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셨을 때에 당신은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죄가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의 간절한 요청은 하나님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그저 자기애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요청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매우 매정한 일입니까? 1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설교: 죄인들의 징벌에서의 하나님의 공의(The Justice of God in the Damnation of Sinners) 중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목사요,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한 설교에서 우리의 기도나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인식이 '자기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를 지적하고 있다. 이것을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에 우리가 외면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의 허물을 비로소 알아 차리고 하나님께 사랑과 자비를 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거부하신다면, 그 하나님을 우리가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의 밑바탕에는 우리 자신이 완전한 죄인이라는 인식이 있어야지만 그리스도의 구원을 온전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신학적인 함의가 있다.
단지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죄의식이 아니라 나는 멸망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철저한 '자기부정'이 구원의 출발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기도에서 말하는 '죄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고백이 철저한 자기부정의 인식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구원을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오는 '의식적 문구'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자기부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어느 정도의 자기부정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이것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답은 이러하지 않을까? '하나님께 자비를 달라고 요청할 때 우리를 외면하시더라도 우리 자신을 돌아 볼 때 그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정도의 자기부정이 필요하다'라고 말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신앙의 고백들 혹은 간구의 기도가 과연 얼마나 자기부정의 토대 위에 있나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나는 오늘 어떤 기도를 하여야 할까? / 빛으로질주
- "Was it no crime for you to refuse to hear when God called? And yet is it now very hard that God does not hear your earnest calls, and that though your calling on God be not from any respect to him, but merely from self-lov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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