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집 안을 탐험하는 아이 (나니아 영성 이야기 1)

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2020. 4. 24. 21:33

커다란 집 안을 탐험하는 아이

나니아 영성 이야기 1




"많은 것이 보는 눈에 달려 있다"


루이스는 세상이 달리 보이게 만들어주는 작가입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사후 60여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의 글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글을 읽고, 또 글을 쓰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것 때문이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세상이 달리 보이는 체험을 선물로 받고, 또 선물로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우리더러 '달라지라'고 (닦달)하는 소리들로 가득합니다. 너가 달라져야 성공할 수 있다, 너가 달라져야 행복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겠다고들 말합니다. 


서점에 가보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심지어 교회 강단에서도 그런 말들이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우리를 달라지게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잠깐 뭔가를 결심하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그런 결심은 오래가지도 못하고,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합니다. 우리를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만들어주는 건 '결심'이 아니라 '회심'이기 때문입니다. 회심(回心), 마음의 근본적 변화, 말입니다. 


사람은, 세상이 달리보일 때 비로소 마음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 것입니다. 성경은 자주 구원을 우리의 눈이 뜨이게 되는 것에 비유합니다. 닫혔던 눈이 열리는 것, 그래서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회심을 통해 구원을 경험하게 된 어떤 이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Was blind, but now I see. 전에는 보지 못했으나 이제는 본다는 것이지요. 


루이스는 '보는 눈'을 강조한 작가였습니다. "많은 것이 보는 눈에 달려 있다"(Much depends on the seeing eye)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다른 이들이 쓴 글들이,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는 "다른 이들의 눈을 통해서도 [세상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될 때 우리의 세계는 커집니다. 특별히,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이의 글은 우리를 더 큰 세계 안으로 이끌어 들이고, 우리로 그 안에서 성장하게 해줍니다. 


제게는 루이스의 글이 그런 더 큰 세상을 보게 해주는 눈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지면에 얼마간 연재될 저의 글은 그 눈으로 보게 된 세상에 대한 저의 간략한 탐험기입니다. 


커다란 집 안을 탐험하는 아이


기억하십니까? 「사자, 마녀, 옷장」에서 그 페벤시 가(家) 아이들이 한동안 머물렀던 한 노(老) 교수의 집은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저택이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장소들로 가득"한 그 집 안을 탐험하다 루시는 "커다란 옷장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을 발견하게 되고, 그 옷장 안에 들어가 보았다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거대한 모험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게 되지요. 


루이스에게 세계는 바로 그런 "생각지 못한 장소들로 가득"한 커다란 집과 같은 곳이고, 저와 여러분은 그 집안 곳곳을 탐험하는 아이가 되라는 초대를 받은 존재들입니다.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마 18:3)라는 초대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어린 아이에게는 세계는 집과 같습니다. 텅 빈 공간이 아닙니다. 가득한 장소입니다. 엄마가 있고, 규칙이 있고, 친한 동물이 있고, 놀 것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루이스가 우리로 상상해보게 하는 집은 아주 거대한 집,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집, 많은 비밀의 방들이 있는 집입니다. 그 나니아 작가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우주가 바로 그런 집이라는 것입니다. 집 우(宇), 집 주(宙), 우주(宇宙)라는 집, 말입니다. 


이런 우주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기를 초대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니아 연대기」입니다. 나니아 이야기는 모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모험은 아슬란이라는 무시무시하도록 선한 존재가 다스리는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모험입니다. 나니아라는 우주, 집 안 탐험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집에서만 모험할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난 사람, 집이 없는 사람은 모험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칠 뿐, 자기 몸을 산 제물로 바치는 모험은 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이 있고, 그 땅을 믿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창 12: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이 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24:1).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 아래 땅에서만 모험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용기 있게 길을 떠나, 태초부터 이어지는 모험 이야기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태초의 말씀과 종말의 노래를 확신하는 사람만이 태초와 종말 사이를 이어주는 이야기들을 믿고, 전하고, 짓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루이스가 지은 이야기 「나니아 연대기」는 우리로 태초에 있었던 말씀과 종말에 있을 노래를 듣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뜻 있는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성경 이야기를 닮은 이야기이고, 그래서 그렇게 우리를 ‘구원’해주는, 다시 말해 우리를 나 자신이라는 좁은 곳에서 꺼내 하나님의 세계라는 “넓은 곳”(시 18:19)으로 데려가주는 힘을 가졌습니다. 나니아 이야기의 마력으로 눈을 떠 보게 되는 세계는 얼마나 아득하고 까마득한 신비인지요(天地玄黃 宇宙洪荒)!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세계, "생각지 못한 장소들로 가득"한 세계입니다. 이 세계의 창조자인 아슬란을 두고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었던 루시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위험하지요. 하지만 선한 분이세요.“나니아 이야기가 보여주는 믿음의 삶이란 이 위험(危險)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안에서 탐험(探險)하고 모험(冒險)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삶입니다. 커다란 집 안을 탐험하며 비밀의 방 옷장을 열어보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부활 생명의 삶은 결코 소심하거나 무거운 삶이 아닙니다. 이는 기대 넘치는 모험의 삶, 어린아이처럼 늘 하나님께 ‘다음은 또 뭐죠, 아빠?’라고 묻는 삶입니다.”(롬 8:15 메시지성경)


이종태, <빛과 소금> 2020.3월호







posted by 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