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세상에서 고귀하게 여겨지는 직업인 의사와 목사와 법률가들이 지혜와 참된 믿음과 하나님의 법과 공평성에서 벗어나, 의사는 몸을 치료해 주는 척하며, 목사는 영혼을 치료하는 척하며, 판사는 사람들의 재산을 보호해주는 척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다. 목사들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는데 참된 믿음의 비밀은 순결한 양심(a pure consciousness)에 있는 것이었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2,
The First Years of Ministry (1648-1649)년의 글 중에서
조지폭스의 영성은 당대의 지도자들과 권위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실망과 거기에서 오는 순수한 신앙에로의 회복을 갈구하는 데에 있다. 순수한 신앙은 무엇일까?
순수한 신앙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자신이 서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폭스는 당시 고귀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여겨지던 의사, 목사, 법률가들이 그 목적에서 떠나 다만 위선을 떨며 자기 욕망과 욕심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참된 믿음은 곧 순결한 양심 위에 서는 것이라 말한다.
며칠 전 본 드라마 <학교>의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입시 위주, 수능 위주의 교육에 갇혀 있는 학교에서 기간제 여교사 한 사람이 선생의 본 모습, 교육의 본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학교와 힘겨운 싸움을 한다. 교장이나 동료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은 싸늘하고 조롱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그녀에게 가장 힘든 것은 학생들마저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자기들에게 필요하고 성적을 올리는 데 필요한 정보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학교를 그만두려는 그녀에게 정작 수능 위주 교육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한 동료 교사가 그녀를 잡고 소리친다. “여기서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가 되고 싶던 바로 그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싸우는 것은 학교도 학생도 아니고 잘못된 사회의 시스템입니다.”
본질과 너무 멀어져 버린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본질에 뿌리 내린 삶과 사회를 꿈꾸는 자들에게 정말 힘든 싸움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스의 글은 본질로 돌아가려는 우리에게 도전과 더불어 소망의 메시지를 준다. 그것은 본질을 갈구하는 우리가 먼저 “순수한 양심” 위에 서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제도와 체계의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순수한 양심의 회복을 통해 제도와 체계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 너무 낭만적 생각에 불과한 것일까? /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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