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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 달의 고전 (1차 자료)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다그 함마르셸드

<2013년 3월의 추천고전>

1961년 9월 18일 세계를 놀라게 한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 콩고 내전을 끝낼 평화협상을 중개하러 가던 유엔 사무총장의 비행기가 아프리카 밀림 상공에서 추락, 그를 포함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고/사건이었다. 사고가 아니라 암살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심증은 충분했다. 그가 이루려고 애쓰는 평화를 달가와 하지 않는 세력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증은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그 사고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있었다. 존 F 케네디가 '금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고 평했을 만큼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사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만큼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그 사무총장의 '내면세계'였다. 사고현장에서 발견된 그의 서류가방에는 그가 그 살벌한 갈등의 현장 한복판으로 가면서 들고간 두 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한 권은 <성서>였고, 다른 한 권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성직자 같은 정치인'이라고 불렸던 그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의 이름은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öld: 다그 함마슐드')다. 날마다 기도하며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는 그의 가방에서 성경이 발견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의외의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니. 현대 세계의 치열하고 복잡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유엔 사무총장의 가방에 중세 수도사의 책이라니. 성경과 더불어 발견된 책이 당대의 유명한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Reinhold Niebuhr)기독교 현실주의와 정치 문제 같은 책이었다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니. 


혹, 그 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공항 서점 같은 데서 어떻게 하다 집어 들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물증'이 있다. 바로 그가 남긴 일기장이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지인들은 뉴욕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1920년부터 죽기 며칠 전까지 그가 기록한 일기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후에 "Vägmärken(Markings)"라는 제명으로 (편집) 출판된 그의 일기는 세계 곳곳의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할 수만 있거든" 평화를 이루어내고자 분투했던 한 고귀하고 유능한 활동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그 내면세계에서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국제문제도 유엔활동도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서는 일, 즉 요즘 말로 '영성'이었다. Markings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들은 시편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저작,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20세기 중반 이후 인기(?)가 급격히 떨어진 영성고전이다. '현대인들'이―'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이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이 표방하는 영성을 (현대와 맞지 않게) 지나치게 금욕적, 수도원적, 중세적, 개인구원중심적, 도덕적, 율법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비판적(critical) 자세는 장려할 만한 태도다. 그러나 더 장려되어야할 태도는 고전을 비판적으로 '내 것 삼을'(appropriation) 줄 아는 읽기 능력이다. 함마르셸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정말 '읽었던' 사람이었다. 지인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집 침대 옆 탁자에는 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놓여 있었고, 그의 일기장이 발견된 곳도 그 탁자 위였다. 


개명한 현대에 더는 맞지 않는 수동적 태도를 장려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 중에서 함마르셀드가 그의 일기장에 인용하고 있는 한 부분이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뿌리를 박고 견고히 서 있는 이들이니, 교만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이 풍성히 받은 모든 좋은 선물을 다 하나님께로 돌리며, 따라서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한다. (II, X, 4.)


이 구절을 또박또박 옮겨쓴 뒤 함마르셸드는 여백에 "1953년 4월 7일"이라고 적어 넣었는데, 그 날짜는 바로 그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날짜였다. 


초인적 지혜와 인내, 또 용기가 요구되는 평화협상 자리에 가면서 그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가고 싶어 했던 이유를 이제 우리는 얼마간 짐작한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정말 그 일의 막중함과 어려움, 그리고 그 일에 따르는 유혹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했던 그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간절한 기도에 더욱 공감할 수 있으리라. / 산처럼







그리스도를 본받아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출판사
가이드포스트 | 2009-12-09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중세 경건 문학의 최고봉! 삶의 시간대를 초월하는 기독교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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