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없는 독서는 건조하며 독서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지기 쉽고, 나아가 묵상 없는 기도는 미지근하며 기도 없는 묵상은 결실이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정성들인 기도는 관상을 얻게 해주며, 기도 없는 관상의 선물은 드물고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 하겠습니다.
- 귀고 2세(Guigo II: ?-1188), <관상 생활에 대해 쓴 편지>,
엔조 비앙키 지음, 이연학 옮김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왜관: 분도, 2010), 154-55에서.
귀고 2세는 12세기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원장을 지낸 분이다.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베네딕트 규칙서를 엄격하게 지키기 위해 11세기에 설립된 수도회이다. 몇 년 전 개봉되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는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은 이 수도회의 일상을 다룬 것이다. 봉쇄 수도원의 깊은 침묵이 분주한 현대인들의 영적 갈망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귀고 2세가 쓴 <관상 생활에 대해 쓴 편지(The Letter on the Contemplative Life)>는 우리에게 <수도승의 사다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조 큐티(QT)라고 할 수 있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유명한 영성 고전이다. 귀고 2세는 렉시오 디비나를 네 단계, 즉 독서, 묵상, 기도, 관상으로 설명한다. 렉시오 디비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각각의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독서와 묵상이, 묵상과 기도가, 그리고 기도와 관상이 어떻게 체험적으로 흘러가는지를 알면 영성 생활에서 어느 한 요소도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빨리빨리 읽기만 하고 묵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성경은 읽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묵상은 하지 않고 기도부터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묵상만 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기도를 마음을 다해 하지 않고 해야할 일을 해치우듯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기도의 체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관상의 경험을 자신의 영적 경험에서 아예 배제시켜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영성 생활에서 이런 병증을 습관화시킨 사람들은 기도에 결코 맛들일 수 없다. 성경을 읽다가 기도로 흘러가는 것이 기독교 영성훈련의 기본이다. 위에 인용한 귀고 2세의 말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영성 훈련에 병증은 없는지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 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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