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덕을 위해서 갈망들을 포기하지 못합니까? 천국을 물려받게 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소유하려는 갈망을 품지 맙시다. 우리가 가져가지 못하는 이런 것들을 소유할 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들, 이를 테면, 사려깊음, 정의, 절제, 용기, 이해, 사랑, 가난한 자들을 위한 관심,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성내지 않음, 친절 등을 소유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 《성 안토니의 생애》(The Life of Antony),
안미란 옮김 (서울: 은성출판사, 1993), 17장.
'소유'와 '비워 냄'은 모든 구도자들의 오래된 숙제이다. 인간을 '불 덩어리'(히/에쉬)로 정의한 히브리 문학의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인간의 '욕망'은 불 이상의 화력을 품어내며 세상을 삼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안토니(Antony)는 '소유하려는 욕망' 자체를 거부한다. 물질의 소유를 다 버린 그가 광야를 찾은 이유 역시 마음의 소유까지 다 버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는 곧 문장을 바꿔 '차라리' 소유하라 한다. 대신 '천국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을 소유하라 한다.
물론 천국에까지 가져갈 '소유해서 유익한 마땅한 것들'도 안토니가 제자들에게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겠지만, 필자는 갑자기 '무소유'에서 '소유'로 화두를 바꾼 안토니(Antony)의 의중이 궁금해진다. 왜 더 강하게 '소유하려는 갈망 자체를 품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왜 갑작스럽게 '차라지 가져갈 것이면…….' 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마치 기다리다 지친 부모처럼, 마치 어루고 달래다 지친 선생님처럼 '차라리'라고 말하며며 '독자들'의 수준으로 말을 맺는 것인가? 왜?
어렵다. 자기비움. 어렵다. 자기부인, 그리고 자기포기. 마치 이천 년 전에 '안토니'가 내 마음을 뚫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차라리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이나 주워 담아라' '차라리…….' / 나무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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