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삑삑삑 현관문이 열리고 “학교 다녀왔습니다”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가방이 휙 던져집니다. 현관 앞에 나가보면, 가방 주인은 벌써 사라졌고 거꾸로 쳐박힌 책가방과 신주머니만 뒹굴고 있습니다. 저녁밥 때가 다 되어 돌아온 가방주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 범벅에 땀내가 진동합니다. 한마디로 때 구정물이 쪼르르 흐릅니다. 할머니의 성화에 마지못해 씻고 머리 말리고 자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어느새 보면 맨바닥에 곯아떨어져 있습니다. 그러기를 며칠하더니, 머리를 북북 긁어댑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릿니가 생겼습니다.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머리를 꼼꼼히 감기고, 헤어드라이기로 말리고, 참빗질을 곱게 해 머릿니를 잡아줬습니다. 깨끗이 씻은 몸에서, 곱게 빛은 머리칼에서 차르르 윤기가 돕니다.
박수근 「모자(母子)」
문득, ‘철없는 아이를 두고 멀고 먼 길을, 어쩌면 돌아오기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면, 마지막 남은 시간 무엇을 할까? 엄마인 나는, 씻고 먹는데 아직도 애 태우는 어린 막내에게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오늘처럼 손수 정성스럽게 머리를 감기고 목욕을 시키면서 이렇게 말할 거예요. “엄마 없는 동안, 잘 씻어라. 엄마 없는 티 내지 말고, 머리 잘 감고 목욕 잘해.” 그리고 막 지은 따끈한 밥을 먹일 겁니다. 반찬 하나하나 올려주면서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귀찮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노느라고 밥 때 놓치지 말고, 밥 꼭 잘 챙겨 먹고 다녀.”
예수님 마음도 이런 마음이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학생만 되도 샴푸값 아깝게 씻어대고, 냉장고 문이 닳을 새라 챙겨먹는데, 아직 초등학생이라 ‘씻어라 먹어라’ 챙겨줘야 되는, 그런 앞뒤 모르는 제자들을 두고 가셔야 하니, 그렇게 손수 씻어주셨고, 손수 먹여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나를 위해 사람이 되신 주님께 대한 내적인식을 청하는데 이로써 그분을 더 사랑하고 더 잘 따르려는 것이다.” (영신수련 104번)로 기도의 첫문을 열어놓고 묵상으로 붙잡고 있었던 세족과 마지막 만찬의 주님 마음은 ‘엄마 마음’ 같았습니다. 그것이 몸이든, 영혼이든, 하나님과의 관계든, 사람과의 관계든. ‘잘 씻고 잘 먹고 다녀라’하시는, 또 서로서로 돌아보면서 다들 ‘잘 씻고 잘 먹고 다니는지’ 살펴 주기를 바라시는 그런, 엄마 마음이요.
저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러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엄마 마음’이 서글픈 세상살이에 지쳐 자꾸 후미진 구석으로 물러나려는 우리를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었으면 합니다. 그 따뜻한 기운으로 모두가 다시 한번,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엄마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하루, 잘 씻고 잘 챙겨 먹고 다니세요! 다른 사람들도 좀 챙겨주시고요.” / 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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