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내고 성질부리는 마음은 사랑으로 고삐를 삼아 제어하고, 욕심부리는 마음은 자제력으로 누그러뜨리십시오. 그리고 그대의 지성, 그 생각하는 힘에는 기도의 날개를 달아 주어 날아 오르게 하시오. 그러면 그대 마음의 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고 빛날 것입니다.
- 고백자 막시무스(Maximus the Confessor), Capita de caritate, IV, 80.
자기의 경험을 믿음의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본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우리의 감각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온전한 존재가 아니듯 우리들의 감각은 역시 불완전한 것이다. 우리의 감각은 종종 우리를 오류에 빠뜨린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자명하다. 즉, 우리는 착각하고 혼동하고 오해한다. 이점은 영적 경험 혹은 신비 체험을 다룰 때 특히 유의해야 한다.
초대 교부들을 포함한 고대의 현자들은 이미 우리 감각의 이러한 불완전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실재에 대한 바른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 진리가 우리의 의식을 비추어 주는 조명(the luminosity of consciousness)’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들은 이러한 조명을 흔히 ‘빛’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또한 막시무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빛’을 받기 위해서는 금욕적 덕과 관상적 수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어떤 욕망에 붙들려 있다면, 그리고 어떤 감정의 격동에 흔들리고 있다면, 우리의 감각은 왜곡되기 쉽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인식 능력은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덕의 수련과 관상의 생활이 깊어지고, 그 위에 ‘빛’의 조명이 임하면, 여기서 우리의 참 인식은 시작되며, 이때부터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를 진정으로 보게 될 것이다.
교부들은 이런 수덕과 관상의 생활이 바로 진정한 회개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런 삶은 다름 아니라, 자기 비움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과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모범을 따르는 삶이라고 말해 준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참된 경험으로 이끄시는 길이요, 빛이요, 등불이다. 그런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을 따라 참된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을 향해 가는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우리들이다! “영혼의 햇빛 예수여 가까이 비춰 주시고, 이 세상 구름 일어나 가리지 않게 하소서…….” 찬송이 울려 퍼진다. /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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