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속에서 한숨과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고통의 무게감 때문에 다리가 휘청이고 무릎을 땅에 꿇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하게 될까? 특히, 그 고통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어쩔 수 없이 꼭 따라 붙는 그림자와 같다면, 나와 당신을 위해 고통을 포기하고 도망치자고 해야 할까? 아니면, 힘내라고, 할 수 있다고, 함께 가자고, 도와 주겠노라고, 나도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자고, 힘을 보태고 격려하게 될까? 아니면, 고통당하는 그를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 그를 떠나버리게 될까? 《영신수련》 첫 페이지에 실린 오래된 기도문 "Anima Christi"[그리스도의 영혼은]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를 강하게 하소서" 라고.
그리스도의 영혼은 (Anima Christi)
그리스도의 영혼은 저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구하소서.
그리스도의 성혈은 저를 취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물은 저를 씻어 주소서.
Diego Velazquez,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1632)의 부분
평상시에는 주님과의 관계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어서, 제대로 살고 있기나 한 건지 긴가민가 할 때가 많다. 싸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열렬하지도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딱히 뭐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혼자 쓸쓸히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을 떠올려 보면, 그리고 제자들이 떠나간 깜깜한 밤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다 마침내 십자가 길을 처참히 걸으시는 주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믿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주님을 혼자 내버려 둘 수 없고, 주님 곁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고, 주님께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강한 갈망과 용기가 솟아 오른다.
"저는 다른 제자들처럼 주님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저라도, 저만이라도 그 곁에 머물러 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거 상관없어요. 저는 주님을 못 떠나요. 안 떠나요."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던 한 벗의 고백을 들었을때, "Anima Christi"의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를 강하게 하소서(저에게 힘을 주소서)"가 배경 음악처럼 들려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이 우리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또 하나의 사랑을 강하게 깨워내는 것이리라.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땅을 따뜻한 봄볕이 부드럽게 녹여내고 새순을 틔워내는 것처럼.
다음 주면 고난주일이다. "그리스도의 영혼은(Anima Christi)"을 벗 삼아, 주님의 수난에 머물러 봐야겠다. 특히, 수난의 현장에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삶이 구체적으로 발견되길 청하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우리를 강하게 하소서!"
/ 해'맑은우리 주선영
- 작자 미상, "그리스도의 영혼은" 중에서, 로욜라의 이냐시오 지음, 정한채 옮김 ,《영신수련》, 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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