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지도'를 받는 '피지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참으로 긴장이 많은 사람이었다. 면담실 긴 복도를 걸어갈 때 올라오는 긴장감, 가슴이 두근거리다가 터질 것 같은 그 느낌을 인지하는 것이 30일 피정 내내 큰 과제 중의 하나였다. 그 후에도 일상에서의 삶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받는 영성지도 면담을 앞두고 우황청심환을 먹은 적도 있으니, 돌이켜 보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영신수련의 특징이자, 나의 경험상 어려운 부분이 일대일 면담이다. 대다수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수련' 자체의 어려움과 '일대일 면담' 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영적 여정을 심도 있게 걸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 때가 아닐 수도 있고, 또 영성지도자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경험상,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한 투사일 가능성이 많다. 나는 하나님과 나, 우리와 나를 분리하여, '나'란 개체성에 참으로 목을 매는 분리의 망상으로 뭉쳐진 덩어리였다. 그래서 끝없는 긴장, 자기방어, 자기투사, 보복-되갚기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 즉 분리 의식에 철저히 갇혀 있었다. 자기를 중심으로한 분리 의식으로부터, 하나님과의 합일 의식으로 나아가는 것, 나는 그것을 영적 여정의 목표로 알아듣고 있다.
사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이렇게 딱딱한 톤은 아니다.
이렇게 '피지도자'로서 면담을 직면하는 것조차 어려운 '새심장'인 나를 '영성지도자'로 맞아 주고 자신들의 여정에 함께 하도록 길을 내준 참으로 고마운 벗들이 내겐 선물로 주어졌다. 오늘의 나는 이 벗들에 의해 태어났다. 이 벗들 중에 상당수가 올해 결혼을 했다. 결혼식 기도를 부탁받기도 했지만, 예식이란 것은 격식으로 챙겨야 할 관계적 수순이 있기에 사양해 왔다. 그저 벗들의 결혼에 살라주고 싶은 성서 구절을 기도로 삼아 홀로 앉는다. 2010년에 써 놓은 "시편 23편: 결혼을 위한 기도문"을 마음으로 깊게 품으면서.
결혼은 하나님, 우리와 나의 합일을 이뤄가는 수련의 장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낭만적 이름으로 가면을 쓴 채, 자기 존재의 허기와 결핍, 욕망을 채우는 가장 무도회가 아니다. 결혼은 자기를 내어줌으로 참 자기를 얻어가는 자기-수행의 장이다. 예를 들어, 집을 장만하는 문제,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문제, 우리 집의 중요한 가치 체계를 세워가는 문제, 의사 표현 방식과 결정 방식에 이르기까지, 결혼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자기라는 분리 의식에서 하나님과의 합일 의식으로 깨어나기 위해 과제로 주어졌다.
결혼이라는 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개체성과 구체성을 향하여 움직이는 자기를 벗어나 보편성과 추상성으로 상징되는 영이신 하나님을 끊임 없이 선택하는 수련을 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것이다. 영신수련에서 이냐시오가 들려주는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이 모든 것에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 주 하나님께 대한 더 큰 찬미와 영광, 그 밖의 다른 아무것도 원하거나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무릇 자기 사랑과 자기 의지와 이권에서 벗어날수록 모든 영적인 일에서 더 진보한다는 것을 생각하라"(《영신수련》189번). 하나님을 추구할 때, 즉 하나님을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순간이다. 비상하고 신비한 것, 언젠가 일어나는 먼 미래의 것이 아니다. 생활이라 불리우는 우리들의 결혼에서 경험되는 거룩한 선물이다.
이 수행의 길을 시작하는 벗들을 위해, 또 결혼 생활에서 힘과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들을 위해, 겨울을 재촉하는 매서운 바람이 윙윙 부는 깊은 밤에 홀로 기도 한 자락 올려본다.
여호와께서는 오늘 부부가 되는 신랑과 신부의 목자가 되시오니 이들의 결혼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둘의 여생을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이들의 삶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남편은 아내의 푸른 풀밭이 되게 하시고, 아내는 남편에게 쉴 만한 물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둘의 영혼을, 이 둘의 마음을 주께서 늘 새롭게 소생시켜 주옵시고,
이들의 결혼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생활’이 되게 하옵소서.
때때로 이들이 인생의 골짜기를 걷게 되는 경우라도,
구름 뒤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태양 같은 하나님의 현존을 기억하게 하시고
세상에서의 실패와 상처 받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랑으로 서게 하옵소서.
주님의 지팡이는 이들이 결정해야 할 무수한 선택에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막대기는 이들이 함께 걸어갈 믿음의 여정을 든든하게 감싸 주십시오.
이들의 결혼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셨으니,
신랑과 신부가 하나되는 이 결혼의 잔이 차고 흘러 넘치게 하시되,
이들을 낳으시고 키우신 양가 부모님과 함께 자란 형제와 일가친척과 축하하기 위해 모인 하객들을 넘어
온 세상 모든 만물들에게까지 사랑의 띠로 묶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이들에게는 지혜로운 자녀와, 나누어 줄 수 있는 넉넉한 재물과, 겸손하게 섬길 수 있는 건강을 주옵소서.
이들의 순간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들의 평생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머물게 하옵시고
이들과 이들의 자손들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하옵소서.
이 결혼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오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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