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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조와 (弔蛙, 개구리의 죽음을 애도함) (김교신)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죽어서 물위에 떠다님)하고 있었습니다. 혹한에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닙니다. , 전멸은 면했나 봅니다!

- 김교신 지음 (1901-1945), KIATS 엮음,《김교신》(서울: 홍성사), 174.[각주:1]



이 글은 신사참배를 강제하는 일제강점기에서도 변절하지 않는 신앙인이 남아있음을, 전멸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이 글로 인해 김교신이 발행하던 <성서조선>이 폐간당하고, 그는 일본경찰에 의해 취조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선생은 이러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민족독립정신을 일깨운 지사였다. 그렇게 세운 나라가 이 땅이요, 그렇게 피흘려 건져낸 복음이 이 땅의 기독교다. 


그런데 요즘 소위 보수적 신앙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독교는 이런 복음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일본 명치유신의 대부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과 같은 사회적 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조선 정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입을 열면 게으른 국민을 깨운 일제치하’, ‘일제 36년은 경제 번영의 기초를 세운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을 운운하며 박정희의 유신과 조국 근대화론을 옹호하고 있으며, 또한 뉴라이트의 세계관의 초석을 제공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과연 혹한을 이겨낸 개구리()는 정한론을 기다려온 생명들일까과연 민주화의 대열의 최전선에서 민족의 아픔을 같이 한 기독교는 일제강점기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을 옹호하는 그네들의기독교에 뭍혀야만 하는가어찌 이런 저속한 횡포에 어렵게 살아난 개구리가 다시 죽음에 방치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가그러나 김교신의 말처럼 아직 다 죽지 않았다!’ ‘전멸은 오지 않으리라비록 더 엄혹한 시간이 온 다 할지라도, 우리의 기독교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존재하는지를 안다면 그네들의 기독교와 다른 우리의 기독교의 생명은 꺼지지 않으리라! / 이경희 








  1. *1942년 3월호에 실린 글, ‘조와弔蛙’는 <성서조선> 폐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총독부 당국은 김교신이 이 글에서 조선인을 개구리에, 일본의 조선 지배 정책을 혹한에 비유하여 민족의 독립을 암시했다하여 김교신을 비롯하여 함석헌, 송두용 등 13명을 투옥하였고, 독자 400여 명까지도 취조하였다 (173면의 각주에서 인용).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