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있으리라. 거룩한 기독교의 왕관이 얼마나 많이 훼손되었는가! 당신으로부터 보석들이 떨어져 나온 것은, 당신이 거룩한 기독교인의 신앙을 갉아먹고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금이 육체의 냄새 나는 웅덩이 속에서 색이 바래졌는데, 그것은 당신은 초라하며 참된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순결은 탐욕이라는 음탕한 불 가운데서 타 버렸습니다. 당신의 겸손은 당신의 육체라는 늪 속에 묻혀 있습니다. 당신의 진실함은 이 세상의 거짓말 가운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감소되어 버렸습니다.”
막데부르크의 메히트힐트 (Mechthild of Magdeburg, 1207-1282),
The Flowing Light of the Godhead, VI, 21.
12세기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여서, 오직 사회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소수의 여성들만이 수도원이나 은둔 처소 같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에 어떠한 종교적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발적인 가난과 청결과 헌신의 삶을 추구하는 전혀 새로운 여성들의 무리가 형성되는데, 이들이 이른바 ‘베긴회’(Beguines)이다. 메히트힐트는 12세에 처음 성령의 방문을 경험한 뒤에 20세에 베긴회에 들어갔다.
제도권 밖에 있었기 때문일까? 메히트힐트의 사회에 대한, 교회에 대한, 성직자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판은 제도권 안의 어떤 거센 자기성찰보다도 훨씬 더 솔직하고 가혹하고 절실하다. 그리고 탁발수도회나 베긴회와 같은 교회 개혁을 위한 다양한 소리들이 모여 이삼 백 년 후에 일어나는 종교개혁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한국에서, 미국에서, 정말 부끄러운 목사들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오히려 그들의 몸부림들은 신앙인이기를 포기하는 듯하다. 아마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해서이거나 진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겸손이 "육체라는 늪 속에 묻혀"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 한국 교회가 정말 늪에 빠져 버린 것만 같은 그런 절망이 든다. 또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우리에겐 얼마의 시간이 있어야 또 다른 종교개혁과 같은 신앙의 회복이 일어날 수 있을까? /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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