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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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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의 변증법 “갈망의 변증법”《순례자의 귀향》 The Pilgrim's RegressC. S. 루이스 지음 ·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3 단평 "한번은 그리피스와 바필드가 내 방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데, 내가 얼결에 철학을 "학과(subject)"라고 지칭했다. 그러자 바필드가 말했다, '플라톤에게 철학은 학과(연구주제)가 아니었지. 삶의 방식(a way of life)이었지.'" 루이스의 회심기《예기치 않은 기쁨》에 나오는 장면이다(p. 323). 그 때 자기 말이 "경솔했"다고 말하는 루이스는 실은 평생에 걸쳐 더없이 진지한 철학도였다. 루이스에게 철학은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 구도(求道)였고, 그 구도의 길 끝에서 그는 '참 철학'(True Philosophy)으로서의 기독교를 만났다. 루이스는 자신의 ..
사랑의 긴박한 갈망 (십자가의 요한) 어느 어두운 밤, 사랑의 긴박한 갈망에 불타서 ―아, 그 순전한 은혜여!― 나는 눈에 띄지 않게 밖으로 나갔다. 집안은 이제 모두 잠들었으므로…… 십자가의 요한(John of the Cross: 1541-1591), 《영혼의 어두운 밤》, Selected Writings, ed. Kieran Kavanaugh, (New York: Paulist, 1978). 162. 갈급함에 목말라 밤을 새며 부르짖을 때가 있었다. 밤새껏 부르짖고 나면 '무언가 통쾌하고 내 할 것 다한 것 같고, 이젠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무슨 답답한 문제나 어려울 때에 난 여전히 부르짖는다. 그런데 계속 반복해서 부르짖다 보면, 나에게 하나님은 내가 급할 때에만 필요한 분, 다급하지 않으면 부르짖을 필요가 없는 분..
하나님을 보는 삶이란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를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갈망 안에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Nyssenus, c.335-395), 《모세의 생애》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갈망을 느끼는 것, 기도하고 싶고 그런 갈망이 가득해지는 것은 영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내가 하나님을 향해 더 시간을 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한다는 사실만이 경건의 증거로 오해되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만족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놓치게 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은 하나님이 어디로 가시는 지를 등 뒤에서 계속 보며 따라가는 삶이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아우구스티누스) 그래서 저의 영혼은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영혼은 궤양을 앓고 있으면서도 밖을 향해 자신을 내던졌습니다. 비참하게도 감각적인 것들과 접촉해서 제 몸을 긁으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들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코 사랑받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of Hippo: 354-430) 《고백록》, Book III, i (1).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당시 자신의 영혼이 병들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내면의 양식"이신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외적인 것들로 자신의 내면의 허기를 채우려고 했다. 그는 영혼이 궤양으로 뒤덮였는데, 감각적인 것들에다가 자신의 몸을 긁음으로써 고통을..
영혼의 일 (노리치의 줄리안) 하나님께서는 쉼없이 당신을 찾는 영혼을 기뻐하신다. 우리 영혼이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저 찾고(seek) 아파하고(suffer), 신뢰(trust)하는 그 일 뿐. 이는 우리 영혼 안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며, 그러다 특별한 은총을 받는 영혼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일이야말로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그러다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는 영혼은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산고를 허락하고 계시는 이 때, 그분을 찾는 일은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는 일 못지 않게 좋은 일이다.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1342 – c.1420),《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5. 우리는..
당신을 주소서 (노리치의 줄리안) 좋으신 하나님, 제게 당신을 주소서. 저는 당신으로만 채워질 수 있고, 당신만 못한 것을 구하는 것은 당신께 합당한 기도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당신만 못한 것을 구하는 이는 빈궁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모든 것이시기 때문입니다.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ca.1342 – ca.1416),《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5. 좋은게 좋은게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따로 있다. 가장 좋은 것(Summum bonum)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가질 때 우리는 전부를 가진다. 주님, 주를 원하게desire 하소서.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을 가져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살아가게 하소서. / 산처럼 al shal be wel, and al shal be..
거룩한 갈망 _ 개암 비전 IV (노리치의 줄리안) 하나님보다 작은 것은 그 무엇도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 all that is less than He is not enough for us.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ca.1342 – ca.1416),《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5. 온 세상 만물을 다 가져도 인간의 마음은 차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온 우주보다 크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 영혼을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던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했다: 님 향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 마음은 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안식하지 못합니다. 줄리안 역시 같은 고백을 한다: 하나님과..
집으로 가는 길: 성 안나의 집 집으로 가는 길: 성 안나의 집 (A Way to Home: Saint Ann’s) 1. 들판을 가로질러 낮은 숲으로 향하는 호젓한 시골길 발밑에서 돌멩이 형제들이 자글자글 나무 위에서 참새 자매들이 쫑알쫑알 한낮의 뜨거운 땡볕에 삭발한 정수리가 익어가도 길옆의 들꽃도 덩달아 설레는 길, 즐거운 길 낮은 담장 옆으로 마차의 행렬이 지나가고 대문 앞에서 엄마가 손짓하고 나도 모르게 어린 아이가 되어 아장아장 서섹스(Sussex)를 걷는 길 어제를 걷는 길 2. 세상과 갈라진 샛길 마침내 발견한 외딴 판잣집 평생 찾아온 그곳 페인트로 흰색의 튜닉과 검은색의 스카풀라를 입히고 붉은 색의 십자가를 다니 대리석이 빛나는 대저택보다 호화스런 침묵이 찬연한 곳 3.태초부터 속해 있던 고독 나를 반기고 헛간 구석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