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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힘을 다해 서로 위로합시다

'哀絶陽-남근 자른 일을 슬퍼하다'는 서글픈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에 지은 것으로, 《목민심서》에는 이 시에 얽힌 사연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803년 바닷가에 사는 가난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채 사흘이 되지 않았습니다. 관아에서는 사흘박이 아이를 군포[각주:1]에 편입시키고 백성의 전 재산인 소를 빼앗아갔습니다. 악에 받힌 백성은 칼을 시퍼렇게 갈아 방으로 뛰어 들어 스스로 자신의 양근을 잘라버렸습니다. 다산은 “칼을 갈아 방으로 가 피가 자리 가득하니 자식 낳아 곤액 당함 한스러워 그랬다오.”라며 백성의 마음을 시에서 묘사했습니다.

"자식 낳아 곤액[각주:2]당함 한스러워 그랬다오."라고 울부짖는 바닷가의 한 백성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시대’ 청춘들의 우울함은 어딘가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덧 이런 아픔이 역사라는 긴 시간을 거쳐, 전 세계라는 오늘의 공간에서 온 인류가 함께 공유하는 정서가 된 것 같습니다. 깊은 상실감, 무기력과 슬픔, 그 아래 가장 막강한 힘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분노’로 여겨집니다. 이제는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어떤 명분도 없이, 또 원인점도 점차 모호해지면서, ‘분노’만이 오고가는 것 같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들리는 폭력의 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원인이 어떻게 되었든, 타인에게 가하는 ‘무엇’은 결국 내 스스로에게 가하는 ‘무엇’입니다. 인간은 나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 전체’로서 존재합니다. 이 ‘무엇’의 자리에 ‘분노, 억압, 폭력’ 같은 말을 넣어 보면 이렇게 표현됩니다. 타인에게 분노하는 것은 나에게 분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해, 자살입니다. 좀 착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가하는 과정을 생략할 뿐입니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자멸입니다. 대단히 슬픈 일이지요.

스스로 자해하고 죽음 충동에 시달리는 이 아픈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상처투성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픈 애 세워놓고 이거 잘못했다, 저거 잘못했다, 이렇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아픈 모두를 꽉 안고 위로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부터도 위로다운 위로를 받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지적받은 것은, 부끄러웠던 것은, 기억에서 파내고 싶게 혼난 것은 기억이 생생한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로가 뭔지, 또 위로하는 법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기로 해요. 주님께 먼저 위로를 받고, 주님께서 나를 위로하시는 그 방법을 가슴깊이 새겨, 그 깊이에서 위로해 주었으면 합니다.

위로가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지 마세요. 《영신수련》 넷째 주간 부활관상의 들머리에는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위로의 임무를 행하시는 것을 생각하는데, 친구들은 보통 서로 어떻게 위로하는지와 비교해 본다.”(224번)라는 기도 지침이 나옵니다.  ‘위로’는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무이시며, 특히 친구 사이에 오고가는 깊은 ‘위로’는 그 사역의 확장입니다. 위로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랍니다.

또한 《영신수련》에서는 주님께서 주시는 이런 위로를 ‘영적 위로’라고 표현합니다. “마음에 어떤 감동이 일어나며 영혼이 창조주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그 자체로서만 사랑할 수가 없고 그 모든 것을 창조주 안에서 사랑하게 되는 때를 말한다. 또한 자기 죄나 우리 주 그리스도의 수난의 아픔이나 직접 하나님을 위한 봉사와 찬미와 관련된 다른 일들에서 오는 고통 때문에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끄는 눈물이 쏟아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믿음, 희망, 사랑을 키우는 모든 것과 창조주 주님 안에서 영혼을 침잠시키고 평온하게 하면서 천상적인 것으로 부르고 영혼의 구원으로 이끄는 모든 내적인 기쁨을 위로라고 한다.”(316번) ‘위로’를 통해 우리 온 존재는, 이 세상은 새롭게 변화됩니다. 화해와 치유의 눈물이 흐르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채워지고, 하나님 안에서 고요히 평화롭게 자기 자리를 잡게 됩니다. 무엇보다  기쁨이 솟아납니다.

‘너와 나’가 하나이며, ‘우리와 하나님’은 하나예요. 위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도록 우리를 일깨워줍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들어차 있음을,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본시 하나인 것을 둘로 나누려고 하지 마세요. 너무 슬프게 하고 너무 아프게 하고 너무 화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힘을 다해 위로하고,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존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저의 소망입니다. / 주선영

  1. 군포(軍布) : 조선 시대에, 남자들의 병역을 면제하여 주는 대신으로 받아들이던 베 또는 재물. [본문으로]
  2. 곤액(困厄) : 몹시 딱하고 어려운 사정과 재앙이 겹친 불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