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대입을 앞에 두고 모든 것이 치밀하고 긴박하게 움직여 가는 고등학교 학사 일정, 거기서 뭍어나는 내신 경쟁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성적 일등이 아니고선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참으로 굴욕적이고 비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들의 소중한 아이들이 단지 성적 때문에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귀한 존엄성을 평가 절하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 모의 고사를 마치고 “엄마, 이 학교에서 진짜 어렵겠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괜찮아. 대한민국 교육과정 시간표에 맞출 필요 없어. 하나님의 시간, 성령의 시간에 맞추자. 잘 될 거야.” 순간, 노르위치 줄리안의 “All shall be well.”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세계의 종말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던 중세, 줄리안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모성적 자비심이 절망에 빠진 중세를 어루만지며 치유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성령의 기운이 아닐까 싶다.
미세 먼지 탓에 봄기운을 느낄 새가 없다. 하늘은 뿌옇고 입안에는 먼지 맛이 돈다. 작년 4월, 바다가 우리 아이들을 삼키던 그날도 하늘엔 먼지가 많았다. 피곤하다고 투정하는 둘째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던 그날, 먼지가 많고 벌겋게 뿌연 하늘이 눈에 들어 왔다. 이런 하늘을 보고 자란 우리 아이들의 마음색도 이렇게 뿌옇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때 아줌마의 쓸데없는 잔걱정을 비웃듯이 새 몇 마리가 그 뿌연 하늘을 씩씩하게 재잘대며 가로질렀다. 그 녀석들이 더욱 힘차게 보인 것은, 그 녀석들에게 참으로 믿음이 간 것은, 하늘이 유달리 흐렸기 때문일 것이다.
단정한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는 큰 아이의 몸에서는 여고생의 웃음소리와 싱그러움이 감추어지지 않는다. 내 딸도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날이 가까이 다가온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용서를 구하고 싶고, 깊이 머리 숙여 참회하고 싶다. 오늘 일기장엔 이렇게 쓴다. "그날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큰 슬픔이 올라온다. 용서를 구하고 싶고……. 참회하고 싶다." / 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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