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태풍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간 것 같다. 약간 멍하고, 졸음 때문에 무거운 눈꺼풀을 껌벅이면서 책상 앞에 앉아있다. 흐트러진 감각을 옷매무새 정리하듯 가다듬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일상의 삶에서 침묵기도를 뿌리내리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고군분투한다. 잠을 근간으로 하는 몸 상태, 결혼과 육아의 살림살이, 교회의 일반사역과 영적지도 사역, 개인 공부, 기타 사회활동 등의 요소 속에 하루 1시간 이상의 침묵기도와 성찰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기가 쉽지 않았다. 도반들의 경우를 살펴봐도 9-10개월짜리 일상에서의 영신수련이라고 일컫는 ‘19번 피정’을 어떻게 해냈을까 싶을 만큼, 매일매일 침묵기도를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교회의 영성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역자들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 중에만 잠깐하고 일상에서 흐려지고 멈춰지는 것. 이 좋은 것을 왜 지속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도 좌충우돌이지만 더 흔들렸던 어제의 날들을 돌이켜보면, 명백해지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아빌라의 테레사의 “묵상은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이란 명언에 잘 나타난다. 침묵기도는 ‘해야 한다’는 당위의식과는 상극인 것 같다. ‘해야 한다’는 가치관에 이끌린 노예의식은 침묵기도가 펼쳐주는 세상과는 충돌한다. 침묵기도는 철저히 자발적 ‘사랑’과 관련된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곳은 ‘하고 싶다’는 내적인 갈망에 충실한 자발적인 선택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곳이다. 그만치 긴장과는 거리가 멀다. 유연하고 자유롭다. 오직 사랑의 논리에 관해서만 철저하다.
따라서 침묵기도를 일상의 삶에 잘 녹여내려면, 하나님을 향해 ‘해야만 하는’ 행위를 넘어서 ‘하고 싶은’ 마음에 아주 깊은 진솔함으로 주목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매일의 기도 실천과 관련하여, 저녁과 아침을 이렇게 보내면 어떨까 싶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영신수련》에서 “잠자리에 든 후 자고자할 때 바로 성모송 한 번 할 사이에, 몇 시에 일어나야 하며 무엇 때문에 일어나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수련을 요약한다.”(73번)고 조언한다. 이 말을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 잠자기 전에 내일 기도할 성경, 기도할 주제, 이 기도를 통해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 등을 미리 읽고, 혹은 생각해 놓고 잔다. 두세 번 읽고 줄거리나 구절, 영적인 갈망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식이 잠에서 깨어나는 그 사이에, 자신의 영적인 갈망을 기억한다. 머리 속에 불어 넣는 매일의 첫 생각이 이것이면 참 좋겠다. 아마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함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싶은 그 비슷한 갈망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그 갈망의 상징이기도 하고, 그 갈망이 구현되는 첫 자리이기도 한 침묵기도의 자리로 구체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좋겠다. ‘하고 싶은’ 마음에 주목하면서, 가장 최적의 시간과 공간으로 주님의 인도를 받아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꽉 들어차 있고 매일의 기도 시간도 자기 주도적으로 배정되어 있어서, 주님께 뭔가를 떼어 드려야 하는 느낌이 드는 삶을 벗어나보자. 우리 중에 한가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다들 너무 바쁘다. 이렇게 삶이 바빠 시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에 어떻게 기도 시간을 따로 내겠는가? 이기심 많은 인간에겐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예, 시·공간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확 바꿔보는 것이다. 우리보다 우리와의 사귐을 더욱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주님께 주도권을 아예 내 드리는 것이다. 전부를 다 드리고 우리는 단지, ‘하고 싶은’ 마음을 더욱 깊게 확인하고, 그 마음 앞에 정직해 지는 것이다. 하여, ‘하고 싶다’는 끌림 그 자체도, 하지 않으면 찝찝해서 못 견디는 양치질처럼 완전한 일상이 되는 그런 날이 될 때까지, 언제나 다시 시작하면 될 터이다. 아직까진 ‘하고 싶음’이 분명하니까. 자,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 / 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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