강의에서 머튼은, "만일 우리 안에 스스로를 사적인 기획(priviate projects)으로 떠미는 자아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결코 영성 생활을 발전시킬 수가 없다"고 말한다. 신기한 것은 늘 일에 쫒겨 살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거의 날마다 새로운 기획들과 아이디어들이 끊임 없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 생각들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을 분별해서 과감히 쓰레기통에 집어 넣고, 나의 계획이 아니라 그분을 좀더 깊이 생각하는 것이 올 한 해 개인적인 영성생활의 목표이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누가복음 11장 41-42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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