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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생활/시 한 송이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_ 김준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_ 김준태



1980년 7월31일 

저물어가는 오후 5시 

동녘 하늘 뭉게구름 위에 

그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앉아 계시는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몸이 아파 술을 먹지 못하고 

대신 콜라로나 목을 축이면서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나는 정말 하느님을 느꼈다


1980년 7월 31일 오후 5시 

뭉게구름 위에 앉아 계시는 

내게 충만되어 오신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그런 뒤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었고 

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좋아졌다 

내 몸뚱이가 능금처럼 붉어지고 

사람들이 이쁘고 환장하게 좋았다 

이 숨길 수 없는 환희의 순간 

세상 사람들 누구나를 보듬고 

첫날밤처럼 씩씩거려 주고 싶어졌다 

아아 나는 절망하지 않으련다 

아아 나는 미워하거나 울어버리거나 

넋마저 놓고 헤매이지 않으련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라면 피라미 

한 마리라도 소중히 여기련다 

아아 나는 숨을 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하찮은 물건이라도 

입맞추고 입맞추고 또 입맞추고 살아가리라 

사랑에 천번 만번 미치고 열두번 둔갑하여서 

이 세상의 똥구멍까지 입맞추리라 

사랑에 어질병이 들도록 입맞추리라 

아아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시도 하느님처럼 저절로 날아와야 쓰여진다"는 이 분, 정말 하느님을 보신 듯.


읽다가 마시고 있던 커피를 쏟고 말았는데, 글에 멱살이 잡혀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경험, 참 오랜 만이다. 


/ 이종태






철학의 헌정

저자
김상봉 지음
출판사
| 2015-05-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5ㆍ18의 뜻을 ‘철학적’으로 드러내려 한 첫 단행본 연구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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