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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내 어린 시절 그리움이 말을 걸어올 때

친구야!


여름을 알리는 빗소리가 반가운 이른 아침, 오늘따라 네가 참 보고 싶다. 지난 번 너를 보려고 어려운 길을 찾아간 날, 짧게 얼굴만 마주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과 그때 하지 못한 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빗소리에 취해 글을 불러내는구나


, 이번 달에 세 번에 걸쳐서 비슷한 꿈을 꾸었다. 아빠에 관한 것이야. ‘아빠가 내 삶에 던지는 화두가 무엇인지는 너도 익히 알고 있지? 그 꿈에 내가 어릴 적 참 많이 좋아하던 동화 속 인물 키다리 아저씨같은 사람이 등장했어. 나는 어둠 속에서 밝은 쪽을 향해 계단을 통통통 올라가고 있었는데, ‘키다리 아저씨가 내 목덜미를 휙 낙아 채더니, 나를 꽉 안아주었어. 다리가 들려 동동 안겨있는 그 품이 얼마나 크고 깊던지……. 꿈인데도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무척 좋아지더라. 그때, 어둠 속에서 이 아저씨가 조용히 묻더라. “아빠를 보면,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니?” 이 질문이 내 마음의 바다, 그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던 한 소리를 끌어 올리더라


그리웠어요!” 


마음과 마음이 깊게 부딪혀 있는 느낌에서 솟아난 말. 꿈에서라야, 아니 꿈이기 때문에 비로소 뱉어낸 말. 이 한마디를 뱉어내곤, 그 품에서 엉엉 울었다. 내 삶에 지는 꽃잎처럼 흩뿌려진, 아쉬움, 회한, 원망, 미움, …… 그 모든 것 뒤에 숨은 말은, 사실 “그리움이었어. ()으로 응어리진 그리움. 기회가 주어져도 이젠, 다시 그때처럼얻을 수 없는 내 유년기의 상실에 관한 것, 그 블랙홀에서 올라오는 그리움. 그 기운이 때때로 불시에 말을 걸 때가 있는데, 이번처럼 노골적인 것은 첨인 듯싶다. 자랑할 훈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닌 척 할 필요도 없는, 나의 자화상. 그래서 친구야. 그 뻥 뚫린 가슴을 지닌 채 하나님 앞에 좀 오래 앉아 있었다. 좀 오래도록……. 예전과 달리, 요즘엔 라는 질문도 없어졌어. 그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있는데, 그냥 알 수 없이 따뜻해진다. 앉은 자리에서 사람 냄새 폴폴 나는 것이, ‘앉은자리 꽃자리라는 시 한 구절도 생각나고. 참 많이 편해졌다. 늙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어.


영신수련에 담긴 기도 하나가 생각난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 아직도 내게서 생명을 거두지 아니하셨음을 깊이 생각하는 자비하심의 담화기도(《영신수련》, 61). 삶은 늘 깨우쳐지기를 기다리는 신비라는 것. 그리고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그 신비’ 속으로 우리가 매일매일 초대받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 그래서 다음엔, 삶이 내게 무슨 말을 걸어올까, 설레움으로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일이 있으면 왜, 네 생각이 나는지……. 그리고 이렇게 내 마음을 보여줄 네가 있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가 있어 고마운, 너의 친밀한 벗으로부터.


/ 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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